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60

제4부 과학혁명/ 16. 자본주의의 교리(443~458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6. 자본주의의 교리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군대건 대학 연구실이건 은행 없이는 유지 자체가 안 된다. 근대사에서 경제의 진정한 역할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돈이 국가를 세우고 망하게 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고, 수백만 명을 노예로 만들고, 산업의 바퀴를 돌리고, 동식물 수백 종을 멸종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해 기술한 두꺼운 책은 많다. 하지만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이란 단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근데 경제는 마치 호르몬이 넘쳐나는 십 대처럼 성장해 왔다.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늘 몇 센티미터 더 많이 자랐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제는 대체로 같은 규모를 유지해 왔다. 물론 지구 총생산은 증가했지만, 이것은 대체로 인구 팽창과 정착지의 확대 덕분이었다. 1인당 생산은 정체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근대에 와서 바뀌었다. 1500년 재화와 용역의 지구 총생산은 약 2,500억 달러였는데, 오늘날 이 수치는 60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500년 연간 1인당 총생산은 550달러였지만 오늘날 모든 남녀와 어린이가 1인당 연평균 8,800달러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성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학은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학문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간단한 사례를 상상해 보자.

영리한 금융업자 새뮤얼 그리디는 캘리포니아 주 엘도라도 시에 은행을 하나 세운다. 엘도라도의 전도유망한 도급업자인 A. A. 스톤은 처음으로 큰 건을 하나 마무리 짓고 거금 1백만 달러를 지급받는다. 그는 이 돈을 그리디의 은행에 예치한다. 이제 은행은 1백만 달러를 자본으로 가지고 있다. 한편 경험은 많지만 무일푼인 엘도라도의 요리사 제인 맥도넛은 사업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자기네 지역에는 진짜 좋은 빵집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돈으로는 오븐, 싱크대, 칼, 항아리 등의 적절한 시설을 구매할 수 없다. 그녀는 은행에 가서 그리디에게 자신의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이것이 가치 있는 투자임을 설득한다.

그리디는 그녀에게 1백만 달러를 빌려주고 그녀의 은행계좌에 그 액수를 넣어준다. 이제 맥도넛은 도급업자인 스톤을 고용해 자신의 빵집을 짓고 안을 채우게 한다. 스톤이 받는 비용은 1백만 달러다. 맥도넛은 자기 계좌 명의의 수표를 발행해 이 돈을 지불한다. 스톤은 그 돈을 그리디 은행의 자기 계좌에 입금한다. 그러면 스톤의 은행잔고는 얼마인가? 맞다. 2백만 달러다. 실제로 은행 금고에 들어 있는 돈, 즉 현금은 얼마인가? 그렇다. 1백만 달러다.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금업자들이 늘상 그렇듯이, 스톤은 작업 2개월에 맥도넛에게 미처 얘상하지 못했던 문제와 경비 탓에 빵집 건설비용은 실제로 2백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알린다. 맥도넛은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일을 중간에 그만두기는 어렵다. 그녀는 은행을 다시 방문하여 그리디를 설득해 1백만 달러를 추가로 빌린다. 그녀의 계좌에는 1백만 달러가 추가로 입금된다. 그녀는 그 돈을 도금업자의 계좌로 이체한다.

이제 스톤의 계좌에는 얼마가 들어 있는가? 3백만 달러다. 하지만 은행이 실제 보유하고 있는 돈은 얼마인가? 여전히 1백만 달러뿐이다. 처음부터 은행에 있던 바로 그 액수다. 미국의 현행 은행법은 이런 행위를 일곱 차례 더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 도급업자는 마침내 자신의 계좌에 1천만 달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은행 금고에는 실제를 1백만 달러 밖에 없다고 해도 말이다. 은행은 자신들이 가진 1달러당 10달러를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그 말은 우리의 은행계좌에 있는 모든 예금의 90퍼센트는 이에 대응하는 실제 화폐가 없다는 뜻이다.

만일 바클레이 은행의 예금주들 모두가 갑자기 전액 인출을 요구한다면, 은행은 즉각 파산할 것이다(정부가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 한). 로이드, 도이체 뱅크, 시티뱅크를 비롯해 세계 모든 운행이 다 마찬가지다.

