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과학혁명/ 18. 끝없는 혁명(515~526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8. 끝없는 혁명
산업혁명 이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위했던 일상은 핵가족, 확장된 가족, 지역의 친밀한 공동체라는 세 가지 오래된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 농장이나 가족 공방 같은 기업에 종사하거나 이웃집에서 일했다. 가족은 또한 복지 시스템, 의료 시스템, 교육 시스템, 건축 산업, 노동조합, 연금 펀드, 보험회사, 라디오, TV, 신문, 은행, 심지어 경찰이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가족이 그를 보살폈다. 그가 늙으면 가족이 그를 부양했고 아들딸이 그의 연금이었다. 누군가 죽으면 가족이 남은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가 오두막을 원하면 가족들이 일손을 보탰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가족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가 결혼을 하고자 하면 가족이 배우자 후보를 고르거나 최소한 심사라도 했다. 이웃과 분쟁이 생기면 가족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병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가족이 어떻게 다룰 수 없을 정도가 되거나, 새로운 사업이 너무 큰 투자를 필요로 하거나, 이웃과의 분쟁이 폭력으로 확대되는 경우, 지역 공동체가 해결사로 나섰다.
공동체는 지역 전통과 호혜의 경제를 기반으로 도움을 제공했다, 이런 경제는 자유시장의 수요공급 법칙과는 크게 다른 경우가 흔했다. 구식의 중세 공동체에서 내 이웃이 필요로 하면 나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가 오두막을 짓는 것을 돕고 그의 양을 대신 돌봐주었다.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이웃이 내 호의를 다시 갚았다. 이와 동시에 지방의 유력자는 마을 사람 모두를 징발해 한 푼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을 쌓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우리는 그가 산적이나 야만인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마을의 삶에는 많은 거래가 있었지만 지불이 뒤따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시장도 일부 존재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귀한 향신료나 천, 도구를 구매하거나 법률가나 의사의 서비스에 돈을 낼 수는 있지만 통상적인 상품과 용역 중 시장에서 구매가 이뤄지는 것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인간이 필요 대부분은 가족과 공동체의 보살핌으로 충족되었다.
왕국이나 제국도 존재하여, 전쟁을 벌인다거나 도로를 닦고 왕국을 건설하는 등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왕들은 세금을 징수했으며, 때때로 병사와 노동자를 징집했다. 하지만 드문 예외를 제하면 왕들은 가족과 공동체의 일상사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설사 개입하고 싶더라도 대부분의 왕은 이를 실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통적 농업 경제체제는 수많은 정부 관료, 경찰, 사회복지사, 교사, 의사를 먹여 살릴 만큼의 잉여분을 거의 생산하지 못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통치자는 대중 복지체제, 의료체제, 교육체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그냥 가족과 공동체의 손에 맡겼다. 통치자들이 농민들의 일상에 더 깊이 개입하려고 시도하는 드문 경우에도(예컨대 중국의 진 제국에서 그랬다) 가족의 수장과 공동체의 연장자들을 정부 요원으로 만들어버리는 방법을 썼다(관직을 내렸다는 뜻이다.- 옮긴이).
멀리 떨어진 곳의 공동체 일에 개입하기에는 수송과 통신이 너무나 불편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왕국이 왕의 가장 기본 특권인 과세와 폭력행사를 공동체에 양도하는 쪽을 선호했다. 예컨대 오토만 제국은 대규모의 제국 경찰력을 운영하느니 피해자 가족이 피의 복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도록 허용했다. 만일 내 사촌이 누군가를 살해하면 희생자의 형제가 그 보복으로 나를 살해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스탄불의 술탄이나 지방의 파샤조차도 폭력이 허용할만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한 이런 충돌에 개입하지 않았다.
