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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자는 우물을 파야한다

강도 잡은 명랑엄마



21년 전 여름


그날은 매우 습했고

거실에서 백일이 채 안된

막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었다.

현관의 중문을 등지고 있었는데 사람에겐

육감이란 게 확실히 있는지 등 쪽이 서늘함을

느꼈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여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현관에 하얀 바지를 입는 사람이 서있는 거다.

순간적으로 정말  순간적으로 달려가서 중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중문을 사이에 두고 그 남자와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  누구시죠?

- 아..  저기... 컴퓨터 고치러 왔어요.( 왼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꼼지락 거렸음)

-어느 컴퓨터요?

- 엘지요.

(  이때부터 남자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걸  감지했다.)


여기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엘지 컴퓨터란 게 없었으니까.

순간 그 남자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고

내보내야겠다 판단되어 나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아~ 집을 잘못 찾으셨나 봐요. 여긴 1동이고

2동에 오셨나 봐요..  라며 웃었다.

그 남자는 내가 어린아이들과 있다는 걸 감지하고 돌아 나갔다.

나는 바로 관리실에 신고하고 경찰서에도 신고했다.


두어 시 후.

결국 그 남자는 6층 어느 집에서 에어컨 청소하던

어떤 아주머니  목을 흉기로 찌르고 온몸을 묶어

장롱에 가두고 달아났다.


그로부터 한 달간 나는 큰아이 유치원 보내고

작은아이를 캐리어에 싣고 방배경찰서로

불려 가서 매일 수 백명의 몽타주를 보면서

범인을  찾아내야 했다.

막내는 계속 울어대고 다리에 진물이 나고  

나도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범인이 훔친 카드로 현금 인출한 장소는 그야말로 아파트 주민만

아는 숨어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경찰에 의견을

제시했다.

아파트 주민 대상으로 수사해달라고.

범인을 빨리 잡아야 나도 안심이 될 텐데

수사는 오리무중으로 시간만 흐르고

무서워서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도 못 나갔다.


형사들의 반응은, 아무리 간이 큰 범인이라도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범행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비슷한 인물을 한 번이라도 아파트에서  적이 있냐는 거였다.

이에 나의 의견은, 그 인출기는 주민밖에 모르며,

나는 9층이라 엘리베이터 타지만 범인이

저층에 거주하면 엘리베이터를 안탈 테니 나랑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러니 1-3층 주민 대상으로

찾아보라고.


여곡절 끝에 그 범인은 3층에 살고 있던

애기 아빠였 직업도 있고 월수입 1000만 원인

사람이었다.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그런 범행을

했다는 것.

방배경찰서에서 나에게 형사 하셔야겠다고

껄껄댔다.


범인은 형사가 잡아야 할 텐데  목격자인 나를 너무 쥐어짰고 그게 짜증 나고 힘들었다.

 왜 수사가 늦어지냐고 하니 살인사건이 아니라서 그렇단다.


범인은 잡혔으나 3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서 6층 아주머니한테 협박을 했다는

소릴 듣고 그곳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한창 재건축이 진행된 다했는데 나는 허겁지겁

집을 매도하고 방배동에서 나왔다.

이 일이 엄마 돌아가신 지 20일 만에 생긴 일이었다,


그 후. 나는 지독히도 큰 트라우마가 생겨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밤에는 모든 문과 창을

닫아야 잘 수 있고, 현관을 나설 때도 가끔 머뭇거린다.


내가 살면서 했던 가장 큰 일은

바로 강도를 잡았다는 것이고,

깨달은 게 있다면

목마른 자는 직접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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