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과학혁명/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573~583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이 책의 시작에서 나는 역사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 이어진 연속체의 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사피엔스 역시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물리적 힘, 화학반응, 자연선택 과정에 종속된다. 자연선택의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어떤 생명체도 누리지 못했던 거대한 운동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장에도 여전히 경계선이 있다. 그렇다면 사피엔스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룩한다고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40억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예컨대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고대에 있었던 기린 사이의 경쟁 때문이었지, 초월적 지성을 가진 모종의 존재가 변덕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목이 좀 더 긴 원시 기린은 좀 더 많은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자신보다 목이 짧은 기린에 비해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 기린을 포함해 아무도 "목이 길다면 나무 꼭대기의 잎을 우적우적 씹어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러니 목을 늘이자"라고 말하진 않았다. 다윈의 이론이 아름다운 점은 기린이 어떻게 해서 목이 길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지적인 설계자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수십억 년 동안 생명의 역사에서도 지적설계는 가능한 선택지조차 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다른 무언가를 설계할 지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최근까지도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체였던 미생물은 나름대로 놀라운 일을 할 줄 안다. 한 종의 미생물은 완전히 다른 종의 미생물로부터 유전 부호를 가져와 자신의 세포 속에 통합함으로써 항생제 내성 같은 새로운 능력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미생물은 의식이나 삶의 목표, 미리 계획을 세우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어느 단계에선가 기린, 돌고래, 침팬지, 네안데르탈인 같은 생물들에게서 의식과 계획수립 능력이 진화했다. 하지만 설사 어떤 네안데르탈인이 아주 통통하고 행동은 굼떠서 자신이 언제든 배가 고플 때 손으로 잡기만 하면 되는 가금류를 키운다는 몽상을 품었더라도, 그에게는 그 환상을 실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자연선택된 새들을 사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런 구체제에 첫 균열이 생긴 것은 약 1만 년 전 농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통통하고 굼뜬 영계를 꿈꾸던 사피엔스들은 가장 통통한 암탉을 가장 굼뜬 수탉과 교배시키면 그 자손 중 일부는 통통하면서도 굼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자손들끼리 교배시키면, 통통하고 굼뜬 새의 혈통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계통으로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 지적으로 설계해서 만들어낸 존재였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는 전능한 신에 비교하면 여전히 설계 기술이 제약되었다. 선택교배라는 우회로를 이용하며 정상적으로 닭에게 작용하는 자연선택 과정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었지만, 야생 닭의 유전자 정보에 원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을 도입할 수는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와 닭의 관계는 자연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수많은 공생관계와 비슷했다. 사피엔스는 통통하고 굼뜬 개체들이 번성하도록 하는 독특한 압력을 닭에게 가했다. 가루받이를 하는 벌들이 맘에 드는 꽃을 선택함으로써 화려하고 밝은 색을 지닌 꽃들이 번성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40억 년에 걸쳐 이어져온 자연선택이라는 구체제는 오늘날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개체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원래 해당 종에게 없던 특성을 부여하는 정도까지 자연선택의 법칙을 위반하는 중이다. 브라질의 생물예술가인 애두아르도 카츠는 지난 2000년 새로운 예술작품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 녹색 형광 토끼였다. 그는 프랑스의 연구소와 접촉해, 자신의 설계대로 토끼가 빛을 내도록 유전자 조작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돈을 받은 연구소는 지극히 평범한 흰 토끼의 배아에 녹색 형광을 발하는 해파리 유전자를 삽입했다. 그러자 짜잔! 녹색 형광 토끼 한 마리가 탄생했다. 카츠는 이 토끼에 '알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알바의 존재는 자연선택의 법칙으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암토끼는 지적설계의 산물이며, 앞으로 올 것에 대한 선구자이다. 만일 알바가 상징하는 잠재력이 모두 실현된다면 - 그리고 만일 인류가 그때까지 스스로를 멸절시키지 않는다면 - 과학혁명은 단지 하나의 역사적 혁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혁명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지난 40억 년이 자연선택의 기간이었다면, 이제 지적인 설계가 지배하는 우주적인 새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다. 알바는 그 시대의 새벽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때가 도래하면, 그 이전의 인류사 전체는 생명이라는 게임에 혁명을 일으킨 실험 및 견습 과정이었다고 뒤늦게 재해석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천 년 단위의 인간적 시각이 아니라 십억 년 단위의 우주적 시각으로 조망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생물학자들은 도처에서 지적설계(창조론) 운동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는 데 반대하는 지적설계 운동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학적 복잡성은 모든 생물학적 세부사항을 미리 생각해 낸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과거에 대해서는 생물학자들이 옳지만, 미래에 대해서라면 역설적으로 지적설계 옹호자들이 맞을지 모른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잇는 지금도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는 일이 진행 중일 수 있다. 그 방법은 세 가지인데 첫째가 생명공학, 둘째가 사이보그 공학(사이보그는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존재다). 셋째가 비유기물공학이다.