이것은 거대한 피라미드식 이자 사기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만일 이것이 사기라면, 현대 경제 전체가 사기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이 지닌 놀라운 능력에게 바치는 헌사다. 은행 - 그리고 경제 전체 -을 살아남게 하고 꽃피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신뢰다. 오로지 이 신뢰가 세계의 돈 대부분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빵집 사례에서 도급업자의 계좌에 들어 있는 액수와 실제로 은행에 있는 돈의 액수의 차이는 곧 맥도넛의 빵집이다. 그리디는 언젠가 그것이 이윤을 불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은행의 돈을 투자했다. 빵집은 아직 빵 한 덩어리도 굽지 않았지만 맥도넛과 그리디는 앞으로 1년 후면 그 빵집이 매일 수천 개의 덩어리 빵, 롤 빵, 케이크, 쿠키를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면 맥도넛은 이자를 붙여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시점에 스톤이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기로 마음먹으면, 그리디는 그 돈을 내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업은 이처럼 상상된 미래에 대한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기업가와 은행가가 자신들이 꿈꾸는 빵집에 보내는 신뢰에, 그리고 은행의 미래 지불능력에 대해 도급업자가 지니고 있는 신뢰에, 앞에서 보았듯이, 돈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대표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대단한 존재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이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돈이 대표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성장에 심각한 제약을 가했다. 새로운 사업에 돈을 조달하기가 극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빵집을 생각해 보자. 만일 돈이 실제로 손에 잡을 수 있는 대상만을 대표한다면, 맥도넛은 빵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현재 그녀에게는 꿈은 많지만 구체적인 자원은 없다. 빵집을 짓는 유일한 방법은 도급업자 중에서 외상으로 일해주고 몇 년 후에 돈을 받을 용의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 몇 년 후에 빵집이 돈을 벌기 시작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도금업자는 드물다. 따라서 우리의 기업가는 곤경에 처한다. 빵집이 없으면 케이크를 구울 수가 없고, 케이크가 없으면 돈을 벌 수 없으며, 돈이 없으면 도급업자를 고용할 수 없고, 도급업자가 없으면 빵집도 없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경제는 얼어붙어 있었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를 대표하게 하는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 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만일 신용이 그토록 놀라운 것이라면, 어째서 아무도 좀 더 일찍 그것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물론 과거에도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저런 종류의 신용 거래는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 존재했으며, 그 기원은 최소한 고대 수메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 시대의 문제점은 아무도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다거나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신용을 크게 확장하려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시대보다 과거가 더 좋았으며 때론 현재보다 더 나쁘거나 기껏해야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믿었다.

경제용어롤 말하자면,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좋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 개인이든, 자신들의 왕국이든, 세계 전체든 앞으로 10년간 과거보다 더 많은 부를 생산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태라고 생각했다. 사업은 제로섬 게임처럼 보였다. 물론 특정 빵집의 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 옆 빵집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베네치아가 번영할 수는 있지만, 이은 오직 제노바를 가난하게 만듦으로써만 가능했다. 영국 왕이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프랑스 왕의 것을 훔치는 것밖에 없었다.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어느 방법도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악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가 말했듯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우니라"(마태오복음 19:24)였다.

만일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내가 그중 많은 부분을 가졌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은 게 분명하다. 부자는 자신의 잉여 재산을 자선에 기부함으로써 악행을 속죄해야 했다. 만일 지구 전체의 파이가 똑같은 크기로 남아 있다면, 신용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신용은 오늘의 파이와 내일의 파이 간의 차이다. 만일 파이 크기가 늘 같다면 왜 외상을 주겠는가? 당신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손을 벌리는 제빵사나 왕이 다른 경쟁자의 파이 조각을 훔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 한,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이전 세계에서 대출을 받기는 힘들었고, 만일 빌리더라도 소액으로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무는 것이 보통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기업가는 새 빵집을 열기 어려웠고, 왕궁을 짓거나 전쟁을 일으키려는 위대한 왕들은 세금과 관세를 무겁게 매겨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왕은 그래도 상관없었다(신민들이 고분고분하기만 하다면). 하지만 빵 굽기에 대한 뛰어난 아이디어로 신분상승을 바라는 하녀는 왕궁의 부엌 바닥을 박박 닦으면서 부를 꿈 꾸는 것 외에 보통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였다. 신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규 사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신규 사업이 힘들었기 때문에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성장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했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외상 주는 것을 경계했다. 불황에 대한 기대는 자기실현적이었다.



