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표류

도중에 만나는 존재들

by 김명준

나는 의식이 있는 존재이다. 나는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에 이를 수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처럼, 자신의 의식에 대한 확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내가 접하는 다른 이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의식을 지닌 존재인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표정, 몸짓, 언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 마음의 실체는 결코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나의 내적 경험은 명백하지만, 타인의 내적 경험은 나에게 철저히 닫혀 있는 미지의 영역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한계 속에서 나는 때로 유아론(solipsism)적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 즉, 세상이 모두 나를 둘러싼 연극과 같으며, 내가 유일하게 진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 온라인 대화방의 익명의 사용자들, 심지어 오랜 지인들까지도 실제로 나와 같은 의식을 가졌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의식뿐이고, 다른 모든 존재가 실제로 생각과 의식을 가진 존재인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나서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출근길의 무표정한 직장인들, 카페에서 무언가에 집중한 사람들, 버스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승객들. 그들의 존재는 물리적으로 분명하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의도는 나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한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변 환경의 일부처럼 흐릿하게 존재할 뿐, 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이나 중요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특정 사람들은 나에게 보다 선명하게 인식된다. 그들은 바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작가,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또는 창업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친구가 그 예다.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가진 목표가 나의 인식 속에서 하나의 명확한 맥락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목표라는 것은 인간의 내적 의지와 사고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목표를 가진 사람은 분명한 의식을 가진 존재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존재는 단지 물리적 존재를 넘어서 의미와 목적성을 지닌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안개 낀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하게 보이는 등대와도 같다.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움직임은 뚜렷한 궤적을 그리며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흐릿한 배경 속에서 윤곽이 선명한 존재로,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의미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타인의 목표 지향적 행동이 진정한 의식의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컴퓨터 프로그램도 목표를 향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동물들도 먹이를 찾는 등의 목표 지향적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목표 추구는 단순한 프로그래밍이나 본능을 넘어서는 복잡성과 창의성, 그리고 자기반성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들이 의식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형을 논할 때도 같은 맥락이 적용된다. 나의 이상형은 작게라도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매일 책을 읽는 사람,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하는 사람, 또는 사회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 그런 예다.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려는 사람은 내게 길거리의 아무나가 아니라 '그 사람'으로 존재 인식이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의식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목표를 향한 노력이라는 분명한 행동과 방향성에서 그들이 나와 비슷한 내적 경험을 가진 존재임을 추론할 수 있다. 현대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이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서 논한 것처럼, 타인의 주관적 경험에 완전히 접근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목표는 나와 그들을 연결하는 공통된 이해의 영역을 형성한다.


결국 이 세계 속에서 목적성을 지닌 채 나아가는 존재들은 나와 진정한 소통과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들은 단순히 내 인식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사람들을 넘어, 나의 의식이 세상과 만나는 의미 있는 접점이며, 존재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고히 자리 잡은 의미의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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