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Myeongjae Lee
OZ8986, A321-200
19:50, 탑승구 7, 좌석 43K
서른한 번째 ©Myeongjae Lee
"한 끼 정도는 함께하는 사이가 식구입니다."
KCC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 광고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카피다.
<'식구食口' 한 집안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카피로 시작되는 이 광고를 우연히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간장계란밥' 편과 '김치전' 편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어떻게든 짧은 일정으로라도 제주에 다녀와야지 하는 그 강렬한 욕구의 기저에는 함께 밥을 먹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도 한 식구임을 가능한 자주 확인해야겠다는 무의식이 짙게 깔려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침저녁으로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고, 공사다망한 큰 녀석 이곳저곳 모셔드리고, 둘째와는 리뉴얼 후 재개장한 다이소에 가서 소소하게 쇼핑도 했다. 그리고 저녁 한 끼, 한 자리에 모여 소고기를 구워 먹고 떠들며 우리가 한 식구임을 서로 증명하고 확인했다.
큰 아이가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도덕선생님은 "혹시, 나 때문이야?"라며 몹시 흡족해하셨다는 후문이다. 매일이었는지 매주마다였는지, 철학자의 유명한 글귀를 교실 칠판 한 귀퉁이에 적는 것이 올해 본인의 미션이었고, 좋은 문장을 찾아내고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참고하라고 빌려 준 책을 다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철학에 대한 관심.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에피소드를 그날그날 듣지 못하고, 시간차를 두고 뒤늦게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 상황이 다소 못마땅하지만, 마음은 좋았다. 비록 변방에 살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주체적인 삶, 도전하는 삶을 늘 살아내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열렬히 응원한다.
청귤 익어가는 서귀포, 도처에 푸릇푸릇함이 넘쳐난다.
"오늘 하루 멀리서 내가 응원하고 있을게. 우리의 좋은 날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흘려보내자." (8.23.)
평소보다 길었던 서른한 번째 비행과 서른두 번째 비행 사이, 아내의 따뜻한 말이 내내 큰 위로가 되었다.
핸드폰에 찍힌, 과거형인 듯 미래형인 듯, "우리의 좋은 날들" 글자를 찬찬히 보고 있으면,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앞으로 올 어떤 좋은 날이 기대되기도 했다. 괴로운 일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툭툭 가볍게 털어버리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