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37

제2부 농업혁명/ 8. 역사에 정의는 없다(236~244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근력

가장 흔한 이론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기 때문에 더 큰 완력을 사용해서 여자를 강제로 굴복시켰다고 말한다. 같은 주장을 좀 더 교묘하게 펼치는 버전에서는 남자는 힘이 세기 때문에 밭 갈기나 추수처럼 힘든 노동이 필요한 업무를 독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남자는 덕분에 식량생산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것이 정치적 영향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력을 강조하는 데는 두 가지 문재가 있다. 첫째,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진술은 평균적으로만,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옳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굶주림, 질병, 피로에 대한 저항력이 남자보다 크다. 또한 많은 남자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여자도 많다. 게다가 이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통틀어 여자는 육체적 노력이 거의 필요 없는 직업(사제, 법률가, 정치인)에서 대체로 배제되어 왔으면서도 들일이나 수공예, 가사노동처럼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했다는 점이다. 만일 사회적 권력의 분할에 육체적 힘이나 지구력이 직접 관련되었다면 여자는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이십 대의 청년들이 연장자들보다 훨씬 힘이 센 데도 불구하고, 육십 대의 사람들이 이십 대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19세기 중반 앨라배마의 목화 농장주는 자신의 노예 가운데 누구와 레슬링을 벌였어도 즉시 땅바닥에 깔렸을 것이다. 이집트 파라오나 가톨릭 교황이 권투시합으로 선출된 일은 없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조직범죄단의 두목을 반드시 가장 강한 사람이 맡는 것은 아니다. 두목은 몸소 주먹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문 연장자로서 더 젊고 건장한 이들로 하여금 자기 대신 더러운 일을 하게 만들 때가 많다. 두목을 두들겨 패서 범죄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뭔가 배울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심지어 침팬지 사회에서도 알파 수컷은 다른 수컷 및 암컷과 안정적인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아무 생각 없는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신체적 기량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육체노동은 하층계급이 맡는다. 이것은 어쩌면 먹이사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차지하는 지위를 반영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만일 적나라한 신체적 능력만 중요했다면, 사피엔스는 먹이 사다리의 중간쯤에 존재했을 것이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따라서 우리 종 내의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남자가 신체적 힘으로 여자를 강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질서의 토대라고 믿기는 어렵다.


사회의 쓰레기

또 다른 이론은 남성의 지배가 힘이 아니라 공격성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 결과, 남자는 여자보다 폭력성을 훨씬 더 많이 갖게 되었다. 증오와 탐욕과 학대에 관해서라면 여자도 남자에 필적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순수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려는 경향은 남자가 더 크다고 이 이론은 설명한다.

역사를 통틀어 전쟁이 남자의 특권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전시에 군대를 통제하는 것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민간 사회에서도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민간 사회에 대한 통제권을 이용해서 더 많은 전쟁을 벌였고, 전쟁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회에 대한 남자의 통제력도 커졌다. 이런 되먹임 고리는 전쟁이 도처에 존재하고 가부장제가 도처에 존재하는 이유를 둘 다 설명해 준다. 남녀의 호르몬 체계와 인지체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도 남자가 실제로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따라서 평균적으로 볼 때 병사로 복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가정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병사가 모두 남자라고 해서 전쟁을 관리하고 그 결실을 차지하는 사람도 남자라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노예가 모두 흑인이라고 해서 농장주도 흑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 백인인 경영자들이 모두 흑인인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것처럼 여성이 모두 장악하거나 부분적으로 참여한 정부가 남성으로만 구성된 군대를 통제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까? 사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사회에서 고위 장교는 병사 계급에서 승진해 올라간 사람이 아니었다. 귀족, 부유층,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동으로 장교로 임명되었으며, 이들은 단 하루도 병사로 복무한 일이 없었다.

나폴레옹의 숙적 웰링턴 공작은 18세에 영국군에 들어갔을 때 즉각 장교로 임관되었다. 그는 자신의 지휘를 받은 평민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지상의 쓰레기들을 징집해 병사로 쓰고 있다." 그는 프랑스와 전쟁하던 시기에 동료 귀족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수민족(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 같은)에서 충원되었다. 이들이 군대에서 승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높은 계급은 공작, 군주, 왕을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어째서 공작부인이 아니라 공작이어야 한단 말인가?

아프리카에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고 방어한 것은 세네갈인, 알제리인, 프랑스 노동계층 남자의 땀과 피였다. 병사 중에서 명문가 출신의 프랑스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을 이끌고 제국을 통치하며 그 결실을 누린 소규모 엘리트 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왜 프랑스 여자가 아닌 프랑스 남자들뿐이었을까?

중국에서는 군을 민간 관료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칼이라고는 한 번도 휘둘러보지 못한 관리가 전쟁을 지휘하는 경우가 흔했다. "좋은 쇠로 못을 만드는 것은 낭비다." 중국의 속담인데, 정말 재능 있는 사람들은 민간 관료가 되지 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 관료는 모두가 남자였을까?

여자는 체력이 약하거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탓에 성공한 관료나 장군, 정치인이 될 수 없었다는 주장에는 타당성이 없다. 전쟁을 이끌려면 분명 지구력이 필요하지만 강인한 체력이나 큰 공격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술집에서 벌이는 주먹다짐이 아니다. 고도의 조직과 협동, 유화정책을 필요로 하는 매우 복잡한 프로젝트다.

