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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Dec 28. 2019

이상한 면접

1-1. 매일 소설쓰는 사람들, 펀드매니저

분명히 나는 신입을 뽑는 곳에 지원을 했는데 경력이 없으니 안된다고 한다.


어떠한 업종에서든 흔히 들리는 얘기같다. 경력이 있으면 경력직을 뽑아야 하는데 요즘은 소위 경력직 같은 신입을 원하는 곳이 많아진 것 같다.


세상 만사가 그렇듯 한번에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다. 역시나 직업을 바꾸고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여의도에 들어오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부모님 눈치를 피하기 위해 카페에 앉아있던 그날도 금융네트워크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채용공고에는 이상한 문구가 써있었다.


경력이 없는 것을 선호합니다.


금융경력이 깨끗했던 나의 자소서는 다행히 통과되었고 대표님과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상한 채용공고만큼 회사 위치도 이상했다. 금융회사들은 보통 여의도나 종로, 강남쪽에 위치하는 반면 이 회사는 판교에 있었다. 게임사와 IT기업들이 많은 그곳 말이다.


또 한번 이상하게도 점심을 먹으면서 면접을 보자고 하시는 바람에 초면에, 그것도 면접을 보면서 대표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증권사 랩운용팀에서 주식운용을 하시다가 독립하여 투자자문사를 개업하신 분이었다. 키는 크지 않았고 운동을 즐기지는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것에 과연 정당성이 있을까요?


첫 면접 질문이었다. 솔직히 생각해본 적도 없는 문제였다.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돈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데 정당성이 웬말인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공장을 지을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을 나누어 마을이 부유해졌다는 얘기입니다. 투자가 있어야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 싶었던 나는 그저그런 대답을 해버렸다.


음, 사실 이 부분은 저도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입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클릭 몇번으로 돈을 번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물음이 항상 있죠. 피땀흘리고 제품이든 서비스든 만들어 내는 사람에게 가치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말이죠.


세상에 기여한 가치만큼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젊고 똑똑한 친구가 주식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말리고 싶습니다. 제조업에 가서 노동을 통해 돈을 벌라고 하고 싶어요. 금융인력들은 종종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없는데도 높은 연봉 때문인지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경력이 없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도 한번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빠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다. 금융인력이라고 하면 뭔가 날카롭고 안경을 고쳐쓰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인상을 찌푸리면서 고민하고, 그런 느낌이 강했다. 세계 경제나 주식시장 전망 등 전문적인 얘기도 많이 하게될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반면 대표님은 산골에서 도를 닦고 있는 현인 같았다. 면접시간도 그저 티타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주옥같은 말들도 많았는데 굉장히, 굉장히 많았다. 티타임은 무려 6시간에 거쳐서 이루어졌고 점심을 먹으면서 시작된 면접은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요즘은 면접 갑질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끊어지려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절한 리액션과 질문을 통해 대표님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면접 중간중간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보실 때면 너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순간은 지금의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일 것이다. 면접날 진이 빠진 것은 둘째치고 걱정된 부분은 회사를 다니게 되면 앞으로의 티타임도 꽤나 긴 시간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기에 대표님과의 즐거운 티타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던거 같다.


엄마, 나 축복받은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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