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39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251~257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필사와 단상]

9. 역사의 화살


정찰위성

인간의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는 완전히 무작위적일까, 아니면 뭔가 전체적인 패턴이 있을까? 다시 말해 역사에는 방향성이 있을까?

대답은 '있다'이다. 수천수만 년에 걸쳐, 작고 단순한 문화들이 점차 뭉쳐서 더 크고 복잡한 문명으로 변했다. 그래서 세계의 메가 문화의 개수는 점점 적어지는 동시에 각각은 점점 더 크고 복잡해졌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일반화로, 거시적 수준에서만 맞는 이야기다. 미시 수준에서 보면 다르다. 서로 합쳐서 하나의 메가 문화를 이루는 문화집단들이 있듯이, 조각조각 분열되는 메가 문화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몽골 제국은 한껏 팽창해서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과 유럽의 일부분까지 지배했지만 결국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다. 기독교는 한꺼번에 수억 명씩 개종시켰지만 결국 수없이 많은 분파로 갈라졌다. 라틴어는 서부 및 중부 유럽에 퍼져 나간 뒤 지역별 방언으로 쪼개져, 각각이 결국 각국의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불굴의 기세로 진행되는 데 비해 분열은 일시적인 반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방향을 인식하는 일은 사실상 시점의 문제다. 역사를 조감도처럼 보면, 즉 역사 발전을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이라는 단위로 검토하면, 역사가 통일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다양성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판정하기 어렵다. 장기적 과정을 이해하기에 조감도는 너무 근시안적이다. 그보다는 우주에 떠 있는 정찰위성의 시점을, 즉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라는 단위를 스캔하는 시점을 취하는 게 낫다.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기독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한순간에 지구라는 행성 위에 각기 분리된 채 공존했던 인간 세상들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행성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지구는 각기 격리된 수많은 인간 세상들로 구성된 은하와 같다.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 동안 그랬다.

호주 남쪽에 있는 중간 크기의 섬 태즈메이니아를 떠올려보자. 이 섬은 기원전 10000년경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했을 때 호주 본토에서 분리되었다. 섬에는 수렵채집인 몇천 명이 남았고, 이들은 19세기에 유럽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다른 인류와는 아무 접촉도 하지 못한 채 살았다. 12,000년간 태즈메이니아 바깥의 사람들은 이 섬이 존재하는 줄 몰랐고, 이 섬사람들은 바깥 세계에 누군가 살고 있는 줄 몰랐다. 이들에게는 나름의 전쟁, 정치 투쟁, 사회적 변동, 문화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가령 중국의 황제나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에게 태즈메이니아는 목성의 위성 중 한 곳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즈메이니아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미국과 유럽 역시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에 서로 고립된 세계였다. 기원후 378년 동로마 제국의 발렌스 황제는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패해 사망했다. 같은 해 마야 티칼의 착 톡 아이착왕은 데오티우아칸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해 사망했다(티칼은 마야의 중요한 도시국가였고, 테오티우아칸은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거주민이 25만 명이 넘었다. 동시대 로마 인구와 같은 자릿수다). 로마의 패배와 테오티우아칸의 융성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로마는 화성에 있고 테오티우아칸은 금성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 세상들이 공존했을까? 기원전 10000년경 우리 생성에 이 숫자는 수천 개였다. 기원전 2000년이 되자 숫자는 수백 개, 많아야 2천~3천 개 정도로 줄었다. 기원후 1450년이 되자 그 숫자는 그보다 더 극적으로 줄었다. 유럽인의 세계 탐사 직전인 그 시기에 지구에는 태즈메이니아 같은 고립된 작은 세계가 상당히 많이 존재했지만, 90퍼센트에 가까운 인류는 아프로아시아 세상이라는 단 하나의 큰 세상에 살았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상당 부분 포함)의 대부분은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머지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류는 상당한 규모와 복잡성을 지닌 네 개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1. 중미 대부분과 북미 일부를 아우르는 메소아메리카 세계.

2. 남미 서부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안데스 세계.

3. 호주 대륙을 아우르는 호주 세계.

4. 하와이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남서 태평양의 섬 대부분을 아유르는 대양 세계.


