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67

제4부 과학혁명/ 18. 끝없는 혁명(527~541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8. 끝없는 혁명


끝없는 운동

지난 2세기에 걸쳐 일어난 혁명들은 워낙 빠르고 과격한 나머지 사회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대부분을 변화시켰다. 전통적으로 사회질서는 단단하고 고정된 무엇이었다. '질서'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의미했다. 급격한 사회혁명은 예외였고, 대부분의 사회 변화는 수많은 작은 단계가 축적된 결과였다. 사람들은 사회구조란 확고하며 영원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족과 공동체가 그 질서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변화시키려 분투할 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질서의 근본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낯선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은 과거에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늘 이렇게 이어질 거야"라고 선언하면서 현재 상태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현대의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1789년(프랑스혁명), 1848년(유럽의 연쇄적 민주화혁명), 혹은 1917년(러시아 혁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요즘은 심지어 30세밖에 되지 않은 사람도 십 대를 향해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어"라고 말할 수 있다. 십 대는 그 말을 믿지 않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예컨대 인터넷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90년 초반에 이르러서였다.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우리는 여기에 익숙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질서를 바뀔 수 있는 무엇, 우리가 마음대로 가공하고 개선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이전 지배자들의 주된 약속은 전통적 질서를 수호하겠다거나 심지어 잃어버린 모종의 황금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정치에서는 구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더 나은 것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조차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만 약속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사회 개혁, 교육 개혁, 경제 개혁을 약속하고, 어떤 때는 공약을 실천하기도 한다.


지각판의 움직임이 지진과 화산 폭발이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리학자들이 예측하듯이 격렬한 사회운동은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분출할 것이라고 예측함직하다. 19세기와 20세기의 정치사는 끔찍한 전쟁과 대량학살, 혁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역사는 장화를 신고 한 웅덩이에서 다른 웅덩이로 폴짝폴짝 뛰는 아이처럼 하나의 피바다에서 다른 피바다로 뛰어드는 행태를 보여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냉전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유대인 대학살을 거쳐 르완다 대학살로, 로베스피에르에서 레닌을 거쳐 히틀러로......

이것은 물론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이런 참사들의 목록은 오해를 부른다. 우리는 웅덩이에 너무 큰 관심을 둔 나머지, 웅덩이들 사이에 있는 마른땅은 잊고 있다. 현대사는 전에 없던 수준의 폭력과 공포의 시기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수준의 평화와 평온의 시기였다. 찰스 디킨스가 프랑스혁명에 대해 썼던 표현대로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이 말은 비단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것이 불러온 시대 전체에 대해서도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지금까지의 70년에 대해서는 잘 맞는 말이다. 이 시기에 인류는 처음으로 완전한 자기 소멸, 즉 멸종의 가능성에 직면했으며 실제 상당한 숫자의 전쟁과 대량학살을 겪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것은 곧 대단히 평화로웠다는 뜻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더 커다란 경제, 사회, 정치적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판은 미친 듯한 속도로 움직이지만, 화산은 대체로 조용하다. 새로 출현한 탄력적 질서는 질서가 붕괴되어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억제하거나 반대로 촉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의 평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 천 년 동안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과거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쉽게 망각한다. 그리고 전쟁이 점점 드물어질수록 한 번 발발하면 더욱 많은 관심을 끈다. 브라질 사람과 인도 사람이 누리는 평화를 떠올리는 사람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집단 전체보다 개인의 고통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시적 역사 과정을 이해하려면, 개인의 이야기보다 대중의 통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0년에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31만 명, 폭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이와 별도로 52만 명이었다. 개별 희생자는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파괴된 세계이고, 파탄 난 가정이며, 친구와 친척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상처다. 하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이 83만 명은 2000년의 총 사망자 5,600만 명에서 1.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그해에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26만 명(총사망자의 2.25퍼센트),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81만 5천 명(1.45퍼센트)이었다. 2002년의 수치는 더욱 놀랍다. 총 사망자 5,700만 명 중에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17만 2천 명, 폭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56만 9천 명에 불과했다(인간의 폭력에 의한 전체 사망자는 74만 1천 명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살자는 87만 3천 명에 이르렀다.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 해라 테러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을 죽이는 것은 테러리스트나 군인, 마약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일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면서 한밤중에 이웃 부족이 자기 마을을 둘러싸고 모두를 학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지 않는다. 부유한 영국 시민은 녹색 옷을 입은 명랑한 강도들(의적 로빈 후드를 지칭-옮긴이)이 자신을 습격해 돈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실제는 여행자를 살해하고 돈은 자기들이 챙길 가능성이 더 크지만 말이다) 노팅엄에서 셔우드 숲을 지나 런던으로 매일 여행한다. 학생들은 선생의 채찍질을 견디지 않으며, 아이들은 부모가 청구서의 돈을 내지 못해 노예로 팔릴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성들은 남편이 자신을 때리거나 외출을 막는 것을 법이 금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이런 기대는 점점 더 많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폭력이 감소한 것은 대체로 국가의 등장 덕분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폭력은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 일으키는 국지적 반목이 원인이었다(심지어 오늘날에도 위의 숫자가 가리키듯이 지역 범죄로 인한 희생자가 국가 간의 전쟁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역 공동체보다 큰 정치 조직을 알지 못했던 초기 농부들은 만연하는 폭력으로 고통받았다.

