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인류의 통합/ 10. 돈의 향기(260~265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필사와 단상]
10. 돈의 향기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 일당은 당시까지 인간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던 멕시코를 침략했다. 그곳에 살던 아즈텍인들은 후세에 알려진 대로 이방인들이 어떤 노란 금속에 극도의 관심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방인들은 정말 끊임없이 그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주민들이라고 금을 모르지 않았다. 아름답고 가공하기 쉬워서 그것을 사용해 장신구와 조각상을 만들었으며 때로 금가루를 교환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아즈텍인은 뭔가를 사고 싶으면 보통은 코코아 콩이나 피륙을 지불했다. 그래서 스페인인들이 금에 집착하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고 천을 짤 수도 없으며 너무 물러서 도구나 무기를 만들 수도 없는 금속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스페인 사람들이 금에 열광하는 이규가 뭐냐고 원주민들이 묻자 코르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금으로만 나올 수 있는 마음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떠나온 아프로아시아 세계에는 금에 대한 집착이 만연해 있었다. 서로 원수인 사람들도 이 쓸모없는 누런 금속을 갈구하는 데는 한마음이었다. 멕시코를 정복하기 3세기 전, 코르테스의 조상들과 그 군대는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있던 무슬림 왕국들과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벌였다. 그리스도의 신자들과 알라의 신자들은 상대방을 수천 명씩 죽이고, 들판과 과수원을 황폐하게 만들고 번영한 도시를 연기 나는 폐허로 만들었다. 모두가 그리스도나 알라의 영광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점차 우세를 차지한 기독교인들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모스크를 부수고 교회를 지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금화와 은화를 발행하여 십자가와 함께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감사한다는 내용을 새겼다. 하지만 승리자들은 새로운 화폐와 함께 도 다른 종류의 주화도 찍어냈는데, 밀라테스라는 이 주화에는 좀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기독교인 정복자들이 찍어낸 사각형 주화에는 유려한 아라비아 문자로 다음과 같은 선언이 새겨져 있었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다." 가톨릭의 멜구에일 주교와 아그테 주교조차도 인기 있는 이 무슬림 주화를 충실히 복제해 발행했고, 신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기쁘게 사용했다.
관용은 언덕 너머에도 넘쳐흘렀다.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상인들은 피렌체의 플로린 금화, 베네치아의 두카트 금화, 나폴리의 기글리아토 은화 같은 기독교 주화를 이용해 사업을 했다. 이교도인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성전을 벌였던 무슬림 통치자들조차 경배의 표시로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새겨 넣은 주화로 세금을 받았다.
수렵채집인들에게는 돈이 필요 없었다. 각각의 무리는 고기, 약품, 샌들에서 주술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사냥하고 채집하고 만들었다. 무리의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업무에 전문화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호의와 의무의 경제를 통해 재화와 용역을 나누었다. 공짜로 건제주는 고기 한 덩어리에는 호혜성이라는 전제, 이를테면 공짜 의료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리는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다만 현지에 없는 희귀 물품인 조가비, 염료, 흑요석 등은 이방인에게서 구해야 했다. 통상 이것은 "아름다운 조가비를 당신에게 줄 테니 우리에게 품질 좋은 부싯돌을 주시오." 하는 단순한 물물교환으로 가능했다.
농업혁명이 시작되었어도 이런 방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고 친밀한 공동체에서 계속 살았다. 각각의 마을은 수렵채집인 무리와 비슷하게 자급자족하는 경제단위였다. 주로 호혜와 의무로 유지되고 간혹 외부인과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한 주민은 신발을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을 테고 다른 주민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재주가 있었을 테니, 마을 사람들은 신발이 없거나 병에 걸렸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이 작고 경제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전업 제화공이나 전업 의사는 있을 수 없었다.
