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반지성이 대립할 때

좌우가 아닌, 앞으로 갈 것이냐 뒤로 갈 것이냐의 문제

by 김명준

작년 나를 가르쳤던 영어교과 임종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과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지성과 반지성이 대립할 때 과감히 반지성을 버리고 지성의 편에 설 수 있는 우군을 길러내기 위해서다." 이 발언은 단순히 과학 교육의 기능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왜 합리성과 이성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날카롭게 짚는다.

반지성주의란, 이성적 소통을 거부하고 감정이나 직관, 또는 전통과 권위에만 의존하려는 태도다. 이는 단순한 무지와는 다르다.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사고와 비판적 성찰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배타성을 지닌다. 물론 모든 직관이나 전통적 관점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런 태도가 집단화되어 극단적 형태로 나타났을 때,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1930년대 독일에서의 '유대인 과학' 낙인, 스탈린 시대 소련의 루이센코주의, 그리고 최근의 백신 거부 운동 등은 과학적 합의를 정치적·이념적 이유로 거부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현상이 우려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과 담론의 방향이 다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다수가 단순히 감정적 동조나 선동에 의해 움직인다면, 이성적 판단은 쉽게 밀려날 수 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과정에서 보였던 '전문가는 이제 지겹다'는 정서나, 팬데믹 시기 방역 정책을 둘러싼 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성은 설득을 기반으로 하지만, 반지성은 설득의 장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설득 불가능한 대상과의 공존이 민주주의의 역설적 과제가 된다.

과학은 단지 자연을 설명하는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합리성과 주체적 사고를 훈련하는 방법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방식은, 곧 우리 사회가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사고 절차와 일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 교육은 합리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이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교육의 가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통한 공감 능력 배양, 역사를 통한 맥락적 사고, 철학을 통한 윤리적 성찰 등도 비판적 시민 양성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하지만 모든 과학 교육이 이러한 태도를 자동으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현실의 교육 현장에서는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 실험 기자재 부족, 과도한 학급 규모 등의 제약으로 인해 진정한 과학적 사고를 가르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OECD 국가들 중 과학 성취도는 높지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가치 인식은 하위권에 머무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교육이 형식에 그친다면, 학생들은 단지 공식을 외우고 시험을 통과할 뿐, 사고의 틀을 내면화하지 못한다. 결국 교육이 추구해야 할 것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합리의 훈련, 주입이 아니라 자발적 사유의 유도이다.

오늘날 우리는 음모론, 혐오, 왜곡된 신념, 극단주의 등 다양한 반지성의 징후를 목격한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단순히 교육의 실패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분열, 소셜 미디어의 확산, 대안적 지식 체계의 존재 등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합리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시민의 존재는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설득되지 않더라도, 설득할 수 있는 언어와 근거를 갖춘 이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과학을 포함한 교육의 역할은, 단지 특정 분야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균형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학교 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평생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 참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함양되어야 한다. 이성과 합리를 믿고, 자신의 사고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시민. 그들이야말로 불확실성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지성의 우군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외치는 것을 넘어,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비판적 사고와 합리성을 가르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 방법론과 사회적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과학 교육, 나아가 민주 시민 교육의 과제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간 개체 진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