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과학혁명/ 18. 끝없는 혁명(507~514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8. 끝없는 혁명
산업혁명은 에너지를 전환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주변 생태 환경에 예속된 상태에서 대체로 해방되었다. 인류는 숲을 베어내고, 늪의 물을 빼고, 강을 댐으로 막고, 들판에 물을 대고, 수십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로를 놓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거대도시를 건설했다. 세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서식지는 파괴되고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과거 녹색과 푸른색이던 우리의 행성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센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70억 명이 넘는 사피엔스가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 한데 모아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그 무게는 약 3억 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축화된 모든 농장 동물 - 암소, 돼지, 양, 닭 - 을 더욱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그 무게는 약 7억 톤에 달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살아 있는 대형 야생동물 - 호저에서 펭귄, 코끼리에서 고래에 이르는 - 의 무게를 모두 합쳐도 1억 톤에 못 미친다. 어린이 도서나 각종 도해서, TV화면은 여전히 기린과 늑대와 침팬지로 넘쳐나지만 실제 세상에는 이들이 매우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다. 세상에 남아 있는 기린은 약 8만 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소는 15억 마리에 이른다. 침팬지는 25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70억 명이다. 인류는 정말로 지구를 접수했다.
생태계 파괴는 자원 희소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앞 장에서 보았듯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자원의 희소성을 말하는 종말론적 예언가들이 아마도 헛짚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와 반대로 생태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너무 확실하다. 미래의 사피엔스는 온갖 새로운 원자재와 에너지원의 보고를 손에 넣되 이와 함께 겨우 남아 있는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종을 멸종시킬지 모른다.
사실 생태적 혼란은 호모 사피엔스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광범위한 오염은 지구를 우리 종이 살기에 부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미래에 인류의 힘과 인류가 유발한 자연재해는 쫓고 쫓기는 경쟁의 나선을 그리며 커질지도 모른다.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힘에 대항하고 생태계를 자신의 필요와 변덕에 종속시킨다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부작용을 점점 더 많이 초래할지 모른다. 이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계를 더더욱 극적으로 조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더더욱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과정을 '자연 파괴'라 부른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끈질긴 생명체들은 아마도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의 바닥을 헤치고 기어 나올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부터 6,500만 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 살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에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소문은 성급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세계 인구는 사상 유례없이 급증했다. 1700년 세계 인구는 약 7억 명이었다. 1800년에는 9억 5천만 명이었다. 1900년이 되자 거의 두 배로 늘어 16억 명이 되었다. 2000년에는 네 배로 늘어 60억 명이 되었다. 오늘날 사피엔스의 숫자는 70억 명을 약간 넘는다.
사피엔스는 자연의 변덕으로 인한 영향은 점점 더 적게 받게 되었지만 현대 산업과 정부의 명령에 점점 더 많이 복종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결과 사회공학적 실험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일상과 인간 심리 면에서 예기치 못했던 변화는 더 길게 이어졌다. 많은 변화 중 한 예는 전통농업의 리듬이 산업의 획일적이고 정밀한 스케줄로 대체된 것이다.
전통 농업은 자연의 시간과 유기적 성장의 주기에 의존했다. 대부분의 사회들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능력이 없었으며 그런 측정을 하는 데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시계와 시간표 없이도 세상은 탈 없이 굴러갔으며, 이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태양의 움직임과 식물의 성장주기뿐이었다. 일사불란한 근무일 같은 것은 없었으며 모든 일과는 계절에 따라 극적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태양이 어디쯤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우기와 수확기가 시작되는 전조를 열심히 찾았지만, 시간은 알지 못했고 연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세 마을에 시간여행자가 갑자기 나타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치자. "올해가 몇 년도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질문한 이방인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못지않게 질문의 내용에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중세 농부나 구두공과 달리 현대 산업은 태양이나 계절을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대신 정밀성과 획일성을 신성시한다. 중세 공방에서는 구두공 각자가 밑창에서 버클에 이르는 신발 전체를 만들었다. 한 명의 출근이 늦는다 해도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이 늦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구두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노동자들은 각자 한 대씩 기계를 담당하는데, 기계들은 구두의 극히 일부분만을 만들어 그 제품을 다음 기계로 넘긴다. 만일 5번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자가 늦잠을 자면 다른 모든 기계의 작동이 멈춘다.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정확한 시간표를 준수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는 정확히 같은 시간에 직장에 도착한다. 배가 고픈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가 똑같은 점심시간을 준수한다. 근무시간이 끝났다는 호각이 울리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자기 일이 끝났을 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공장의 교대 근무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난다면 동네 술집은 5시 2분에 문을 여는 것이 나왔다.