도시와 왕국이 등장하고 수송 하부구조가 개선되자 전문화라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제화공과 의사뿐 아니라 목수, 사제, 군인, 법률가를 풀타임으로 고용했다. 어떤 마을이 정말로 품질 좋은 와인, 올리브오일, 도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그 마을은 거의 전적으로 해당 상품만을 생산하고 필요한 다른 상품은 다른 정착지의 사람과 교역을 통해 얻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아주 합당한 일이었다. 기후와 토양은 다 다른 법인데, 토양과 기후가 포도 재배에 훨씬 더 적합한 곳에서 만든 부드러운 와인을 다양하게 살 수 있다면 어째서 자신의 뒤뜰에서 만든 그저 그런 와인을 마셔야 한단 말인가. 만일 자기 집 뒤뜰의 진흙으로 좀 더 찰지고 예쁜 단지를 만들 수 있다면, 아른 것과 교환할 수 있다. 의사나 법률가는 물론이고 전업 포도주 양조업자나 옹기장이은 각자 자신의 전문성을 갈고닦아 모두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전문화는 문제를 하나 일으켰다. 전문가 사이의 물품 교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협력하려 할 때는 호의와 의무의 경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여동생이나 이웃에게 무료로 도움을 주는 것과 내게 결코 답례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돌봐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때 물물교환에 의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제한된 범위의 물품을 서로 교환할 때만 효과적이다. 복잡한 경제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
물물교환의 한계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사과 과수원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언덕에 있는 그 과수원은 지방 전체에서 가장 아삭아삭하고 달콤한 사과를 생산한다. 당신은 이곳에서 신발이 닳도록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나귀에 수레를 매달고, 장이 서는 강변의 읍으로 향한다. 이웃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읍의 남쪽 끝에 있는 제화공은 무려 다섯 계절이나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만든다고 했다. 당신은 제화공의 가게를 찾아가서 약간의 사과를 내놓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신발을 달라고 한다. 제화공은 망설인다. 사과를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까? 그에게는 매일 수십 명의 고객이 찾아온다. 그중 몇몇은 사과 자루를 가져오고 몇몇은 말, 염소, 피륙을 가져오는데 품질은 다 다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왕에게 탄원서를 내는 전문성이나 요통을 고치는 전문성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제화공이 마지막으로 사과와 신발을 교환한 것은 3개월 전이다. 그때는 사과 세 자루를 받았다. 아니, 네 자류였던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난번 사과는 신맛이 나는 계곡산이었고 이번 것은 언덕에서 생산된 최고 품질이다. 한편 저번에 받은 사과는 작은 여성용 신발과 바꾸었는데 이 고객은 남성용 장화를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주 동안 전염병이 돌아 읍 주변의 양 떼가 열 마리당 한 마리 꼴로 죽었기 때문에 가죽이 귀해지기 시작했다. 구두장이들은 전과 같은 양의 가죽에 대해 예전보다 두 배의 구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물물교환 경제에서 제화공과 사과 과수원 주인은 수십 종 재화의 상대가격을 매일매일 새로 알아야 한다. 만일 1백 종의 각기 다른 상품이 시장에서 거래된다면, 구매자와 판매자는 4,950가지 서로 다른 교환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거래되는 상품이 1천 종이라면, 49만 9,500가지 서로 다른 교환율을 곡예하듯 다뤄야 할 것이다. 그걸 어떻게 다 안단 말인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사과 몇 개가 구두 한 켤레와 맞먹는지를 어찌어찌 계산한다 해도, 물물교환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쌍방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화공이 사과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그 순간에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이 이혼이라면 어쩔 것인가? 물론 농부가 사과를 좋아하는 법률가를 찾아내서 삼각거래를 주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만일 그 법률가가 사과에는 물렸으며 꼭 필요한 것은 이발이라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일부 사회에서는 중앙집중적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문 재배자와 제작자에게서 물품을 다 받아둔 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실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것은 옛 소련에서 시행되었지만,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던 것이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가능한 최대로 받아낸다."로 바뀌었다. 이보다 온건하고 성공적인 실험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잉카 제국이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는 많은 수의 전문가를 연결시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돈을 개발한 것이다.
"나와 내 동료들은 금으로만 나올 수 있는 마음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금으로만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 돈 많은 부자를 배우자 선택의 우선순위로 꼽는 일부 현대인의 마음이 이와 같은 거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 앞에 장사 없다', '재떨이와 부자는 모일수록 더럽다'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은 인류에게 가장 강한 권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일까, 작가가 말하는 '돈의 향기'에서 봄향, 꽃향 같은 것이 아닌 '탐욕'의 향기를 느낀 게 사실인데, 과연 작가는 돈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이 장에서는 수렵채집인들의 거래 수단이던 물물교환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등장한 것 까지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