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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네모의 꿈


난 여러 개의 별명이 있다.

강아지, 유관순, 꺽다리, 말 꼬랑지..

그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별명은 바로

' 강 네모'이다.


어릴 적부터 네모를 좋아했다.

부모님은 늘 내게 둥글둥글 그런 사람 되라고 하셨는데 유독 네모에 집착하는

내가 혹시라도 성격이 그러해질까

걱정하셨다.


그런데 내 성격은 그야말로 모나지 않고

둥근 사람인데 주위가 네모로 채워지는걸

좋아한다.


반듯반듯 정리되고  빈틈없이 아구가

맞는 게 참 좋다.

집안에 모든 서랍 속엔 사각 바구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사물은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어야 할 자리에  바로 그 네모난

바구니, 상자 등에 있다.

침대도 커버가 네모처럼 사방으로

팽팽히 펴져 있어야 하고

이불도 다림질한 듯 구김 없이 펼쳐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상태가 얼그러지는게 싫어서

낮에는 절대 침대에 앉거나 눕지 않는다.

가끔 아플 때는 이불을 조금만 접고

침대 끝에 쪼그리고 눕는다.


비뚤어져 있는 책을 보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잠이 온다.

현관의 신발이 널브러져 있으면

그것도 신경 쓰인다.

남들은  전등을 켜놓고 외출할까 봐

신경 쓰인다는데 나는 네모난 현관에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외출해도 계속 생각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네모 안에는 질서 정연하게 채워져야 편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TV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나왔는데 전문가의 말로는

이것이 강박증이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겁이 나는 거다.

50년 넘게 칼같이 각 잡아 정리를

하고 살았던 게 강박증이라니....

그럼 우리 집에서 나를 제외한

김트리오가 정상이란 건데...


오늘  슬그머니 서랍 속을 마구 흩트려

놓았다.

그리고  신경 쓰지 않기를 해보았다.

처음엔 막 혼잡스러웠지만

다행히 정한 시간을  잘 넘겼다. ㅎㅎㅎ


앞으로는 나사 한 개쯤 풀고 살아야지.

앞으로는  좀 흐트러 놓고 살아야지.

앞으로는  비뚤어져도 잊어야지...

라고 강 네모는 꿈을 꾼다.


https://youtu.be/pe-xR_E6v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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