생명공학은 생물학의 수준에서 인간이 계획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예컨대 유전자 이식). 가령 에두아르도 카츠의 예술적 변덕처럼 미리 생각해 둔 모종의 문화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 생물의 형태, 능력, 필요나 욕구나 욕망 등을 변형하겠다는 목적이다. 생명공학은 그 자체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다른 생명체의 형태를 바꾸기 위해서 수천 년간 이를 활용해 왔다. 간단힌 예가 거세다. 인간이 황소bull를 거세해 거세 황소(OX, 일을 시키기 위해 거세한 소 - 옮긴이)를 만든 역사는 아마도 1만 년은 될 것이다.
거세 황소는 공격성이 덜하기 때문에 쟁기를 끌도록 훈련시키기가 더 쉬웠다. 인간은 또한 자기 종의 젊은 수컷도 거세했다.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가수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이슬람 왕의 하렘을 돌보는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환관을 만들기 위해서, 하지만 인류가 생명체의 작동 방식을 세포 및 세포핵 수준까지 이해하게 되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 오늘날 우리는 남자를 거세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술 및 호르몬 치료를 통해 아예 여성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1996년 566쪽.의 사진이 신문과 TV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보였던 경악과 혐오를 떠올려보라. 이 사진은 포토샵을 이용해 조작한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생쥐의 등에 소의 연골을 이식한 모습을 찍은 진짜 사진이다. 이들은 새 조직의 성장을 조절함으로써 이 경우 인간의 귀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발생하게 만들었다. 머지않아 과학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인가나에게 이식 가능한 인공 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유전공학을 이용하면 이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도 해낼 수 있다.
유전공학에 다수의 윤리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쟁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신의 역할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을 펴는 것은 독실한 일신론자들만이 아니다. 수많은 확고한 무신론자들도 과학자들이 자연의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에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동물권리 운동가들은 유전공학 실험의 대상이 된 동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한다. 스스로의 필요나 욕망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전자가 조작된 가축이 받는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권 운동가들은 유전공학이 우리 모두를 노예로 삼을 슈퍼맨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구약의 예레미야서는 생물학적 독재자가 두려움 없는 병사와 복종하는 노동자를 대량 복제한다는 종말론적 전망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체로 너무나 많은 가능성의 문이 너무나 일찍 열리고 있고, 우리의 유전자 조작 능력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이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할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고 느낀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유전공학의 잠재력 중 일부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조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생명체 대부분 -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곤충 - 은 정치적 로비 능력이 제일 적은 것들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계통의 대장균은 인간의 장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박테리아인데, 장을 벗어나 치명적 감염을 일으키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대장균과 여러 종의 곰팡이 유전자를 조작해 인슐린을 생성했고, 그 덕분에 당뇨병 치료비가 낮아졌다. 북극에 사는 어느 물고기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감자에 삽입해 서리에 저항력을 가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포유류 중에도 유전공학의 대상이 된 동물이 일부 있다. 낙농산업은 젖소의 젖통에 생기는 유선염 탓에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현재 리소스타린이 포함된 우유를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젖소를 실험하는 중이다. 리소스타핀은 유선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항균성 효소다. 돼지 산업의 매출은 줄어들고 있는데, 햄과 베이컨에 있는 지방이 건강에 해롭다며 소비자들이 경계하는 탓이다. 그래서 요즘 돼지 산업은 벌레에서 추출한 유전물질을 돼지에 삽입하는 실험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 유전자는 몸에 해로운 오메가-6 지방산을 건강에 이로운 오메가-3 지방산으로 바꿔준다.