왕국과 제국이 강력해지면서 공동체의 고삐를 죄자, 폭력은 줄어들었다. 중세 유럽의 지방분권형 왕국의 경우 해마다 인구 10만 명당 20~40명이 살해되었으나, 최근 몇십 년간 국가와 시장이 무소불위의 힘을 얻고 공동체가 소멸하자 폭력의 발생률은 아주 낮아졌다. 오늘날 세계 평균을 보면 연간 10만 명당 피살자는 아홉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살인은 소말리아나 콜롬비아 같은 취약한 국가에서 발생한다. 유럽의 중앙집권적 국가에서는 평균 살인사건 발생률이 연간 10만 명당 한 명에 불과하다.

국가가 권력을 이용해서 자국민을 살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런 사례가 우리의 기억과 두려움에 크게 다가올 때도 종종 있다. 20세기에 자국의 보안 병력에 의해 살해된 국민은 수억 명은 아니지만 수천만 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거시적으로 볼 때 국가가 운영하는 법원과 경찰 덕분에 세계 전체의 안전 수준은 아마 높아졌을 것이다. 심지어 가혹한 독재정권 아래일지라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현대 이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1964년 브라질에서 군사 독재정권이 수립되었다. 그 통치는 198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20년 동안 수천 명의 브라질인이 정권에 의해 살해되었고, 또 다른 수천 명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이 정권 최악의 시기에도 평균적인 리우데자네이루 시민이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을 확률은 와오라니, 아라웨테, 야노마뫼 족의 평균보다 훨씬 더 낮았다. 아마존 밀림 깊은 곳에 사는 이들 토착민에게는 군대도 경찰도 감옥도 없다.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종족 남성의 4분의 1에서 2분의 1 가량은 이르든 늦든 재산이나 여성, 특권을 두고 벌어진 폭력적 충돌로 인해 사망한다.


제국의 은퇴

1945년 이래 국가 내의 폭력이 줄었느냐 늘었느냐 하는 문제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국가 간의 폭력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가장 명백한 사례는 유럽 제국의 붕괴다. 역사를 통틀어 제국은 반란을 철권으로 분쇄해 왔고, 최후를 맞이할 때가 되면 스스로를 침몰로부터 구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며 그 결과 피바다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끝내 제국이 소멸할 때는 통상 무정부 상태와 계승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와 달리, 1945년 이래 대부분의 제국들은 평화로운 조기 은퇴를 선택했다. 이들의 붕괴 과정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조용하며, 질서 정연했다.

1945년 영국은 지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그 지배권은 몇 안 되는 작은 섬들에 한정되었다. 그사이 영국은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철수했다. 말라야나 케냐처럼 영국이 무력으로 버티기를 시도한 지역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제국의 종말을 한숨과 함께 받아들였을지언정 성질을 부리지는 않았다.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매끄럽게 넘겨주는 데 힘을 쏟았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수많은 칭송이 바쳐지고 있지만, 적어도 그 칭송 중 일부는 대영제국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인도인들은 오랫동안 격력하게 폭력적으로 저항했지만, 영국의 통치가 종식될 때 델리나 캘커타의 거리에서 영국군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제국의 자리는 많은 독립국들이 차지했다. 그 대부분은 이후 안정적인 국경선을 유지했으며 이웃나라와 대체로 평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물론 위협을 느낀 대영제국의 손에 사망한 사람은 수만 명에 이르고, 제국이 여러 분쟁지역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민족 분쟁이 분출해 수십만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특히 인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역사적 평균과 비교하면, 영국의 철수는 평화와 질서의 모범이었다.

