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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55세는 처음이라

섬초 비빔밥



섬초 비빔밥


섬초의 계절이 왔다.

겨울땅에서 찬바람  맞으면서 자라 아주 달큰하고 고소하다.


섬초를 살짝 데쳐서 다진마늘, 국간장, 참기름으로 무친다.


호박은 반달썰기하여 소금에 잠시 절여 물기 꼭 짜내고 참기름과 포도씨유에볶는다. 표고버섯은 처음엔 기름없이 볶아 힘을 뺀 후에 맛간장으로 볶는다.


무채도 소금에 잠시 숨을 죽인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뚜껑덮고 익힌다. 콩나물도 삶아 무쳐서

참기름에 살짝 볶아준다.


현미밥에 나물을 가지런히 올리고 고추장 으로 비벼먹는다. 비빔밥은 고추장 넣고 비벼야 하니 나물들을 싱겁게 무치거나 볶는다. 오랜만에 먹으니 꿀맛이다.






예전엔 확신을 가졌던 일들이 머뭇거려지고 결정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 나이쯤 되니 겸손이 더하여진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 더 커진건지 돌다리를 자꾸만 여러번 두드리게 된다. 그래서 손가락이 몹시 아프다. 답답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쌓아 온 경험이 많을테니 결정이 오히려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예전에 부모님이 뭔가 망설이시는 모습을 보면 뭘 그리 고민하시느냐고 쉽게 말했었다.


그런데 내가 쉬흔 중반에 들어서니, 할까 말까, 살까 말까, 갈까 말까, 버릴까 말까, 심지어 잘까 말까, 먹을까 말까…. 그런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용기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선뜻 결정하고 난 후에 혹시라도 생겨날 일들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앞당겨 생각하다보니

당장의 결정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걱정들의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라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내가 결정을 앞두고 있으면 그 훌륭한 조언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도 나는 망설인 일이 있다.

김치통에 무김치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날이 밝으면 무김치를 담을까 말까….

김치통 뚜껑을 열번도 넘게 열었다 닫았다 했었다.


온집에냄새가 진동하니 남편이 결국 한마디 했다.

“ 아니, 뭐 때문에 그렇게 냄새나게 김치통을 열었다 닫았다야-”

“ 무 김치가 바닥을 드러냈는데 담을까 말까 고민중..”

“그럼 담가.”

남편은 아주 쉽게 결정을 내려 주었다. 남편의 결정이 떨어지자 마자 쿠0으로 무를 잔뜩 주문하였고

새벽에 도착하여 이때까지 무를 절였다.


내가 변한건 이것 뿐 아니다. 자꾸만 이거하다 저거하다 그런다. 글을 쓰다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다가 갑자기 세탁기 돌리고. 밥 먹다가 청소하고….

그러다 보니 누가 보면 하루종일 일만 하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상이다. 맥락도 관련성도 없이 일을 늘어 놓고 있다. 매우 민첩하고 한 번 시작한 일은 파다닥 끝내고 다음 일을 하고 그랬는데 말이다.


자꾸만  아주 옛날에,

내가 엄마에게 이해안된다고 했던 일들이 내게서 일어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딸들은 옛날의 나처럼

이 엄마에게 이해가 안된다고 얄밉게 쏘아 붙이지는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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