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 복합위기의 시대, 아프리카는 어디에 있는가
21세기의 아프리카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변동하는 기후, 팬데믹의 반복적 창궐, 사이버 공격과 정보 왜곡, 외채와 자원 종속,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와 청년 실업. 이 모든 요소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고, 이 복합체는 아프리카의 제도와 공동체, 개인의 일상까지 흔들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아프리카를 규정하던 지배적 서사는 ‘빈곤과 내전’이었지만, 오늘날 위협의 성격은 훨씬 교묘하고 다차원적이다. 식민주의와 냉전은 대륙을 외부의 물리적 침입으로부터 위협했지만, 지금은 기술과 자본, 자원 흐름, 데이터 통제와 같은 비가시적 수단이 더 깊숙이, 더 폭넓게 침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이제 외부로부터의 단선적 침공보다, 내부 구조의 취약성과 외부 세계 질서의 불균형이 결합한 복합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2. 성장의 역설과 다층적 위협의 구조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는 경제 지표상으로는 분명 진전을 이뤘다. 대륙 차원의 무역 자유화 협정인 AfCFTA가 출범했고, 나이지리아, 케냐, 르완다 등 일부 국가에서는 기술 기반 창업이 활성화되며 스타트업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모바일 금융의 확산은 금융 포용성을 확대했고, 도시 인프라의 확장도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불균등하며, 구조적 위험을 제거하지 못한 채 쌓여 있는 성장의 역설로 남아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성장은 지속가능한 생존 기반을 동반하지 못했다. 사헬 지역에서는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마다가스카르 남부에서는 반복되는 가뭄이 기아 사태를 상시화 시켰다. 전염병 대응 체계는 취약하고, 보건 인프라는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외부 원조에 의존한다. 데이터 인프라와 사이버 보안 기술의 격차는 정보전과 외부 개입의 빌미가 되고 있으며, 주요 인프라 시설은 국가 소유가 아니라 외국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잠비아가 채무불이행 이후 루사카 국제공항 운영권을 외국 기업에 넘긴 사례는 이 구조의 대표적 단면이다.
이러한 위협은 단일하지 않고, 서로를 증폭시킨다. 기후변화는 식량난을 초래하고, 이는 청년 실업과 지역 분쟁으로 이어지며, 외부 무장단체의 포섭 가능성을 높인다. 보건 위기는 신뢰의 붕괴를 동반하며, 선거 시기의 정보전은 제도적 안정성을 해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위협이 대부분 국경을 초월하고, 단기적 해결이 불가능하며, 명확한 책임 주체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비전통적 안보위협의 특징이다.
3. 비전통적 안보: 생존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
전통적 안보는 주로 국가 간 무력 충돌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비전통적 안보는 그 범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 자체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 식량, 보건, 환경, 정보, 공동체, 정체성. 이 요소들이 무너질 때, 인간은 죽지 않더라도 존엄을 유지하지 못한다. 생존은 가능하지만, 삶은 파괴된다.
이러한 위협은 국가 단위의 군사력, 외교 협상, 국경 통제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술과 자본, 자원과 인간이 얽힌 복합 체계 안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위협이다. AU가 이런 위협을 전통적인 사고와 운영 방식으로 다루는 한, 대응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AU는 지금, 대응 수단보다 먼저 대응의 기준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 기준은 결국 철학이다.
4. 철학은 왜 필요한가: 정책 이전의 판단 구조
철학이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판단 체계다. 기술이 도입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도입되어야 하는가.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면, 어떤 공동체를 먼저 보호하고, 어떤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간주해야 하는가. 외부 자본과의 협력은 정당한가. 이 모든 결정에는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단순히 비용-효용의 계산으로는 도출되지 않는다.
5. 실천 가능한 철학의 세 가지 원칙
비전통적 안보에 대응하기 위한 철학은 세 가지 원리를 필요로 한다. 첫째, 약한 자 먼저의 원칙이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지만, 불균등하게 작용한다. 사하라 이남의 여성, 농촌의 청년, 기후 난민, 소수언어 사용 공동체 등은 동일한 재난이라도 훨씬 더 깊은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정책과 예산, 기술 배분의 기준은 수혜 효율성이 아니라 위험 취약성을 중심에 둬야 한다.
둘째, 공존 가능한 기술의 원칙이다. 기술은 종종 해결책으로 간주되지만, 맥락 없는 기술 도입은 새로운 종속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아프리카는 기술의 수입처가 아니라, 기술의 선택자여야 한다. 예산, 유지 가능성, 지역 커뮤니티의 이해와 조작 가능성까지 고려한 정치적 기술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기술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어떤 기술은 통제력을 집중시킨다.
셋째, 자율성과 상호책임의 원칙이다. AU는 외부 자본에 의존한 상태에서 자율적 판단과 실행력을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 불균형도 AU의 통합된 행보를 가로막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자신이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규칙을 재설계하는 철학적 구조가 요구된다. 가장 공정한 규칙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치명적이지 않은 규칙을 설계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6. 존재의 사유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아프리카연합은 지금, 정체성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단순히 정책을 조정하고, 안보를 관리하는 사무국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의 존재 조건을 스스로 정립하는 주체로 전환할 것인가.
비전통적 안보위협은 생존의 위기가 아니라, 삶의 존엄에 대한 위협이다. 그것은 인프라로만 대응할 수 없고, 기술로만 해결할 수 없다. 이 위협에 대응하려면 우리는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한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왜, 누구를 먼저 지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기술은 위험하고, 이 질문 없이 시행되는 정책은 공허하다. 철학은 여기서, 당장 필요한 질문의 형식으로, 실천을 인도하는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AU가 철학적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 비로소 아프리카는 위협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위협을 정의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존엄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생존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