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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엄마의 아침일기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
석박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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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엄마의 아침일기
Dec 17. 2021
22년 전 오늘..
그 날은 흐릿하고 어둡고 차가웠다.
그런 날이었는데 갑자기 아버지를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그냥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서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 엄마, 곧 아버지 생신도 다가 오니까 내가
생신상 겸 저녁을 준비할테니
아버지 모시고 오세요.”
무작정 그렇게 전화를 하고선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갔었다.
6살 큰아이와 태어난지 한달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막내를 데리고
강남 신세계 백화점 지하로 갔다.
평소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 그때는 이마트나 코스트코가 생기기 전이었다)
그날은 가장 비싸고 좋은 재료들로 음식을 해서 상을 차리고 싶었다.
먼저 사골을 샀다.
아버지는 그 해 1월에 30년 넘는 공직생활을 정년퇴임하셨는데
퇴임하신 후에는 엄마를 도와
집안 청소와 간단한 식사준비는 직접 하셨다.
그렇게 두 분이 오손도손 지내시는데 반찬하기 힘드실까봐 사골을 보내드릴
생각이었다.
고기와 생선 그리고 채소들도 샀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김을 사자고 했다. 100장이나 되는걸 언제 굽냐고 잔소리 하는 내게
남편은 장인어른이 좋아하실것 같다면서
자기가 참기름 바르고 불에 굽겠다면서
기어코 김을 샀다.
마지막으로 돌아서는데 배가 보였다.
1개에 7천원이라는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에이,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데…. 하면서 딱 1개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은 김 100장을 굽기 시작했고
나는 갈비와 미역국 그리고 여러가지 나물반찬들을 하기 시작했다.
밖이 어둑해졌을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맨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
고
아버지를 와락 껴안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처음 아버지를 안아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커다란 김치통 하나를 들고 오셨는데
신을 벗으시자 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그 김치통을 밀어 넣으셨다.
“ 내가 어제 너 주려고 석박지 김치를 담갔다.
니네 엄마가 옆에서 알려주고
말이야. 오늘
아침에 보니 익었더라 . 너 이거 좋아하지?”
감동이었다.
평생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만 드셨고
라면 한 개도 안 끓여 보신 분이
나 먹으라고 내가 좋아하는 석박지 김치를 담그셨다니 말이다.
나는 뛸 듯
이 기뻐했다. “ 와~ 반찬 걱정 이제 덜었네. 아빠, 이거 정말 맛있어요.”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는 주방 구석구석 살피시고 씽크대 수납장까지 열어보시더니 흐믓하게 웃으셨다.
“내가 넌 예전부터 걱정이 안됐어. 그런데
니 동생이 걱정이다. 너랑 똑같이 맞벌이하는데
걔는 왜그렇게 살림이
서툴까.
니가
귀찮겠지만 가끔 가서 도와주고 가르쳐라.”
“ 에이, 자기 살림인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요.
걱정마셔. 나도 첨부터 잘한건 아니고..ㅎㅎ”
거실에 10인용 교자상을 펼치고
상다리가 부서지게 음식을 날랐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는
정말 정말
맛있게 드셨다.
디저트로 머리통만한 배를 깎으며
이건 비싸지만 특별히 아버지만 드시라고 샀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아버지는 당신만을 위해 샀다는 딸의 말에 흡족해 하시면
크게 웃으셨다.
( 멈춰버린 아버지의 시계)
한참을 먹고 이야기하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 아이참, 이 시계가 멈췄네. 아까 집에서
출발했던 시간에 멈췄어.”
라고 하셨다.
그 시계는 아버지가 공무원 재직시에 포상으로 받으신 대통령 하사품이었고
굉장히 소중히 여기시며
오래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시계가 멈췄다는 말에
나는 괜히 짜증을 내면서
“ 아빠, 김서방이 드린거… 골프칠때 허리에
끼우는 그 시계 있잖아요.
이제 그거 쓰세요.”
라고
했
고 아버지는 손목을 툭툭 치시며
그러겠노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전날 내린 눈이 얼어 붙어 있으니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며
남동생에게 자동차 키를 주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큰아이를 보시더니
“ 우리 예림이, 할아버지가 업어줄까? 이쁜
내새끼”
하면서
휙 둘러 업으셨다.
그렇게 큰아이를 업고 눈길을 걸어가시면서
술도 한잔 하셨겠다
기분이 좋으셨는지
노래를 부르시기 시작했다.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가느냐 “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우리집에 오셔서 평생 내가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한아름 만들어 주시고
다음날
.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1주일전에
심근경색으로 영원
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1주일만에 집에 왔는데
우편함에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누굴까?
수신인은 우리 큰아이의 이름 석 자였고
발신인은 이미 세상에 안계신 아버지 이름 석 자.
편지봉투를 어떻게 뜯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박박 뜯고 엉엉 울며
읽어 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손녀 예림아…. 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는 큰아이에게 6년간 키워주신 친할아버지 할머니께 늘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공부열심히 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것,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하여
나중에 연주해 달라는 것,
행여 동생이 생겨 사랑을 빼앗겼다고 여길까봐
너는 할아버지의 첫 손녀라서
첫 사랑이라고 알려 주는것,
그리고 크리스마스때 무얼 선물해줄까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편지를 일찌감치 부치셨는데
연말이라서 이미 돌아가신 다음에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실 줄 아셨을까…..
6살 꼬맹이에게 무슨 당부가 그렇게 많으셨을까….
(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캠코더)
그때 아버지 연세 겨우 예순 하나셨다.
환갑잔치를 하자니까
요즘 누가 그런걸 하냐고 하도 말리셔서
조선호
텔에 룸을 하나 빌려 우리 삼남매와
사위
들 그리고 부모님만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를 했었다.
그때 남편이 캠코더로 촬영을 했었는데
1년만에 돌아가시고서
그 이후
한번도 이 캠코더의 녹화된 영상을
본 적이 없다.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걸 보는 순간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게 되는것 같아서였다.
아마도 내나이 60쯤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내일은 그렇게 홀연히 아버지가 떠나신 날이다.
벌써 22년이 흘렀으나
난 어제처럼 그날이 선명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면 지날수록
더 더 보고 싶어진다.
내가 이렇게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건
다 아버지때문이다.
아버지가 내게 동생을 부탁하셨고 ,
늘 행복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것은
참 다행이라 생각된다.
아버지와 보낸 그 마지막날은 어느때보다 기쁜 날이었고
아버지도 그 날 많이 행복하셨을거라 믿는다.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가 보여주셨던 그 성실함과
우리에게 주신 사랑
그리고 유머감각
을
늘 기억하며 살고 있어요.
아빠가 그렇게도 당부하셨던 예림인
이제 대학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어요.
피아노도 잘 치고요.
아빠가 못 사주신 크리스마스 선물도
제가
대신 사주었어요.
아빠와 함께 지낸 32년은
제 생애 가장 큰 선물이었어요.
키워주신거 감사해요..
https://youtu.be/ebyiyntVQ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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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차 주부입니다. 매일 아침밥을 짓는 건 일기를 쓰는 것과 같고, 그것이 곧 나의 행복입니다. 모아 두었던 아침의 기록들을 이곳에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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