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지혁명/2. 지식의 나무(72쪽~81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2. 지식의 나무
단어를 통해 가상의 실재를 창조하는 능력은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도 했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신화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로 신화를 바꾸면 인간의 협력방식도 바뀔 수 있다.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신화는 급속하게 바뀐다. 1789년 프랑스인들은 왕권의 신성함이라는 신화를 믿다가 거의 하룻밤 새 국민의 주권이라는 신화로 돌아섰다. 그 결과 인직혁명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필요의 변화에 발맞춰 행동을 신속하게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은 유전적 혁명이라는 교통체증을 우회하는 고속도로, 즉 문화혁명의 길을 열었다. 이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주행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협력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인간 및 동물 종을 크게 앞질렀다.
다른 사회적 동물들의 행태는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DNA는 독재자가 아니다. 동물의 행태는 환경요인과 개별적 우연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같은 환경이 주어졌을 때 같은 종에 속하는 동물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사회적 행태의 심각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유전적 돌연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예컨대 보통이 침팬지가 지닌 유전적 경향은 알파 수컷이 이끄는 집단 내에서 위계질서를 지키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와 대단히 가까운 종인 보노보는 보통 암컷 동맹이 지배하는 보다 평등한 집단을 이루며 사는 것이 보통이다. 암컷 침팬지가 보노보 친척에게 한 수 배워서 페미니스트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수컷 침팬지들이 모여 제헌의회를 만들고 알파 수컷이라는 자리를 없애버린 다음 이제부터 모든 침팬지는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선언할 수도 없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침팬지의 DNA가 어떻게든 변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원시인류는 어떤 혁명도 시도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한, 사회 패턴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발명, 새로운 주거지에의 정착은 문화가 개시한 일이라기보다는 유전자 돌연변이와 환경의 압력에 따른 결과였다. 인류가 이런 단계를 거치는데 수십만 년이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백만 년 전,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호모 에렉투스라는 새로운 인간 종이 등장했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요즘 이 종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새로운 석기 제작 기술이 발달했다. 호모 에렉투스에게 또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동안, 이들의 석기도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거의 2백만 년 동안이나!
대조적으로,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톨릭 신부, 불교의 승려, 중국의 환관처럼 아이를 갖지 않는 엘리트가 계속 등장했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의 존재는 자연선택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 모순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아이 낳기를 기꺼이 포기했으니까 말이다. 침팬지 알파 수컷은 권력을 이용해 가능한 많은 암컷들과 성관계를 맺고 그 결과 무리의 어리고 젊은 층 가운데 많은 수가 알파 수컷의 자식인 데 비해, 가톨릭의 알파 수컷은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고 가정을 꾸리지도 않는다. 이런 금욕의 원인은 먹을거리가 크게 부족하다든가 잠재적인 짝짓기 상대가 부족하다든가 하는 특수한 환경적 존건이 아니다. 무언가 특이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결과도 아니다. 가콜릭 교회가 10여 세기 동안 살아남은 것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독신주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약과 가톨릭 교회법의 이야기를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 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1900면 베를린에서 태어난 사람이 1백 세까지 장수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녀는 어린 시절을 빌헬름 2세의 호엔촐레른 제국에서 보냈고, 성년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제3제국 그리고 공산주의 동독에서 살았고, 죽을 때는 재통일된 민주주의 독일의 시민이었다. 그녀는 매우 다른 다섯 가지 사회 정치 체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DNA는 계속 똑같았는 데도 말이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를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맞붙는다면 네안데르탈인에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사자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었다. 급속하게 바뀌는 외부의 도전에 맞게 자신들의 사회적 행태를 바꿔 적응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볼 수 없지만, 사피엔스와 비교했을 때 그들의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간접 증거를 가지고 있다. 유럽 대륙의 중심부에서 3만 년 전의 사피엔스 유적지를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은 가끔씩 지중해나 대서양 연안에서 온 조개껍데기를 발견한다. 이런 조개껍데기들은 여러 사피엔스 무리들 간의 장거리 교역을 통해 대륙의 내부까지 들어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서는 그런 교역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네안데르탈인 무리는 각자 현지에 있는 재료로 자신들이 쓸 도구를 만들었다.
남태평양에도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뉴기니와 북부 뉴아일랜드섬에 살던 사피엔스 무리들은 특별히 단단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 때 흑요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뉴아일랜드에는 흑요석의 천연산지가 없다. 실험실에서 분석한 결고, 이들이 사용한 흑요석은 4백 킬로미터 떨어진 뉴브리튼에 있는 광산에서 가져온 것을 밝혀졌다. 이들 섬의 주민들 중 일부는 섬에서 섬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며 무역을 하는 숙련된 항해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교역은 매우 실용적인 활동, 허구적 근거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활동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사피엔스의 교역망은 모두 픽션에 근거를 둔다. 교역은 신뢰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모르는 사람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날 전 지구적 교역망은 화폐, 은행, 기업과 같은 허구의 실체들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잇다. 현대 화폐의 도안에는 통상 종교적 이미지, 존경받는 조상, 공동의 토템이 담겨 있다.
