에세이 #3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다.
사람은 누구나 '나'를 정의하고 싶어한다.
심리학은 모든 이들의 관심분야다. 그곳에서 '나'와 관계에 대해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MBTI를 포함한 각종 심리테스트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나'를 정의하고 싶어한다.
불행은 나의 욕망과 현실이 모순될 때 찾아온다.
한 인간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나'를 정의하고 싶어한다.
나를 정의하면 정의할수록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
나를 정의하면 정의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이다.
한 사이트에서 야매 MBTI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인되지 않은 MBTI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과거에 유행했던 혈액형 심리테스트와 달리 '과학적이고 통계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래서 더 믿음직하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MBTI가 뭐예요?"일 정도다.
MBTI의 본질은 경향성이다.
10번 같은 상황이 있다면 몇 번 같은 선택을 하느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계획성과 즉흥성이라는 두 성질을 두고 10번의 상황에서 계획성을 6번만 선택하면 나의 MBTI는 J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4번이나 즉흥적으로 행동했더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인된 MBTI 검사를 받기 바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답이 아닌 '나는 이런 편이지만 아닐 때도 있다'는 답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답에 너무 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늘 달라지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나는 너무나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모순된 동물이다.
계획적으로 산다지만 즉흥적으로 선택할 때도 있고, 슬프지만 때로는 웃을 때도 있고,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 때도 있고, 싫어도 좋다고 말할 때도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은 거짓된 것일까?
모순된 나를 처음 마주했던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고민이다.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그 모든 모습을 나로 인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 그 모든 모습들을 사랑하지는 못했다. 인정하지 못한 모습들도 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어린 탓이다.
스스로 나를 사랑하기 어렵다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키워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