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6.

두 번째 ©Myeongjae Lee

by MJ Lee

OZ8980, A321-200

20:00, 탑승구 11, 좌석 16K


©Myeongjae Lee


걸어야 숨이 좀 쉬어질 것 같아서 아내 출근길에 함께 집을 나섰다. 아내 회사 앞 주차장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남쪽으로 남쪽으로 무작정 걸어 내려갔다. 사다리 게임 하듯이, 눈앞에 골목이 보이면 들어서고, 또 다른 샛길이 나타나면 그 길을 타고 걸어 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해서 낯선 길들과 만났다. 그러다, 세연교가 멀찌감치 보이는 어느 내리막길에서 "폭삭 속아수다" 금속판과 마주쳤다. 그게 뭐라고, 갑자기 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진다. "수고가 많다" 속삭이는 소리가 돌담 틈들을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 누가 뭐래도 지난 16개월, 정말 애쓴 것 맞다.


육지 와서는 걸으러 나가는 마음을 먹는 것 그 자체가 몹시 어렵다. 만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좌우로 귤밭이 펼쳐지고, 곳곳에 돌담이 있는 작은 길들을,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바다를 보면서, 또 확 트인 하늘을 보면서 걷다가, 밑밑하고 빤한 신도시의 정갈한 산책로를 걸으려니 영 재미가 붙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룸이라는 게, 희한하게,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몸도 마음도 주저앉히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너무 많이 걸었는지 다리에 힘이 빠지고 기운이 다 한 느낌이 들었다. 건너편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집 가까이까지 가는 버스가 8분 후 온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운데 즈음의 빈자리에 앉았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노인 분들 대여섯 명이 버스에 올랐다. 얼른 일어나 세 칸 정도 뒷자리(2인석)로 이동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어서 그런지, 다음 정거장에서도 그만큼의 노인분들이 타셨다. 다시 일어나 제일 뒷열 높은 자리로 갔고, 그다음 정류장에서는 그 자리까지 양보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일어서서 집까지 왔고, 하차할 때까지도 나는 가장 어린 승객이었다.

요즘은 길에서 노인 분들을 보면 나를 보게 된다. 나이가 드는 게 이제 남일 같지가 않다.


아무튼. 바다가 보고 싶다고 걷기만 하면 바다가 눈앞에 나타나는 곳.

그동안 참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늘 옳다.


"야, 너는 사람들이 다 좋다고, 다 살고 싶다고 하는 제주에도 살았고, 지금은 또 사람들이 다 좋다는 송도에 사는데, 뭘 그러냐. 작은 것에도 감사해라."


©Myeongjae Lee
©Myeongjae Lee


아내와 함께 제주비엔날레에 다녀왔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다소 난해했고, 아쉬웠다.


요즘 들어 콜라 섭취량이 부쩍 늘었다. 오리지널 콜라는 소울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장거리 운전에는 필수, 그리고 힘들 때 늘 찾게 되는 자양강장제와도 같은 음료인데, 그러다 보니 콜라를 먹고 속이 쓰린 날도 생기고, 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다. 흡입량을 좀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