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벨림 지음 /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3
©Myeongjae Lee (사진) "우리는 버터처럼 철근콘크리트를 자릅니다"
(왼쪽 차에는 우크라이나어, 오른쪽 차에는 러시아어)
부제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루스터 하우스』는 197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15세에 시카고로 이민을 갔다가 2013년부터는 브뤼셀로 이주해 살고 있는, 반은 우크라이나인이고 반은 러시아인인 작가 빅토리아 벨림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시골 고향 마을을 방문하면서 4대에 걸친 가족사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관련 책을 주로 다루게 될 <책방2036>에서는 『루스터 하우스』와 같이 제목만으로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와 연관이 있다고 추론하기 어려운 그런 책들을 소개하고 큐레이팅하고 싶다.
p.50 나는 러시아어로 물었고 증조할머니는 우크라이나어로 대답했는데 소비에트 가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2001.11월부터 2004.2월까지 머물렀던 내 기억 속의 우크라이나도 그랬다. 보그단네 집에서도, 갈랴네 집에서도. 최소한, 내가 통성명을 하고 가족관계를 물어봤던 우크라이나 사람들 중에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친척이 없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없었다. 그곳의 누구도 전쟁의 아픔을 피해 가기 어려운 이유다.
p.14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내 뿌리가 고향과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pp.26-27 가족과 함께 시카고로 이민 간 후에도 내 자아 정체감은 여전히 모호했다.
p.44 장소를 애도하는 것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보다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비극적이기는 해도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경험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은 그렇지 않다. 익숙하게 보아온 지형지물이 폭력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우리를 잃은 것을 슬퍼하고 미래의 우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p.186-187 당시 연방 경찰과 연방 검찰, 마을 반장은 같은 마을 사람들을 체포하고 유배지로 추방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대기근이 섬뜩한 현실로 다가오는 이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참혹한 비극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웃과 친구, 친척들의 손에 개인의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자식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사람들, 함께 땅을 경작하고 서로를 위해 축배를 들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죽게 했다.
p.201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과거는 자수 문양이라든지 오래된 나무들을 통해 옛 시절의 유산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과거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서서히 눈이 뜨이고 있었다. 이 땅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땅은 나를 꾸준히 끌어당겼다. 가족사를 알고 우크라이나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p.378 (에필로그) ‘타우마(Thauma)’는 기적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물 위를 걷거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는 것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다. 필멸자들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나누는 베일 너머로 찰나의 순간 들여다보인 신성이다. 정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두 세계 사이에는 강이 가로놓여 있고, 매 순간 두 세계를 잇는 문이 존재한다.
정확히 만 1년을 채웠다. 새 일터에서의 지난 1년은 고단했다.
그래도 잘 버텨냈다. 기특하다.
퇴근 후 혼자서라도 자축을 하려고 했다가, 결국 눈물로 끝이 날 것 같아서 말았다.
<책방2036> 오픈까지 이제 4,318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