프랑스 제국은 이보다 완고했다. 붕괴 중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피비린내 나게 벌인 탓에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역시 나머지 지역에서는 신속하고 평화롭게 철수했다. 현지에 남긴 것도 무질서한 혼란이 아니라 안정적인 국가들이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는 더더욱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발칸, 캅카스, 중앙아시아에서 민족 분쟁이 분출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랬다. 그렇게 강력한 제국이 그토록 신속하고 조용하게 사라진 예는 역사상 달리 없었다. 1989년 소련 제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를 제외하면 군사적 패배를 당하지 않았으며,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반란도 없었다. 심지어 마틴 루서 킹 스타일의 시민적 불복종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난 일도 없었다.

소련은 당시 수백만 명의 군대, 수십만 대의 탱크와 항공기, 인류 전체를 여러 차례 멸절시킬 분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붉은 군대와 여타 바르샤바 동맹군 군대는 변함없이 충성스러웠다. 만일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명령을 내렸다면, 붉은 군대는 소련에 예속되어 있던 나라들이 대중을 향해 서슴없이 사격을 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엘리트와 동유럽 대부분(루마니아와 세르비아는 제외)에 걸친 공산주의 정권은 그 군사력의 극히 일부도 사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공산주의가 파산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힘을 포기하고 실패를 인정했다.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고르바초프와 그의 동료들은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정복했던 지역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차르가 복속시켰던 발트, 우크라이나, 캅카스, 중앙아시아 모두를 해방시켰다. 만일 고르바초프가 세르비아 지도부나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인처럼 행동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팍스 아토미카

제국의 소멸 이후 등장한 독립국가들은 전쟁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매우 드문 예를 제외하면 1945년 이래 국가는 정복과 병탄을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런 정복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온 정치사의 핵심 스토리였다. 대부분의 대제국이 그런 방법으로 세워졌으며, 대부분의 통치자와 국민들은 제국이 계속해서 그렇게 돌아가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로마, 몽골, 오토만이 벌인 것과 같은 정복 전쟁은 오늘날엔 일어날 수 없다. 1945년 이래 UN의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 중 정복당해 지도상에서 사라진 곳은 없다. 때때로 제한된 지역에서 국제전이 일어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전쟁은 더 이상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국제전이 사라진 것은 서유럽의 부유한 민주국가들에서만 일어난 독특한 현상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사실 유럽에 평화가 찾아온 것은 세계 다른 곳에 이미 평화가 퍼진 이후였다. 남미 국가들 간에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심각한 국제전은 1941년 페루-에콰도르 전쟁과 1932~1935년 볼리비아-파라과이 전쟁이었다. 그 이전에 남미 국가들 간에 벌어진 심각한 전쟁은 1879~1884년 칠레가 볼리비아와 페루를 대상으로 벌인 것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아랍 세계가 평화롭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독립은 얻은 후에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대대적으로 침공한 일은 한 차례밖에 없었다(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국경에서의 충돌은 상당히 많았고(예컨대 1970년 시리아와 요르단) 다른 나라의 내정에 무력 개입한 사례도 많았다(시리아의 레바논 개입). 내전도 많았고(아라제리, 예멘, 리비아), 수많은 쿠데타와 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걸프전을 제외하면 아랍국 간의 대대적인 국제전은 없었다. 무슬림 세계 전체로 시야를 확대해 보아도 추가되는 사례는 딱 하나, 이란-이라크전뿐이다. 터키-이란전이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전 같은 것은 없었다.

아프리카 상황은 이런 장밋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지어 그곳에서도 대부분의 분쟁은 내전과 쿠데타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 독립을 획득한 이래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고 쳐들어간 경우는 극소수였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는 예전에도 있었다. 가령 1871년과 1914년 사이 유럽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기간의 끝은 언제나 나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있었던 적은 예전에는 없었다. 1871년에서 1914년 사이 유럽에서 전쟁은 받아들일 수 있는 필연이었고, 전쟁에 대한 예상이 군대와 정치인, 시민 모두의 사고방식을 지배했다.

이런 불길한 전조는 역사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평화 기간들에도 해당되었다. 국제 정치에서는 "인접한 두 정치체 사이에는 1년 내로 한쪽이 다른 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만한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이런 정글의 법칙은 19세기말 유럽, 중세 유럽, 고대 중국, 고전 시대 그리스를 지배했다. 만일 기원전 450년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평화 상태였다면, 기원전 449년에는 그들이 전쟁을 벌일 타당한 시나리오가 존재했다.

