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16

제1부 인지혁명/ 4. 대홍수(114쪽~117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4. 대홍수


인지혁명 이전의 인간 종은 모두가 아프로아시아 육괴(아프리카와 아시아가 합쳐진 고대륙-옮긴이)에서 살았다. 물론 가까운 거리의 섬 몇 곳은 헤엄을 치거나 급조한 뗏목을 타고 건너가서 정착하기도 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소순다 열도의 플로레스 섬은 85만 년 전에 이미 거주지로 개척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큰 바다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없었으며, 아무도 아메리카, 호주 혹은 더욱 먼 곳인 마다가스카르, 뉴질랜드, 하와이에는 가지 못했다.

바다라는 장벽은 인간만 가로막은 것이 아니다. 아프로아시아 육괴에 살던 동식물 중 많은 종이 '외부세계'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결과 호주나 마다카스카르 같은 먼 곳의 생물들은 고립된 상태로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하여 형태나 성질이 멀리 아프로아시아 친척들과는 아주 달라지게 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은 각기 구별되는 여러 생태계로 나뉘어 있었고, 구역마다 각자 독특한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 바야흐로 호모 사피엔스는 이 같은 생물학적 풍요로움에 종말을 가져올 참이었다.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아프로아시아를 벗어나 외부세계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전망까지도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업적은 약 45,000년 전에 호주에 정착한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 위업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호주에 도달하려면 수많은 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일부는 폭이 1백 킬로미터를 넘는다. 그리고 그들은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하룻밤 만에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해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이론에 따르면, 약 45,000년 전에 인도네시아 제도(아시아 대륙과 좁은 해협으로 분리된 섬들로 섬 사이의 거리도 좁다)에서 살던 사피엔스가 최초의 항해사회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건조하고 움직이는 법을 습득해서 장거리 어부, 교역자, 탐험자가 되었다. 이는 인류의 능력과 생활방식에 전대미문의 변화를 초래했을 것이다. 바다로 나간 다른 포유동물, 즉 바다표범, 바다소, 돌고래 등은 전문화된 장기와 유체역학적 신체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오랜 시간 진화해야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유인원의 후손인 사피엔스는 물갈퀴를 길러내거나 고래처럼 코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태평양의 해상여행자가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배를 건조하고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기술 덕분에 호주까지 가서 정착할 수 있었다.

사실 고고학자들은 연대가 4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어촌이나 뗏목이나 노를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황증거가 있다. 호주에 정착한 지 수천 년 만에 사피엔스가 그 북쪽에 있는 고립된 작은 섬들을 수없이 식민화했다는 점이다. 부카나 마누스 같은 일부 섬과 가장 가까운 육지 사이에는 193킬로미터나 되는 대양이 가로막고 있다. 정교한 선박과 항해술 없이 누군가가 그곳에 도착해 정착촌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뉴아일랜드나 뉴브리튼 같은 일부 섬들 간에 정기적인 해상교역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있다.

최초의 인류가 호주까지 여행을 한 것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거나 아폴로 11호 탐험대가 달에 착륙한 것 못지않다. 이것은 인류가 어떻게 해서든 아프로아시아 생태계를 떠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사실 대형 육상동물이 어찌어찌해서 아프로아시아에서 호주로 건너간 첫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선구자들이 그 신세계에서 저지른 짓이다.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40억 년 동안의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이전에도 인간은 획기적인 적응과 행태를 조금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환경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만했다. 다양한 서식지에 침투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서식지를 극적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반면에 호주 정착민들, 보다 정확하게는 정복자들은 현지 생태계에 적응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

호주 해안 모래밭에 찍힌 인간의 첫 발자국은 곧바로 파도에 씻겨버렸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내륙으로 진격하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몸무게 2백 킬로그램에 키 2미터인 캥거루, 대륙에서 몸집이 너무 커서 귀엽거나 깜찍한 것과는 거리가 먼 코알라들이 나무 위에서 바스락거렸고, 타조 두 배 크기의 날지 못하는 새들이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용 같은 도마뱀과 5미터 길이의 뱀들이 덤블 속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무게 2.5톤에 이르는 웜뱃(작은 곰같이 생긴 호주 동물, 캥거루처럼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서 기른다-옮긴이)인 디프로토돈이 숲속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새와 파충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이 유대류였다. 이들은 캥거루처럼, 아주 작고 무력한 태아 같은 새끼를 낳은 뒤 배에 있는 주머니에 넣어 모유를 먹여 키웠다. 유대류의 포유동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주에서는 이미 이들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로부터 몇천 년 지나지 않아, 대형동물은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몸무게 50킬로그램이 넘는 호주의 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다. 이보다 작은 종도 대량으로 사라졌다. 호주 전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재조정되었다. 이것은 지난 수백만 년 이래 호주 생태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이 모든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탓이었을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선구자들이 그 신세계에서 저지른 짓이다.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40억 년 동안의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인간이 머문 자리는 흔적이 남는다.

생태계 파괴,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쭈욱 파괴 돼오고 있었다. 앞으로 십 년 후, 백 년 후 어떤 동물이 사라지고 어떤 동물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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