중국의 명 제국(1368~1644)은 백성들을 보갑제保甲制로 조직했다. 열 개의 가족이 하나의 '보'가 되었고 열 개의 보가 하나의 '갑'을 이루었다. 보의 구성원 한 명이 범죄를 저지르면 보의 다른 구성원, 특히 연장자들이 그를 처벌할 수 있었다. 세금도 보에 부과되었다. 개별 가정의 상황을 평가해서 각자 내야 할 세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책임도 정부 관리가 아니라 보의 연장자에게 있었다. 제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스템에는 막대한 장점이 있었다. 제국은 수천수만 명의 세무 공무원과 세금 징수원을 유지해서 개별 집안의 소득과 지출을 조사하는 대신, 이런 업무를 공동체의 연장자에게 맡기는 쪽을 택했다. 연장자들은 촌민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있었고, 제국의 군대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보통 세금 납부를 강제할 수 있었다. 많은 왕국과 제국이 사실상 (상인 등에게) 보호비를 뜯는 대규모 폭력단에 지나지 않았다. 왕은 보스 중의 보스로서 보호비를 거두고 그 대가로 자신의 보호하에 있는 사람들을 이웃 범죄 조직이나 지역의 잡배들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그 이상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가족과 공동체 품 안에서 사는 삶은 이상적이진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억압은 오늘날 국가와 시장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 내적 역학은 긴장과 폭력으로 가득하기 일쑤였지만,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1750년경 가족과 공동체를 잃은 여성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직업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병들고 곤궁할 때 도와줄 곳이 없었다. 경찰이나 사회복지사, 의무교육은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새로이 소속될 가족이나 공동체를 즉시 찾아야 했다. 집에서 도망친 소년 소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다른 집안의 하인이 되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군대다 매춘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2세기에 걸쳐 극적으로 달라졌다, 산업혁명은 시장에 막대한 새 힘을 주었고, 국가에는 새로운 통신 및 수송 수단을 제공했으며, 정부로 하여금 사무원과 교사, 경찰과 사회복자사의 군단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처음에 시장과 국가의 진로는 외부 제압을 꺼리는 전통적 가족과 공동체에 가로막혔다. 부모와 공동체의 원로들은 젊은 세대가 민족주의적 교육 시스템에 세뇌당하거나 군에 징집되거나 뿌리 없는 도시 프롤레타리아로 변하는 것을 꺼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와 시장은 점점 커지는 권력을 이용해 가족과 공동체의 전통적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국가는 가족 간 피의 복수를 경찰을 보내 막았고 법원의 판결로 대체했다. 시장은 지역의 오랜 전통을 장사꾼을 보내 일소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행위 관습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힘을 약화시키려면 제5열(스파이를 말한다 - 옮긴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말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은 곧잘 개인을 국가와 시장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사실 이보다 진실에서 먼 이야기는 없다. 국가와 시장은 개인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개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들 덕분이다. 시장은 우리에게 직업과 보험과 연금을 제공한다. 전문직업인이 되려는 공부를 하고 싶다면 당신을 가르칠 공립학교가 존재한다. 사업을 하고 싶다면, 은행이 돈을 빌려준다. 집을 짓고 싶다면, 건설회사가 지어주고 은행이 융자를 해주며 여기에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보증을 서주기도 한다. 폭력이 발생하며, 경찰이 지켜준다. 며칠간 아프면, 의료보험이 보살펴준다, 몇 개월간 환자로 있으면, 사회보장제도가 개입한다. 24시간 보살핌을 원하며, 시장에서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다. 그 간병인은 외부 세계에서 온 낯선 사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자녀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헌신성으로 우리를 돌본다.