부족사회에서 두 낯선 사람이 서로 교역을 하고 싶다면, 공통의 신, 공통의 신화적 조상이나 토템 동물에게 호소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할 것이다. 만일 그런 픽션들을 믿는 원시 사피엔스가 조개껍데기와 흑요석을 교역했다면, 이들은 정보를 주고받는 교역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으로써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여타 원시인류가 활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밀도 있고 폭넓은 지식망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차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사냥기술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보통 혼자 아니면 작은 집단으로 사냥했다. 이와 달리 사피엔스는 수십 명이 협력하는 사냥기술을 개발했다. 심지어 각기 다른 무리가 연합해서 사냥하기도 했을 것이다. 특별히 효과적인 사냥기술 가운데 하나는 야생마 같은 동물 떼 전체를 에워싸고 좁은 협곡으로 추적해서 몰아넣는 것이다. 이렇게 몰아넣으면 대량으로 죽이기가 쉽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이들 무리는 어느 오후에 한나절 협력을 통해 몇 톤에 이르는 고기와 지방과 동물 가죽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부는 대대적인 선물잔치로 소비해 버릴 수도 있었고, 말리고 연기에 그슬고 극지방의 경우 얼려서 나중에 쓸 수도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해마다 동물무리 전체가 도살된 유적지를 여러 곳 발견했다 울타리와 장애물을 설치해서 인공적인 함정과 도살장을 만든 유적지도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입장에서는 전통적 사냥터가 사피엔스가 통제하는 도살장으로 변하는 것이 보기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두 종 간에 폭력이 발생하면, 네안데르탈인은 야생마보다 형편이 썩 더 낫지 않았다. 전통적이고 정적인 패턴으로 협력하는 50명의 네안데르탈인은 융통성이 많고 창의적인 사피엔스 5백 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사피엔스가 1회전에서 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음번에는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재빨리 찾아냈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혹은, 꼭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선사시대에 속했다(나는 '선사시대'란 표현을 피하려 하는데, 인지혁명 이전에도 인류가 하나의 동일한 범주에 속했다는 오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기독교나 프랑스혁명의 부상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호르몬과 생물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개념과 이미지와 환상이 벌이는 상호작용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와 인류문화가 생물학의 법칙을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며 우리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능력은 여전히 DNA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네안데르탈인이나 침팬지 사회와 같으며, 감각, 정서, 가족 간 유대 같은 요소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와 다른 유인원 간에 차이가 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차이를 찾으려 하는 것은 실수다.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다. 숫자가 1천~2천 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만일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 명씩 모인다. 인간은 교역망이나 대중적 축하행사, 정치제도 등의 질서 잇는 패턴을 함께 창조한다.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大家)로 만들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능력 같은 다른 기술도 필요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도구 제작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만 년 전만 해도 막대기와 돌로 된 창밖에 없었던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핵탄두를 지닌 대륙 간 미사일을 만들었을까? 생리학적으로 지난 3만 년 사이에 우리의 도구 제작 능력이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고대 수렵채취인에 비해 손재주가 훨씬 뒤떨어졌다. 하지만 많은 수의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는 우리의 능력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고대의 창촉은 고대인 한 명이 친한 친구 몇 명에게서 조언과 도움을 얻어 몇 분 내지 몇십 분만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늘날 핵탄두를 제조하려면, 전 세계의 서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해야 한다. 지구 깊숙한 곳에서 우라늄 광석을 채취하는 광부에서부터 아원자 입자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기다란 수학 공식을 쓰는 이론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인지혁명 이후 생물학과 역사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생물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과 능력의 기본 한계를 결정한다. 모든 역사는 이런 생물학적 영역의 구속 내에서 일어난다.
2. 하지만 이 영역은 극도로 넓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3. 결과적으로, 사피엔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진화해 온 경로를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생물학적 속박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면서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운동장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석기시대 조상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어떤 게임을 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3만 년 전쯤 슈타델의 사자-남자를 조각한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 동일한 육체적, 감정적,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했을까? 아침으로는 무얼 먹었을까? 점심으로는? 그들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부일처제를 맺고 핵가족을 유지했을까? 전쟁은 치렀을까? 다음 장에서 우리는 세월의 장막을 살짝 들추어, 인지혁명 이후 농업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수천수만 년 동안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