보통 승리의 열쇠는 본국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해외에서 동맹국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특히 적군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격적인 야수는 전쟁 지휘관으로서 최악일 때가 많다. 그보다는 유화정책을 쓸 줄 알고, 사람들을 조작할 줄 알고,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아는 협동적인 인물이 훨씬 낫다.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이런 특징들을 갖추고 있었다. 군사적으로 무능했던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는 안정적인 제국 체제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여,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했다. 당대에 그를 칭송했던 사람들과 현대 역사가들은 공히 그가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온화함과 관용이라는 미덕 덕분이었다고 해석하곤 한다.

흔한 고정관념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남을 조종하고 유화책을 쓰는 능력이 우월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시작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고정관념에 진실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여자들은 뛰어난 정치가나 제국 건설자가 되었어야 한다. 전장에서의 더러운 일은 테스토스테론이 가득 찬 단순한 마초들에게 맡기고 말이다. 대중적인 신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부장적 유전자

세 번째 유형의 생물학적 설명은 완력이나 폭력성은 덜 중요하게 보고, 대신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남녀가 각기 다른 생존 및 번식 전략을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남자들이 가임기 여성을 임신시킬 기회를 놓고 서로 경쟁할 때, 번식에 성공할 확률은 무엇보다도 남자들을 넘어서서 이기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장 야심 차고 공격적이며 경쟁적인 남자의 남성적인 유전자들이 후대에 물려지게 되었다.

반면에 여자들은 자신을 임신시킬 남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에게 손주들을 안겨줄 아이를 원한다면, 자궁 속에 9개월간 아기를 힘들게 품어야 했고 출산 후에는 오랫동안 양육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식량을 구할 기회가 평소보다 줄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는 남자가 필요했다. 자신과 자녀의 생존을 보장하려면, 남자가 내세운 조건은 뭐든 받아들이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야 함께 지내면서 부담을 나눌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순종적이고 집안을 잘 돌보는 여자의 여성적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인 여자는 자신의 강력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지 못했다.

이론은 남녀의 생존전략이 이렇게 달랐던 탓에 남자는 야심 있고 경쟁적이며 정치와 상업에 뛰어나도록 프로그램된 데 비해, 여자는 그런 것을 피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헌신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 역시 경험적 증거를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는 가정, 그리고 남자의 경쟁성이 남서의 사회적 우세를 낳았다는 가정이다.

동물의 세계는 코끼리나 보노보처럼 의존적인 암컷들과 경쟁적인 수컷들 간의 역학관계의 결과로 모권 중심의 사회가 나타난 종이 많다. 암컷들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을 발달시켜야 했으며, 협력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들은 암컷들로만 구성된 사회적 네트워크를 건설해서 서로 도우며 새끼를 키우게 되었다. 한편 수컷들은 싸우고 경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수컷들의 사회적 기술과 사회적 유대는 발달하지 못했다. 보노보와 코끼리 사회는 협력적인 암컷들로 구서오딘 강력한 네트워크가 통제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비협력적인 수컷들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평균적인 보노보 암컷은 수컷보다 힘이 약하지만, 수컷이 한계선을 넘어서면 종종 떼 지어 그 수컷을 괴롭히며 공격한다.

보노보와 코끼리가 이럴 수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동물이고, 그 장점은 대규모로 협력하는 능력에 있다. 만일 그렇다면, 여자들이 비록 남자에게 의존한다 할지라도 협력이라는 우월한 사회적 기술을 이용해 공격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남자들의 허를 찌르고 조종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협력 덕분에 성공한 종에서 협력성이 더 떨어진다는 개체(남자)들이 협력성이 더 뛰어나다는 개체(여자)들을 통제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걸까?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어쩌면 일반적인 가정들이 틀린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의 수컷들은 신체적 힘이나 공격성, 경쟁성이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 기술이 우월하고 협력을 잘하는 것이 특징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이 있다면,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젠더의 역할은 커다란 혁명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회가 남녀에게 동등한 법적 지위와 정치적 권리, 경제적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젠더와 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고 있다.

젠더의 격차는 아직도 상당하지만, 변화는 굉장한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20세기 초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언어도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여성이 내각의 장관이 된다거나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냥 웃긴 소리로 들렸다. 한편 동성애는 극도로 금기시되는 주제라 공개적으로 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21세기 초에 여성의 참정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성 각료는 논평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2013년에 미국 연방대법관 다섯 명은, 그중 셋은 여성이었는데, 동성 결혼 법제화를 선호하는 판결을 내렸다(남성 대범관 네 명의 반대를 다수결로 누른 결과였다).

바로 이런 극적인 변화들 때문에 젠더의 역사가 그토록 혼란스러운 것이다. 만일 오늘날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듯이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사실보다 근거 없는 신화들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이 제도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안정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따라서 우리 종 내의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 페이지에서 다뤘던, '그와 그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남자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와 오늘의 '근력, 사회의 쓰레기, 가부장적 유전자'를 통해 성 차별의 역사와 그로 인한 부계사회를 비롯해 현생까지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제'를 말하고 있는 작가는, 그 원인을 생물학적 근거보다는 상상 속의 질서에서 원인을 찾는 듯 하나, 확실한 답을 말하지 않고, 질문으로 2부 농업혁명을 마무리했다. 이어질 제3부 '인류의 통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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