오늘날 인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드디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체들에게는 1년 내로 서로 전쟁에 돌입할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내년에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소소한 국경 충돌은 일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과거와 같은 전면전이 일어나려면, 아르헨티나의 기갑 사단들이 리오의 여러 관문으로 몰아치고 브라질의 폭격기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을 융단폭격해 가루로 만드는 일이 벌어지려면, 정말로 종말론적인 시나리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전쟁이 몇몇 국가들 사이에서 발발할 위험은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시리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미국과 이란이 그렇다. 하지만 이는 법칙을 증명하는 예외일 뿐이다. 물론 미래에는 규칙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세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순진함 자체가 더없이 매혹적이다. 평화가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사람들이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는 과거에는 달리 없었다.

이처럼 행복한 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우리가 결코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책과 논문을 써서 이 현상에 기여하는 요인을 몇 가지 확인했다.

첫 번째이자 다른 무엇보다,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모든 평화상을 종식시킬 노벨 평화상은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주어졌어야 할 것이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치조직체들은 적의 영토를 약탈하거나 병합함으로써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는 들판과 가축, 노예와 금 같은 물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약탈이나 점령이 쉬웠다.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그 결과 이것을 가져가거나 무력으로 정복하기가 어려워졌다. 캘리포니아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 그 부의 원천은 금광이었지만, 오늘날은 실리콘과 셀룰로이드(영화 필름의 재료-옮긴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 말이다. 만일 중국이 캘리포니아를 침공해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1백만 명의 병사를 상륙시키고 내륙으로 돌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들이 얻을 것은 별로 없다. 실리콘밸리에는 실리콘 광산이 없다. 부는 구글의 엔지니어들과 할리우두의 대본가, 감독, 특수효과 전문가의 마음속에 있다. 이들은 중국의 탱크가 선셋대로 진입하기 전에 인도의 방갈로르나 뭄바이로 향하는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가령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처럼 아직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몇 안 되는 국제적 전면전이 구식의 물질적 재화가 부의 척도인 지역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쿠웨이트의 왕족들은 해외로 달아날 수 있지만, 유전은 그대로 남아 점령되었다.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전통 농업 경제체제에서 장거리 교역과 해외 투자는 부차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전쟁 비용을 피하는 것을 차지하면, 평화는 그다지 수익을 낳지 못했다. 만일 1400년 프랑스와 영국이 평화 관계였다면, 프랑스인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영국 침략군의 파괴에 고통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평화가 딱히 프랑스인들의 지갑을 불려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한, 중국인들은 미국에 제품을 팔고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하며 미국의 투자를 받아서 번영할 수 있다.

마지막 요인은 세계 정치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역사상 많은 엘리트들은-예컨대 훈 족장, 바이킹 귀족, 아주텍 사제-전쟁을 긍정적인 선으로 보았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보기는 했지만 필요악으로 여겼으므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 시대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 정치인, 사업가, 지식인, 예술가 등은 진심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악이라고 본다(과거에도 초기 기독교도와 같은 평화주의가 있기는 했지만, 이들도 드물게 권력을 잡은 경우 "너의 왼뺨을 내밀어라"는 주문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세 요인 사에는 양의 되먹임 고리가 존재한다. 핵무기에 의한 대량학살 위협은 평화주의를 육성한다. 평화주의가 퍼지면 전쟁이 물러가고 무역이 번창한다. 무역의 평화의 수익과 전쟁의 비용을 모두 늘린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되먹임 고리는 전쟁에 또 다른 장애물을 만들어내는데,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모든 장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들의 독립성을 서서히 약화시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더 이상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이제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 이탈리아, 멕시코, 타이 국민들이 독립성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을지라도, 사실 그들의 정부는 독립적인 경제 외교 정책을 수행할 수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전면전을 벌이고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도 확실하다. 3장 <제국의 비전>에서 설명했듯, 우리는 지구 제국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제국 역시 그 국경 내에서 평화를 강제한다. 그리고 그 국경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세계 제국은 세계 평화를 효과적으로 강제한다.


자, 그렇다면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와 히로시마의 버섯구름과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잔학한 광인들로 대표되는 무분별한 대량학살, 전쟁, 압제의 시대인가? 아니면 남미에서 파인 적 없는 참호, 모스크바와 뉴욕에서 피어오르지 않은 버섯구름,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의 평화로운 얼굴로 대표되는 평화의 시대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시기 선택의 문제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최근 몇 년간의 사건에 의해 얼마나 크게 왜곡되는지를 깨닫는 것은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다. 만일 이 장이 1945년이나 1962년에 쓰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어두웠을 것이다. 이 책은 2014년에 쓰였기에 현대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밝은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도 있겠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으로 난 문과 다른 쪽으로 열린 입구 사이에서 초조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의 종말에 대해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으며, 일련의 우연들은 우리를 어느 쪽으로도 굴러가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