돈만 있다면 고급 양로원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과세 당국은 우리를 개인으로 취급하며, 이웃의 세금까지 낼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법원 역시 우리를 개인으로 보며, 사촌이 저지른 범죄로 우리를 처벌하는 일은 결코 없다. 성인 남자뿐 아니라 성인 여자와 어린이도 개인으로 인식된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여자는 가족과 공동체의 재산으로 취급되었지만, 현대 국가는 이와 달리 여자를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독립하여 경제적, 법적 권리를 누리는 개인으로 본다. 여성은 은행계좌를 가지며,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는 물론이고 이혼할 것인지, 혼자 살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해방에는 대가가 따른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를 상실한 데 대해 슬퍼하며, 인간미가 없는 국가와 시장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소외되고 위협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외된 개인으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은 강력한 가족과 공동체로 구성된 국가와 시장에 비해 그 구성원들에게 훨씬 더 쉽게 개입할 수 있다.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수위에게 주어야 할 급여액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이들이 국가에 저항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와 시장과 개인 간의 거래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와 시장은 서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의견이 다르며, 개인은 국가와 시장이 둘 다 너무 적게 주면서 너무 많이 요구한다고 불평한다. 많은 경우 개인은 시장에게 착취당한다. 국가가 군대와 경찰, 관료를 고용하는 것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벌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불완전하게라도 이런 거래가 작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이어온 인류의 사회계약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설계 되었지만, 불과 2세기 만에 우리는 소외된 개인이 되었다. 문화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보다 더 잘 증언하는 사례는 없다.
현대사회에서도 핵가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와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역할의 대부분을 가족에게서 빼앗으면서도 일부 중요한 감정적 기능은 남겨두었다. 현대 가족은 국가와 시장이 (아직은) 제공할 수 없는 사적인 욕구를 제공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가족은 심지어 이 영역에서도 점점 더 많은 개입을 겪고 있다. 시장이 사람들의 연애 및 성생활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가족이 중매쟁이의 역할을 맡았지만, 오늘날 연애와 성적 선호를 조종하고 그것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시장이다.
다만 그 비용이 비싸다. 옛날에는 신랑과 신부는 집 안의 거실에서 만났고, 한쪽 아버지에게서 다른 쪽 아버지로 돈이 건네졌다. 오늘날 연애는 술집과 카페에서 이루어지고, 돈은 연인의 손에서 웨이트리스에게 건네진다. 이보다 더 많은 돈이 패션 디자이너, 헬스클럽 매니저, 다이어트 전문가, 미용사, 성형외과 의사의 은행계좌로 건너간다. 이들 모두는 우리가 시장이 제시하는 미의 이상에 가급적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서 카페에 도착하도록 도와준다.
국가 역시 가족관계를 예전보다 더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데,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부모에게는 아이들을 정부의 학교에 보내 교육받게 할 의무가 있다. 특별히 아이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는 국가의 저지를 당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국가는 심지어 부모를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 위탁할 수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녀를 때리거나 모욕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면 말도 안 되고 실행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무시당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복종은 가장 신성한 가치에 속했고, 부모는 거의 모든 행위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아기를 노예로 팔거나, 딸을 나이가 두 배가 넘는 남자와 결혼시키는 것이 모두 가능했다. 오늘날 부모의 권위는 완전히 후퇴했다. 젊은이들은 연장자의 말을 따를 의무가 점점 줄고 있고, 이에 비해 부모들은 자녀의 삶에서 무엇이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난을 받는다. 엄마와 아빠는 스탈린 치하의 여론조작용 재판에 출석한 피고인처럼, 프로이트의 법정에서 비난을 받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핵가족도 그렇지만 공동체 역시 아무런 정서적 대체물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다. 오늘날 시장과 국가는 과거에 동동체가 제공하던 물질적 필요의 대부분을 충족시켜주고 있지만, 이와 함께 같은 부족민 사이에 느끼던 유대감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시장과 국가는 '상상의 공동체'를 육성함으로써 그 일을 해낸다.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을 포함하는 이 공동체는 국가적, 상업적 필요에 맞게끔 만들어졌다. 모든 상상의 공동체는 실제로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이것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왕국, 제국, 교회는 상상의 공동체로 수천 년씩 기능해 왔다.
