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142쪽~149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농업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발생했다. 버섯과 건과류를 채취하고 사슴과 토끼를 사냥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한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영구히 정착해서 밭을 갈고 밀씨를 뿌리고 강에서 물을 끌어오게 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단계별로 일어났고 각 단계는 일상생활의 조그만 변화를 포함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7만 년 전 중동에 도착했다. 그 후 5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농업 없이 번성했다. 그 지역의 자연자원은 인구를 지탱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절에는 아이를 좀 더 많이 낳았고 궁핍한 시절에는 약간 덜 낳았다. 인간은 다른 많은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조절하는 호르몬과 유전자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풍족한 시절에 여자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오고 임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다. 어려운 시절에는 사춘기가 늦게 오고 번식력이 떨어진다.
이런 자연적 인구조절에 문화적 메커니즘이 추가된다. 아기와 어린이는 동작이 굼뜨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방랑하는 수렵채집인들에게 부담이었다. 사람들은 3~4년 터울로 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여성들은 24시간 내내, 늦은 나이까지 아이에게 젖을 먹임으로써 터울을 두었다(24시간 수유는 임신 가능성을 크게 낮춘다). 다른 방법으로는 완전하거나 부분적인 금욕(아마도 문화적 터부의 뒷받침을 받는), 낙태, 때로는 유아 살해 등이 있었다.
이렇게 이어진 수천수만 년 동안 사람들은 가끔 밀알을 먹었지만, 이것이 식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았다. 약 1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가고 온난화 시기가 도래했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비가 많이 내렸다. 새로운 기후는 중동의 밀을 비롯한 곡물에 이상적이었고, 이들은 증식하고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밀을 더 많이 먹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무심코 밀이 퍼지는 데 기여했다. 야생 곡식은 키질을 하고 껍질을 까고 익혀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곡류를 임시 야영지로 가져와서 처리해야 했다. 밀 낟알은 작고 숫자가 아주 많기 때문에, 야영지로 오는 동안 일부는 떨어트리고 잃어버리게 마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오솔길과 야영장 주위에 점점 더 많은 밀이 자라게 되었다.
사람들이 숲과 덤불을 불태우는 것은 밀에게 도움이 되었다. 불은 크고 작은 나무들을 제거해서 밀과 여타 풀들이 햇빛과 물, 영양소를 독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차츰 방랑하는 생활방식을 포기하고 정착했다. 밀이 특히 풍부하고 사냥감과 여타 식량 자원이 풍부한 곳에 계절별로 혹은 아예 영구히 캠프를 차린 것이다.
처음에는 수확기에만 4주간 캠프를 차렸을지 모른다. 한 세대가 지나자, 밀이 번식하고 퍼져나감에 따라 수확 캠프는 5주로, 다시 6주로 늘다가 마지막에는 정착 마을이 되었다. 그런 정착촌의 증거는 중동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레반트 지역이 대표적인데 기원전 12500~9500년에 이곳에서 나투프 문화가 번성했다. 나투프인들은 수렵채집인으로서 수십 종의 야생 동식물을 먹이로 삼았지만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야생곡물을 집약적으로 채취하고 가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돌집과 곡물 저장고를 짓고 어려운 시기에 대비해 곡물을 저장했다. 또한 야생 밀을 수확하기 위한 돌 낫, 밀을 빻는 돌 막자와 돌 막자사발 등의 새로운 도구를 발명했다.
기원전 9500년 이후 나투프인의 후예들은 계속해서 곡물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한편, 이것들을 좀 더 정성 들여 재배하기 시작했다. 야생곡물을 채취해서 일부를 따로 보관했다가 다음 계절에 씨를 뿌렸다. 씨를 되는대로 표면에 뿌리는 것보다 땅속 깊이 심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괭이질과 쟁기질도 하기 시작했다. 밭에서 잡초를 뽑고 기생충을 막아주고 물을 대고 비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되면서 야생 동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렵채집인은 농부가 되었다.
야생 밀을 채집하던 여자가 단번에 재배용 밀을 경작하는 여자로 변신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농업으로 결정적 이행이 이뤄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원전 8500년이 되자 중동에는 여리고 같은 영구 정착촌이 여럿 나타났다. 이곳의 거주민은 재배용 작물을 경작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식량공급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방랑하는 삶을 포기하자 여성은 매년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기는 젖을 일찍 뗐다. 죽 같은 이유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밭에는 추가 일손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먹을 입이 늘면서 여분의 식량은 재빠르게 고갈되었고, 따라서 경작지를 더욱 늘릴 필요가 있었다. 질병이 들끓는 정착지에 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모유를 덜 먹고 곡물을 더 많이 먹게 되면서, 아이들이 죽을 더 먹으려 형제자매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어린이 사망률은 급격히 치솟았다.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최소한 어린이 세 명 중 한 명이 20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하지만 출생률 증가가 사망률 증가율을 앞질렀다. 사람들은 계속 이전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
시간이 흐르자 '밀 거래'의 부담은 점점 더 커졌다. 아이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어른들은 땀에 젖은 빵을 먹었다. 기원전 8500년 여리고의 평범한 사람은 기원전 9500년이나 기원전 13000년의 사람에 비해 더욱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잇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여기저기 작은 개선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오류를 범했을까?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추가로 노동을 더 하려고 결정할 때, 가령 씨를 표면에 뿌리기보다 괭이로 땅을 파기로 결정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그것은 이치에 닿았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계획은 그랬다.
계획의 첫 단계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또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또한 풍년에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자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백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 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 명이 있었겠는가? 돌아갈 길은 없었다. 덫에 딱 걸리고 말았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 시대의 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종이 우편물 시대에 편지를 쓸 때는 대개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뿐이었다. 머릿속에 처음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역시 그렇게 심사숙고한 답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고받는 편지가 한 달에 몇 통 되지 않았으며 당장 답방을 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지도 않았다. 오늘날 나는 매일 열 통이 넘는 메일을 받고, 상대방은 모두 즉각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리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이메일 계정 만들기를 거부하는 신기술 반대론자도 드문드문 있기는 하다. 마치 수천 년 전 농경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사치품 함정을 비켜갔던 일부 인간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농업혁명은 해당 지역의 모든 무리의 동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동이 중미 어느 지역에서든 일단 한 무리가 정착해서 경작을 시작하면 농업은 저항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농경이 급속한 인구성장의 조건을 만들어준 덕분에, 농부들은 순수한 머릿수의 힘만으로 언제나 수렵채집인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수렵채집인은 자신들의 사냥터를 들판과 목초지로 내주고 도망치거나 스스로 쟁기를 잡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어는 쪽이든 과거의 삶의 방식은 끝난 것이었다.
사치품의 함정 이야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일부러 농업혁명을 구상하거나 인간을 곡물 재배에 의존하게 만들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배를 좀 채우고 약간의 안전을 얻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일련의 사소한 결정이 거듭해서 쌓여,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사계절을 다른 색으로 보여주는 자연, 당연한 듯 우리 곁에 있는 사물들, 어느 하나 처음의 모습이 아니다. 자연은 멸종과 파괴를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렀고, 우리가 사용하는 온갖 것들, 필요에 의해 발명되고, 편리를 위해 개발된 것들이다. 그러나 생활의 편리함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점, 유발 하라리는 계속해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