커지는 파이

그때 과학혁명과 진보라는 개념이 도래했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곧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인도양의 옛 교역로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대서양의 새 교역로가 번창할 수 있다. 기존 상품의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신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가령 기존의 빵집을 망하지 않게 하면서도 초코 케이크와 크루아상을 전문으로 하는 제과점을 새로 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저 새로운 취향을 개발하고 더 많이 먹으면 되니까. 당신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을 굶어 죽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나는 살이 찔 수 있다. 지구상의 파이 전체가 더 커질 수 있다.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경제는 풍선이라기보다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오르락내리락거림이 평탄해지면서 전반적인 방향은 오해의 여지가 없이 분명해졌다. 오늘날의 세상에는 신용이 넘쳐난다. 그 덕분에 정부, 기업, 개인은 현재 수입을 크게 넘어서는 큰돈을 장기 저리로 쉽게 빌린다. 지구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혁명이 되었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아마도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언문일 <국부론>을 썼다. 제1권 제8장에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주장을 폈다. 지주나 직공이나 구두공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면 그는 남는 돈으로 조수를 더 많이 고용해 이윤을 더욱 늘리려 한다. 수익이 늘어날수록 그는 점점 더 많은 조수를 채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기업인의 수익 증대는 공동체의 부와 번영을 늘리는 기초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에게는 이 내용이 그리 독창적이라고 비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미 모두 스미스의 주장을 당연히 여기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뉴스에서 이 주제의 변주를 듣는다. 하지만 스미스의 주장 -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만이다 - 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혁명적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돋 이타주의라고.

