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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부의 코로나게임

돈카츠 카레♡


돈카츠 카레♡


작년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그릇을 정리하여 넣기 전에 한 번 더 사용하기.


부드러운 돼지 안심을 두툼하게 저며서 소금, 후추를 뿌려둔다.

당근, 양파, 감자, 브로컬리는 깍둑 썰어서 올리브유에 볶다가

고체 카레 두 조각 넣고 함께 볶는다.

미리 만들어 놓은 야채육수를 잠길정도만

 붓고 끓이다가 백세카레 가루를 조금씩 넣으면서 농도 맞추고 마지막에 우유도 조금 넣어준다.


재워 둔 돼지안심에 밀가루, 계란,빵가루 입힌 후

올리브오일을 표면에 살짝 바르고 오븐에 굽는다.

바삭하게 구워진 돈카츠 위에 부드러운 카레얹고

크리스마스 케잌에 있던 산타장식을 꽂아주었다.( 별 의미 없지만 재활용할 수 있다.)




오늘은 2021년 마지막 날.


올해 초에 코로나가 부디 종식되기를 기도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바이러스와 인간의 게임인 것 같고

끝나지 않은 아니,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상황이 참으로 지루하고 따분하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어느새 두려움도 사라지고

확진자의 수도 예전만큼 민감해지지 않는다.

그저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것과 4명이상 공공 장소에 만나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만이 남았을 뿐이다.


어느날 인간세계에 침범한 바이러스는 가족간의 갈등도 만들었다.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본인들도 나도

 근무시간 중에는 서로 조심해야 했기때문에 예민해졌었고,

막내는 500만원이나 되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서

계속되는 싸강( 싸이버 강의)에 본전 생각이 나서 화도 났었다.

난, 세사람의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일이 정말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소독하는 일은 어마무시하게 힘들었다.

집안 곳곳에 소독제를 배치하고

매일 식구들 마스크와 손소독제 챙기고

한 사람 외출하고 오면

옷과 신발 , 현관,  문 손잡이까지 소독하고

한 번 입은 옷은 모두 세탁하고...

손바닥이 소독약때문에 다 일어났다.


본인들도 출근하면서 오며가며 사람들도 보고 바깥공기도 쐬고 걷기도 해야 하는데

출근을 않하니 근육량도 많이 줄고 허리도 아파했다.


가계부를 보니 생활비도 코로나 이전보다 조금 늘어난 듯 하다.

세금어마무시하게 늘었다.

남편은 월급의 40% 가까이 세금이고,

재산세와종부세,  큰아이가 회사 다니니 또 세금내고, 1.7%짜리 예적금 만기 해지하니

왕창 세금 제하고 원금만 남을 뿐이고...

살림을 해야하는 나로서는

이 또한 엄청난 정신적 부담이었다.


사정은 이러한데 봉급생활자들이 받은 혜택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무슨 지원금 이런 것도 받지 못했다.

( 가장 부러웠던 건,지원금으로

한우 먹었다는 친구의 인증샷을

카톡으로 받았을 때이다.)

거긴엔 살고 있는 집이 내집이란 게 여러모로 걸림돌이 된 듯한데

그렇다고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갈 순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운이 좋아서 강남에 자기 집을 살 수 있었다고.

나에게만은 참 억울한 이야기이다.


결혼하고 2년동안 참 많이 아끼고 절약하며 살았었다.

신용카드를 써 본 일도 없었고

 월급 받으면 80%를 저축했었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녔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았었다.

맞벌이했으니 가능했겠지라고 한다면

그것도 내게는 틀린말이다.

둘 다 신입사원 딱지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라서 많은 월급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내 초봉이 26만원이었다.)


아이를 시부모님에게 맡겼고

부모님은 그냥 봐주신다고 한사코 말리셨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맡기면서 냉큼 그냥

맡기는거 또한 내 성격에는 아니될 일이었다.

그당시 15만원씩을  보내드렸다.

신혼때 남편의 회사버스가 정차하는 도곡동 아파트에 전세를 구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만삭인 나를 징하게 괴롭혔다.