차세대 유전공학은 이로운 지방을 지닌 돼지를 만드는 일쯤은 애들 장난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유전공학자들은 벌레의 수명을 여섯 배로 늘렸을 뿐 아니라, 기억과 학습능력이 크게 개선된 천재 생쥐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생쥐 비슷하게 생긴 밭쥐는 크기가 작고 통통한 설치류다. 대부분의 밭쥐 종은 난교를 한다. 하지만 암수가 평생 일부일처 관계를 맺는 종도 하나 있다. 유전학자들은 밭쥐의 일부일처제에 원인이 되는 유전자들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바람둥이 밭쥐에게 유전자 하나를 삽입함으로써 충실하고 애정 깊은 남편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쥐(그리고 사람)의 개체의 행태뿐 아니라 그 사회구조까지 유전적으로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유전학자들이 조작하기를 원하는 대상은 생존한 계통에 국한되지 않는다. 멸종 동물도 대상이 된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공룡만이 아니다. 최근 러시아, 일본, 한국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진은 시베리아의 얼음 속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이제 이들은 현생 코끼리의 수정란에서 코끼리 DNA를 제거하고 매머드에서 복원한 DNA를 삽입한 뒤 그 수정란을 암코끼리의 자궁에 다시 집어넣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 22개월 후에는 지난 5천 년 사이에 처음으로 매머드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매머드만으로 끝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최근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처치 교수는 이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으나 복원한 DNA를 사피엔스의 난자에 이식할 수 있고, 그러면 지난 3만 년 이래 처음으로 네안데르탈인 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작 3천만 달러만 있으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여성이 대리모 역할을 자원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왜 필요할까? 일각에서는 만일 우리가 살아 있는 네안데르탈인을 연구할 수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독특성에 관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질문의 일부에 답을 얻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뇌와 호모 사피엔스의 뇌를 비교하고 구조상의 차이에 대한 지도를 만들면 과연 어떤 생물학적 변화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지니는 종류의 의식이 생성된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윤리적 명분도 제기한다. 만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 호모 사피엔스의 책임이라면 이들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들이 주위에 있으면 쓸모가 많을 수도 있다. 많은 제조업자가가 사피엔스 두 배 몫의 육체 노동력을 지닌 네안데르탈인에게 기꺼이 돈을 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에서 그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느님의 제도판으로 돌아가서 보다 나은 사피엔스를 설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 필요, 욕망에는 유전적 바탕이 있고, 사피엔스의 유전체라고 해서 밭쥐나 생쥐의 유전체보다 크게 복잡한 것은 아니다(생쥐의 유전체를 이루는 염기서열은 25억 개, 사피엔스는 29억 개다. 생쥐보다 14퍼센트 많은 정도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제,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이 천재 생쥐를 만들 수 있다면 천재 인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일부일처제 밭쥐를 창조할 수 있다면 평생 배우자에게 충실하도록 유전적으로 타고난 인간을 왜 못 만들겠는가?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별반 중요치 않은 유인원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변화했다. 이 혁명에는 생리기능의 변화는 물론이요, 사피엔스의 뇌 크기나 외부 형태에도 뚜렷한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뇌 내부 구조의 작은 변화 이상은 관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약간의 추가적 변화만 있으면, 제2차 인지혁명의 불이 붙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의식이 창조되고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가 아직 이를 달성하기 위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초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막는 극복할 수 없는 기술적 장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된 장애는 윤리적, 정치적 반대이다. 인간에 대한 연구 속도가 느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주장이 아무리 그럴싸하다 해도, 그것으로 다음 단계의 발전을 오랫동안 지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발전에 인간의 수명을 무한히 연장하고, 불치병을 정복하며, 우리의 인지적 정서적 능력을 향상시킬 성패가 달려 있다면 특히 그렇다.
우리가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그 약이 건강한 사람의 기억력을 극적으로 증진시키는 부수효과가 있다면 어떨까? 누가 그와 관련된 연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치료제가 개발되었을 때 그 약을 알츠하이머 환자만 사용하도록 하고 건강한 사람은 이를 복용해 천재적 기억력을 얻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어떤 법 집행기관이 그럴 수 있을까? 생명공학이 네안데르탈인을 정말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막을 내리게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유전자 조작! 인간의 멸종은 면하다 해도, 거듭되는 실험과 연구로 인한 정체성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00년 200년 500년 후 변화돼 있을 인류의 모습에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