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38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246~251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필사와 단상]

9. 역사의 화살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춰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20세기 전반의 학자들은 모든 문화가 완전하고 조화로우며 언제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불변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쳤다. 인간 집단들은 독자적인 세계관과 사회적, 법적, 정치적 처리방식의 체계를 지녔으며, 이것들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순조롭게 운영된다고 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외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로 남겨진 문화는 변화하지 않았다. 늘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변화는 외부에서 가해진 힘이 있을 때만 생겨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류학자, 역사학자, 정치가 들은 마치 사모아니 테즈메이니아 사람들의 태곳적부터 동일한 신념과 규범과 가치관을 지니고 살았던 것처럼 '사모아 문화'니 '테즈메이니아 문화'니 하는 식으로 언급했다.

오늘날 문화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진실은 그 반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문화는 나름의 전형적인 신념, 규범,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환경의 변화나 이웃 문화와의 접촉에 반응해 스스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꾼다. 스스로의 내부적 역동성으로 인해 변이를 겪기도 한다. 안정된 생태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존재하는 문화조차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모순이 없는 물리법칙과 달리,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내적 모순을 지닌다. 문화는 이런 모순을 중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과정이 변화에 불을 지핀다.

예컨대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기독교와 기사도를 둘 다 믿었다. 전형적인 귀족은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성직자가 성인들의 삶에 대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직자는 말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부와 육욕과 명예는 위험한 유혹이다. 너는 유혹에 굴하지 않고 그리스드의 발자국을 따라야 한다. 그분처럼 온유하며 폭력과 방종을 피하라. 만일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 뺨을 내밀어라."

온유하고 수심 어린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귀족은 가장 좋은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영주의 성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러 간다. 와인이 물처럼 흐르고, 음유시인은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그의 애인이자 아서 왕의 부인인 귀네비어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손님들은 추잡한 농담과 유혈이 낭자한 전쟁 이야기를 나눈다. 영주들은 선언한다. "수치스럽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너의 명예를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그 수치는 피로서만 씻을 수 있다. 너의 적이 네 앞에서 도망치고 그들의 아름다운 딸들이 네 발아래에서 떨고 있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모순은 결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귀족, 성직자, 평민이 그것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 문화는 변화했다. 십자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사들은 자신의 군사적 역량과 종교적 헌신을 단칼에 보여줄 수 있었다. 똑같은 모순이 성당기사단과 간호기사단을 낳았는데, 이들은 기독교와 기사도의 이상을 더욱더 단단하게 결합시키려 한 조직들이었다. 아서 왕 이야기나 성배 이야기 같은 중세 예술과 문학의 많은 부분도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카멜롯(아서 왕의 궁궐이 있었다는 전설의 마을- 옮긴이) 이야기는 훌륭한 기사는 훌륭한 기독교인일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 또 반대로 훌륭한 기독교인은 훌륭한 기사일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또 다른 예는 현대의 정치질서다. 프랑스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정부들은 개인의 자유에 우선권을 주었다. 설령 그것이 파산한 빈민층 가족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아들에게는 소매치기 학교에 들어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라도 말이다. 알렉산더 솔 제니친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의 평등주의 이상이 어떻게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는 야만적인 독재를 생산해냈는지을 알 것이다.

오늘날 미국 정치도 이 모순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좀 더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세금을 올려서 가난한 사람과 노약자를 돕는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의미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한다. 어째서 정부는 내게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걸까. 나는 그 돈을 애들 대학 보내는 데 쓰고 싶은데? 반면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지며, 많은 미국인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중세 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 발전의 엔진으로써,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갈등을 다루지 않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떠올려볼 수 있겠는가?

만일 긴장과 분쟁과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가 모든 문화의 향신료라면,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의해 찢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까지 있다. '인지 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컨대 기독교인인 당신이 근처 모스크에 참배하러 가는 무슬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모든 무슬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순수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무슬림 문화에서 가장 극심한 딜레마의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 규칙이 서로 충돌하고 규범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지점 말이다. 무슬림들이 두 가지 지상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프랑스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자유와 평등, 민주사회의 기본적 요소인만큼 당연한 존재로 여겼을 뿐, 그 안에 있는 모순은 인공적 네트워크로 형성된 문화려니 여겨 "왜?"라는 질문을 크게 갖지 않았다. 나름의 가치와 규범이 있는 문화, 모순에 대한 거부보다는 그것을 품고 가치 증대나 합리적 규범에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모순의 비중을 낮추고 '새 문화 창조'를 위한 걸음이라 생각한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사피엔스  필사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