시간표 체계가 확산된 결정적 고리는 대중교통이었다. 노동자들이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면 기차나 버스는 공장 문 앞에 7시 55분까지 도착해야만 한다. 작업이 몇 분만 늦어져도 생산성은 떨어지고 심지어 불운하게 지각한 사람은 해고될 위험까지 있다. 1784년 영국에서 운행시간표를 붙인 마차 서비스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시간표에 명시된 것은 출발시각뿐이었다. 도착 시각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각 도시와 타운은 각자의 현지 시간이 따로 있었고, 이 시간은 런던 시간과 크게는 30분까지 차이가 났다. 런던이 12시면 리버풀은 12시 20분, 캔터베리는 11시 50분이었다. 전화나 라디오도 없었고 TV나 급행열차도 없던 시대였다. 시간을 누가 알 수 있었겠으며 누가 상관했겠는가?
최초의 상업용 기차가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서 운행을 시작한 1830년으로부터 10년 뒤에 최초의 기차 시간표가 나왔다. 기차는 마차보다 훨씬 더 빨랐으므로, 현지 시각의 변덕스러운 차이가 심각한 불편을 초래했다. 1847년 영국의 열차 회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제부터 모든 열차 시간표를 리버풀이나 맨체스터나 글래스고의 현지 시간이 아니라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관들이 열차 회사들의 모법을 따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시작은 결국 몇십 분의 일 초까지 똑같이 맞추는 세계적 시간표 네트워크를 낳았다.
방송매체는 세상에 등장하면서 - 라디오를 시작으로 TV가 나타났다 - 시간표의 세상을 열었고, 신간표의 주된 강요자이자 복음전도사가 되었다. 라디오 방송국이 처음으로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사보 방송이었다. "삐삐 삐 -' 소리는 멀리 떨어진 주거지나 바다의 선박에서 시간을 맞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 라디오 방송국들은 매시간 뉴스를 방송하는 것을 관례화했다. 오늘날 모든 뉴스 방송의 첫 순서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각이 전쟁 발발 소식보다 더 먼저 보도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BBC 뉴스는 나치 점령하의 유럽에 방송을 내보냈다. 모든 뉴스 프로그램은 첫머리에 영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의 시계 소리를 생방송으로 들려주었다. 이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마법의 소리였다.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들은 생방송에 나오는 딩동 소리의 톤이 날씨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토대로 런던의 기상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정보는 독일 공군에게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그 유명한 시계 소리를 녹음 방송으로 바꿨다.
시간표 네트워크를 운영하기 위해서, 값싸고 정교한 휴대용 시계가 어디에나 널려 있게 되었다. 아시리아, 사산, 잉카의 도시에는 해시계가 몇 개쯤 있었을 것이다. 중세 유럽 도시에는 보통 마을 광장에 있는 높은 탑 꼭대기에 거대한 기계가 올라앉은 형태의 시계가 하나 있었다. 이런 탑 시계는 시간이 안 맞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어차피 마을에는 그것과 다른 시각을 가리키는 다른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틀려도 별 문제가 없었다. 오늘날 여느 부잣집 한 곳에 있는 시계 종류를 다 합치면 대개 중세 한 나라가 보유했던 것보다 수가 많다. 손목시계, 휴대전화, 침대 머리맡의 자명종, 부엌 벽의 붙박이 시계, 전자오븐이나 TV, DVD, 컴퓨터 스크린의 작업표시줄이 모두 시간을 표시한다. 지금 시각이 몇 시인지 알고 싶지 않다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시계들을 본다. 우리가 하는 일 거의 대부분이 제시간에 이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명종은 우리를 오전 7시에 깨우고, 우리는 냉동 베이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정확히 50초 동안 가열하며, 칫솔질은 전동칫솔에서 알림음이 울릴 때까지 정확히 3분간 한다. 7시 40분 전철을 타고 직장으로 향하고, 헬스클럽 러닝머신이 30분이 경과했다는 알림음을 울릴 때까지 뛴다. 좋아하는 쇼를 보기 위해 오후 7시 정각에 TV앞에 앉은 뒤, 미리 정해진 정확한 순가나에 나오는 초당 1천 달러짜리 광고로 TV 시청을 방해받고, 결국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모든 걱정을 털어놓는데, 의사는 우리의 수다를 정확히 50분으로 제한한다. 오늘날 표준화된 한 회 진료시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인류사회에 수십 가지의 커다란 격변을 불러왔다. 산업적 시간에 적용하는 것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 다른 두드러진 예로는 도시화, 농민의 소멸,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등장, 보통 사람에게 주어진 힘, 민주화, 청년문화, 가부장제의 해체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격변들조차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게 닥친 가장 중요한 사회혁명에 대면 시시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 사건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인류는 가장 초기부터, 그러니까 1백만여 년 전부터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된 작고 친밀한 공동체에서 살았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혁명 덕분에 가족과 공동체가 뭉쳐서 부족, 도시, 왕국, 제국이 만들어졌지만, 모든 인류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족과 공동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불과 2세기 남짓 만에 이 단위들을 산산이 깨부쉈다. 가족과 공동체가 수행하던 전통적 기능은 대부분 국가와 시장에게 넘어갔다.
"세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서식지는 파괴되고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과거 녹색과 푸른색이던 우리의 행성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센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세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서식지는 파괴되고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과거 녹색과 푸른색이던 우리의 행성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센터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