매일 집 검사를 나왔으니….

난 어서 그 집을 탈출해야 했다.

태어날 내 아이에게  엄마의 서러움음을

보여주기 싫었기때문이었다.

2년만에 탈출하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다.

집값의 절반을 대출을 받았다.

그당시는 대출은 쉬웠으나 대출이자가 무려 15%에 달했던 때이다.

살던 곳이 도곡동이라 근처가 익숙했고

남편의 회사버스가가까워야 해서

 방배동에 집을 구했다.

그 이후 강도가 드는 바람에

제값을 받지도 못하고 처분하고

양재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당시는 강남, 강북 구분이 없던 시절.

그래서 집값도 똑같았다.

똑같은 1억 3천만으로 나는 방배동에,

친구는 강북에 집을 샀었다.

오히려 강남엔 논과 밭이 그대로 남아 있던 곳들이 많았다.

집값의 반인 대출을 갚느라

이를 악물었던 시간들이었다.


부모님 아래에서 걱정없이 살다가 어느날 결혼하고 2년만에 대출이란 빚을 지고

어린 새댁은 정말 두렵고 힘들었지만

월간 계획, 연간 계획을 세워가며

 무섭게 절약했다.

내 피와 땀이 오롯이 녹아든 나의 첫 집이었다.

하늘에서 거져 뚝 떨어진 집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변하고 나니

집이 한 칸 있는게 이렇게 비난 받고 힘들어야 하는 일인가  싶다.

나의 그 살과 피가 녹아들었던 그 시간들은 어떻게 된다는 건가.


어느덧 남편의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아서

얼마전에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에 대해 상담하고 공부했다.

그런데 또 이 집이 문제이다.

공시지가를 내가 올려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난 그냥 한자리에서 주구장창 살았을 뿐인데 공시지가때문에 주택연금 신청도 안된단다.

( 대상만 된다면 주택연금 이 제도가

 참 괜찮은  제도인 듯)

국민연금은 처음 가입시 약속했던 그 나이에 수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수령가능 나이가 늦춰진 것이다.

다행히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나와 남편이 30여년간  지금껏 계속  납부하고 있어서 그건  모두 수령할 수 있을까 했는데

수령시점에 소득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건 재취업이든 뭐든

일을 하지 말라는거 아닌가.

70세도 젊은 나이라 하는데 돈을 떠나서

몸을 움직여야 건강할거 아닌가…

일을 하지 않아야 국민연금을 다 받을 수 있으니

누가 손해보며 일을 하겠는가.

앞으로 일하지 않고 몸이 약해진 노인이 많아질 것 같다.


몇 군데 은행에 상담도했다.

정년퇴직을 하면 급한 일이 생겨도

아무런 대출을 못 받는댄다.

연금소득 내역있으면 그 범위 내에서

약간은 받을수 있는데

그 국민연금을 퇴직후 2년 후에나

수령이 가능하고

대출받으려면 몇십만원 깎인 금액으로

몇년 당겨 수령해야 한다.

이런줄 알았으면 그동안 대출도

잔뜩 받아둘 걸 그랬다 싶어 후회막심이다.


집이 있다는게 그렇게나 허망한 1년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가며 공생해야 한다는건 알고 있고 그러는게 맞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전쟁이 계속될 때는  모두  무너질지도 모른다.

내가 무너지면서 까지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계층간의 갈등이 커지면 나라의 존립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부디 내년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월급생활자에게도 힘을 낼 수 있는 계기를 조금만 배려해 주면 좋겠다는게 바램이다.


내가 부족하고 내가 생각이 짧은지 모르겠다.

어디까지 월급생활자에 집 한칸 있는 가정의 평범한 주부의 고백이다.

마음이 정말 힘든 한 해 였다.

올 한해  오징어 게임보다 무서운

코로나 게임을 한 소감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2022년.

그리 큰 의미가 있랴마는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까

이것 저것 정리를 해보는 아침이다.


아무튼 모두 모두 내년엔 더욱 더 건강하시고

365일 선물같은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youtu.be/k9uQncR-L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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