고대 중국에서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단일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았다. 천자가 그들의 아버지였다. 중세에 수백만 명의 독실한 무슬림은 그들 모두가 위대한 이슬람 공동체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의 공동체는 서로서로 잘 알고 지내는 수십 명으로 구성된 친밀한 공동체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ㅓ친밀한 공동체는 구성원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켰으며, 모두의 생존과 복지에 핵심요소였다. 지난 2세기 동안 친밀한 공동체는 말라죽었고, 그에 따른 감정적 공백을 채우는 역할은 상상의 공동체가 맡게 되었다.
상상의 공동체가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둘 다 상상의 공동체임에 분명한 까닭은 시장의 모든 고객이나 한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과거 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알던 것만큼 실제로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 누구도 자신이 속한 국가의 다른 국민 8천만 명과 친하게 알고 지낼 수는 없다. 유럽 공동시장의 고객 5억 명도 마찬가지다(유럽 공동시장은 처음에는 유럽공동체로, 나중에는 유럽연합으로 진화했다).
소비지상주의와 민족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수백만 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모두가 공통의 과거,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미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상상일 뿐이다. 돈이나 유한회사, 인권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소비 공동체는 상호 주관적 실체다. 이것들은 오로지 우리의 집단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 독일인 수천만 명이 독일이란 국가의 존재를 믿고, 독일의 국가 상징을 보면 흥분하고, 국가의 신화를 거듭 이야기하고, 국가를 위해 돈과 시간과 팔다리를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 한, 독일은 언제까지나 세계의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국가는 상상의 존재라는 자신의 속성을 숨기려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이 자연적이며 영원한 실체라고 어떤 시원적 시기에 모국의 흙과 사람들이 피가 섞여서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보통 과장된 것이다. 오랜 옛날에도 민족은 존재했지만 그 중요성은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다. 국가의 중요성이 오늘날보다 훨씬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세 뉘른베르크의 주민이 국가 독일에 대해 뭔가 충성심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욕구 대부분을 채워주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비교하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대에서 국가가 어떤 중요성을 지녔든 간에, 지금껏 살아남은 국가는 거의 없다. 오늘날 많은 국가는 지난 몇 세기 동안에 통합된 것이다.
중동에는 그런 사례가 수없이 많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는 프랑스와 영국 외교관들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경제를 무시하고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경계선의 산물이다. 1918년이 외교관들은 지금부터 쿠르드인, 바그다드인, 바스라인은 이라크인이 된다고 결정했다. 누가 시리아인이 되고 누가 레바논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인들이었다. 사담 후세인과 하페즈 알아사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만들어낸 자신들의 나라에서 국가의식을 육성, 강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국가 이라크나 시리아가 영원하다는 과장된 연설은 공허하게 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국가를 창조해 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소리다. 이라크나 시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사람들은 실제 역사, 지리, 문화적 원자재를 활용했는데, 그중 일부는 수백 수천 년 된 것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지위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유산을 채택했으며, 자신의 정예 기갑부재 하나에 함무라비 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라크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존재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밀가루와 오일, 설탕으로 케이크를 굽는다고 하자, 그 모든 재료는 지난 2년간 부엌 옆 창고방에 들어 있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케이크 자체가 2년 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의 충성심을 얻기 위한 다툼에서 국가 공동체는 소비자라는 부족과 경쟁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서로 직접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비 습관과 관심이 동일하면, 종종 스스로 동일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느끼며 자신을 그렇게 규정한다. 그들은 주로 구매 패턴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마돈나의 공연 티켓, CD, 포스터, 셔츠, 휴대전화 벨소리 음악을 구매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정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 채식주의자들, 환경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환경 문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장보다는 슈퍼마켓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슈퍼마켓 안에서만큼은 소비자 부족이 종종 국가보다도 강하다.
"가족과 공동체 품 안에서 사는 삶은 이상적이진 않았다."
공동체 생활은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감에 따른 부담감이 있다. 이것이 짙으면 독립적 사고와 성장에 방해가 된다. 현생인류는 자본주의의 경쟁사회 속에 서 있다. 냉정하지만 개인적 삶의 지향으로 국가와 시장의 관리 체계를 감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