이후 3백 년간 아프로아시아 거인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 전부를 집어삼켰다. 1521년에는 메소아메리카 세계를 먹어치웠다. 스페인인들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아프로아시아는 대양 세계도 처음 뜯어먹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를 하고 그 직후 정복을 마무리 지은 것이었다. 안데스 세계는 1532년에 붕괴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을 짓밟은 것이었다. 유럽인이 처음 호주 대륙에 상륙한 것은 1606년이었고, 자연 그대로의 대륙이 끝장난 것은 영국이 본격적인 식민지화를 시작한 1788년이었다. 그 15년 뒤에 영국인들은 태즈메이니아에 첫 정착지를 건설함으로써 최후까지 남아 있던 독자적 인간 세계를 아프로아시아의 영향권에 편입시켰다. 아프로아시아가 삼킨 것들을 모두 소화하는 데는 이후 여러 세기가 걸렸지만, 그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인류는 동일한 지정학 체계(행성 전체가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들로 나뉘어 있다). 동일한 경제 체제(자본주의 시장의 힘은 지구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미친다). 동일한 법 체계(인권과 국제법은 세계 모든 곳에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효력이 있다). 동일한 과학 체계(원자 구조나 치료법에 대해 이란, 이스라엘, 호주, 아르헨티나의 전문가들은 완전히 동일한 견해를 보인다)를 공유하고 있다.

전 지구 문화는 균일하지 않다. 하나의 유기체에 수많은 장기들과 세포들이 포함되어 있듯이, 우리의 전 지구 문화는 뉴욕의 증권 중개인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양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방식들과 사람들을 아우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여전히 서로 논쟁하고 싸우지만, 논쟁에 사용하는 개념은 동일하고 싸움에 사용하는 무기도 동일하다.

진정한 '문명의 충돌'은 청각 장애인들이 말로 나누는 대화와 같다. 누구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이란과 미국이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부딪치는 상황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국민 국가, 자본주의 경제, 국제적 권리, 핵물리학이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여전히 '고유' 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만일 그 '고유성'이란 것이 독자적으로 발달한 무엇,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의 지역전통으로 구성된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문화가 하나도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모든 문화는 홍수처럼 범람한 지구적 영향들에 의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이런 지구화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이른바 '민속' 요리다. 우리는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토마토소스를 넣은 스파게티를 예상하고, 폴란드와 아일랜드 식당에서는 많은 감자를, 아르헨티나 식당에선 수십 종의 스테이크 중 하나를 고를 것을, 인도 식당에선 거의 모든 음식에 매운 고추가 들어갈 것을, 모든 스위스 카페의 하이라이트는 크림을 잔뜩 넣은 뜨겁고 진한 코코아일 것을 예상한다. 하지만 이 중 어떤 음식도 이들 국가가 원산지는 아니다. 토마토, 고추, 코코아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이것들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다음에야 유럽과 아시아에 들어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단테 알리기에라는 토마토소스가 듬뿍 묻은 스파게티를 포크(포크는 당시 발명되지도 않았다)로 감아본 일이 없다. 윌리엄 텔은 초콜릿을 맛본 일이 없으며 부처는 음식에 고추를 넣어 먹은 일이 없다. 감자가 폴란드와 아일랜드에 들어온 지는 4백 년도 채 되지 않았다. 1492년 아르헨티나에서 얻을 수 있는 스테이크는 라마 고기로 만든 것뿐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대초원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용감한 기수의 이미지로, 조상들의 관습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개척자들의 마차를 용기 있게 습격하는 이미지로 줄곧 그려왔다. 하지만 북미 원주민 기수들은 어떤 고유한 고대 문화의 수호자가 아니었다. 17~18세기 북미 서부의 평원을 휩쓸었던 중대한 군사정치적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즈음 유럽의 말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19세기 수족과 아파치족의 문화에는 매력적인 측면이 많았지만, 그것은 '고유' 문화라기보다는 세계적 힘들이 빚어낸 결과인 근대 문화였다.



"역사에는 방향성이 있을까?"

"대답은 '있다'이다."


인류의 동일한 지정학 체계(국가), 동일한 경제 체계(자본주의), 동일한 법 체계(국제법), 동일한 과학 체계(동일한 치료법에 대한 동일한 견해) 공유는 역사의 방향성이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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