스미스는 경제를 '윈-윈 상황'으로 생각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나의 이익이 곧 너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둘 다 더 큰 파이 조각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파이 조각이 커져야 네 조각도 커질 수 있다. 내가 가난하다면 너 역시 가난해질 것이다. 네가 생산하는 상품이나 용역을 내가 살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부자라면 너 역시 부자가 될 것이다. 네가 내게 뭔가를 팔 수 있으니까. 스미스는 부와 도덕 간의 전통적 대립을 부정했고, 부자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미스의 이론에서, 사람들은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부자가 된다. 파이가 커지면 모두에게 이익이다. 따라서 부자는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성장의 바퀴를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전제가 있다. 부자가 자신의 수익을 비생산적인 활동에 낭비하지 않고 공장을 새로 세우고 사람들을 새로 고용하는 데 쓴다는 전제다. 그래서 스미스는 '수익이 늘면 지주나 직공은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할 것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풀이할 뿐 '수익이 늘면 스크루지는 돈을 상자에 숨겨둘 것이고 세어볼 때나 꺼낼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적 부분은 새로운 윤리의 등장이었는데, 이 윤리에 따르면 이윤은 생산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재투자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오고, 이것은 다시 생산을 위해 투자되어서 더 많은 이윤을 넣으며, 이 과정은 무한정 되풀이된다. 투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공장 확대, 과학연구의 시행, 신제품 개발.... 하지만 모든 투자는 어떻게 해서든 생산을 늘려야 하고 더 많은 이윤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스페인의 보물선단에서 약탈한 금화를 상자에 담아 카리브해의 어느 섬에 묻어둔 해적은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투자한 공장 노동자는 자본주의다.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생산이 어느 정도 일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하든 생산이 크게 늘지 않을 텐데 왜 이윤을 재투자하겠는가? 그래서 중세 귀족은 관대함과 과시적 소비라는 윤리를 신봉했다. 이들은 수입을 마상 시합, 연희, 궁궐, 전쟁, 자선, 엄청나게 큰 성당에 썼다. 수익을 투자해 영지의 생산량을 늘리거나, 밀의 신품종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근대에 이르러 귀족은 자본주의 신조를 믿는 새로운 엘리트에게 추월당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자 엘리트는 공작이나 후작부인이 아니라 회장, 주식 거래인, 기업경영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유력자는 중세 귀족보다 훨씬 부유하지만 사치성 소비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덜하다. 수입에서 비생산적 활동에 쓰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도 훨씬 적다. 중세 귀족은 금실과 비단으로 짠 화려한 복장을 하고 연회와 축제와 멋진 마상 시합에 참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반면에 현대의 CEO들은 까마귀 떼 정도의 스타일을 허락하는 수트라고 불리는 지루한 유니폼을 입고, 축제를 즐길 시간이 거의 없다. 전형적인 벤처 투자자는 회의에서 회의로 뛰어다니면 자본을 어디에 투자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자신이 보유한 유가증권을 등락을 계속 추적한다. 그는 베르사체 양복을 입고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겠지만, 이 모든 지출은 그가 생산을 늘리기 위해 투자하는 액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베르사체를 빼입은 사업계의 거물만 생산성을 늘리려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과 정부기관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평범한 이웃 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벌어지는 대화가 저축을 어디에 투자하면 좋은가. 주식인가 채권인가 부동산인가 하는 긴 논쟁으로 조만간 귀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정부 역시 미래의 수입을 늘려줄 생산적인 사업에 조세수입을 투자하려고 애를 쓴다. 가령 새로운 항구를 지으면 공장에서 생산한 생산품을 수출하기 쉬워질 것이고, 공장이 수입이 늘어나면 세금을 더 매길 수 있으며, 따라서 정부의 미래 수입이 늘어날 것이다. 교육 투자를 선호하는 정부도 있을 수 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윤이 많은 하이테크 산업의 기반이 된다는 견지에서다. 이런 산업은 세금을 많이 내면서도 비싼 항만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경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이론으로서 시작되었다. 이론은 기술적인 동시에 규범적이었다. 그 이론은 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고, 수익을 생산에 재투자하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아이디어를 선전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점차 경제적 교리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에는 하나의 윤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까지 일러주는 가르침들이다. 그중 가장 핵심 신조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라는 것, 최소한 그 대용품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자유, 심지어 행복까지도 경제성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자에게 짐바브웨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정의와 정치적 자유를 도입할 방법을 물어보라. 경제적 풍요와 번영하는 중산층이 안정적 민주제도에 얼마나 핵심적인지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가니스탄 부족민들에게 자유 기업과 검약과 자립의 가치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듣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종교는 현대 과학의 발달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학 연구자금은 정부나 민간기업에서 조달하는 것이 보통인데,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이 특정 과학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보통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생산량과 수익을 늘려줄 것인가? 경제성장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이 장애물을 못 넘는 프로젝트는 후원자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근대 과학의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관련시키지 않을 길은 없다.

반대로, 자본주의의 역사는 과학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 영원히 계속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자본주의자의 믿음은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지식에 위배된다. 양의 공급이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고 믿는 늑대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멍청이들의 사회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경제는 근현대 기간 내내 어찌해서든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 왔는데, 이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발견이나 장치를 들고 나온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 내연기관, 유전자 복제 양 같은 것을.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지난 몇 년간 은행과 정부는 미친 듯이 돈을 찍어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경제성장을 멈추게 할지 모른다고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난데없이 조 단위의 달러와 유로와 앤을 만들어서 값싼 신용을 시스템에 펌프질해 넣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정말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생명공학 기술이나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새로운 발견은 온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조해 낼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은행과 정부가 2008년부터 만들어낸 조 단위의 환상의 돈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거품이 터지기 전에 연구실들이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자 엘리트는 공작이나 후작부인이 아니라
회장, 주식 거래인, 기업경영자로 구성되어 있다.

치장과 사치로 富를 누린 귀족층이 과거의 엘리트였다면, 현대의 자본주의 엘리트는 기업 성장을 넘어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투자와 경영철학으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