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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빗자루가 부러진 이유

콩나물 전, 콩나물 밥, 콩나물 볶음

     ( 콩나물 전)

( 콩나물 밥과 콩나물 볶음)



자가격리 하는 동안에  실수로 콩나물을

3봉지나 주문하여 냉장고에서 시들기 직전이다. 오늘 다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01.콩나물 전

비가 조록조록 내리니 부침을 해본다.

콩나물, 양파, 부추를 넣고  찹쌀가루를 조금만 넣어 달군 팬에 치지직 구웠다.

너무 오래 구우면 콩나물이 질겨지므로 살짝 지져서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이 매우 기분이 좋다.


02.콩나물 밥

채반에 콩나물을 살짝 삶아내서 따끈한 현미밥에 섞어서 담고 양념장에 쓱쓱 비벼 먹는다.

양념장은 다진마늘, 진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매실액, 참깨, 다진 쪽파를 넣고 미리 섞어 두면

재료가 겉돌지 않아 맛있다.


03.콩나물 볶음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생콩나물을 두 주먹 넣고 뒤적이다가 다진마늘, 천일염, 고춧가루를

넣어 몇 번 더 뒤적이며 콩나물이 숨죽으면 불을 끈다.  무침보다 좀 더 깊은 맛이 난다.


콩나물로만 차린 아침상이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키가 제법 큰 나는, 자랄때 " 너, 콩나물 많이 먹는구나. 아주 쑥쑥 자라네."  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만큼 콩나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냥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반찬을 가리지 않고 뭐든 정말 잘 먹었다. 한 끼도 안 빠지고 콩나물 무침이 상에 오르긴 했었다. 콩나물의 콩이 단백질이라 조금 영향을 받긴 했겠다.

 

아무튼 어릴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 ㅇㅇ이네" 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때는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작은 수퍼마켓도 없던 시절인데 . ㅇㅇ 이네 반찬가게에 가면 온갖 채소와 생선까지 다 있어서 오후가 5시가 되면 그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다.


엄마는 베란다를 수시로 드나드시며 “ ㅇㅇ 이네” 가게를 계속 체크하시다가 갑자기 정신없이 지갑을 들고 쏜살처럼 뛰쳐 나가실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밖을 내다보면 어김없이 파란 트럭이 나타나서 온갖 싱싱한 야채와 두부, 새로운 생선등을 내려놓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쳐 나가 싱싱한 고등어와 갖가지 야채들을 한가득 들고 들어오셨는데 풀어보면 이 콩나물은 늘상 몇 바가지가 들어 있었다. 노란 콩이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는 모습은 보기 싫었고 며칠을 이 콩나물과 씨름을 할 것인가, 한숨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날, 우리집에  쌀 담는 푸댓자루에 담긴 무언가 배달되었다. 엄마는 그것을 낑낑거리시며 안방으로 끌고 가셨는데,  ‘저게 뭘까?’ 몰래 열어보니 항아리처럼 생겼고 이상한 받침도, 조롱박도 하나 들어 있었다. 그날 밤, 그 항아리의 정체가 너무 궁긍한 채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며칠 후, 학교에 다녀오니 엄마는 맏딸인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하셨다.

“ 앞으로 너한테 한가지 일을 줄게.”

“뭔데요?  힘든 일이야?”

“ 아니, 별로 힘들지 않고 단지 기억만 잘 하면 돼.”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하얀 광목 천을 꼼꼼히 박음질 하셔서 그 항아리를 덮어 두셨는데 천을 열어보니 세상에 .. 노란 콩들이 고개를 바짝 들고 촘촘히 그리고 빽빽하게 서 있는거다. 보자마자 징그러워 뒤로 주저앉으니 엄마가 나에게 드디어 그 ‘당부’ 를 하셨다.


매일 아침7시, 저녁 9시에 조롱박에 물을 퍼서 노란 콩대가리에 물을 주라는 거였다.

그걸 왜 내가 해야하느냐고 동생에게 시키시라고 징징대며 반항했지만, 3남매 중 가장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내가 아니면 안되겠노라며 조롱박을 손에 쥐어 주셨다.


처음엔, 물을 주는게 쉽다고 생각했다.

위로 물을 주면 아래로 쪼로록 떨어지는 물소리가 참 재밌기도 했다. 아침밥 먹기 전 7시와 밤에 자기 전 9시를 기억했다가  물을 주니 이 녀석들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엄마는 더이상 ‘ ㅇㅇ이네’에서 콩나물을 안 사시고 내가 키우는 것들로 맛있게 무쳐 주시곤 하셨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내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섰다. 아침 저녁 시간 딱 맞춰서 주지 않아도 잘 자랄것이라는 교만. 그리고 이 콩나물들이 나에게 길들여 졌을테니 내가 마음먹은대로 자라줄 거라고 믿었던 교만.

슬슬 귀찮은 마음에 하루 한 번으로 물주기를 줄였다. 아침 또는 밤에 딱 한번 왕창 물을 퍼붓고 들여다 보질 않았다.


어느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정체 모를 냄새때문에 엄마는 온 집안을 뒤집으셨고 설마하는 마음에 그 광목천을 걷었을때 이미 다 죽어 갈색으로 변해버린 콩나물을 보고 엄마는 단번에 오동나무 빗자루로 내 종아리를 때리셨다. 난 그때 우리엄마가 나보다 콩나물을 더 사랑하는 계모인 줄 알았다.


콩나물 따위 때문에 내가 맞았다는게 분하고 속상해 목이 터져라 울었는데 그날 밤에 엄마가 나를 붙들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네 일기장을 봤다. 나보라고 쓴 걸 내가 다 안다. 나는 계모가 아니야. 분명히 널 낳은 엄마지 . 그런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네게 맡겨진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히 감당해야 하는거다. 널 믿고 맡겼는데.“


울다가 다 죽어있는 콩나물을 보니 나보다 더 불쌍해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깨달아졌다. 엄마가 나를 믿으셔서 그 일을 맡기셨다는 것, 아무리 별 것 아닌 콩나물이지만  하루 두 번 물을 먹는것에 길들여 진 것을 한번에 왕창 주니, 콩나물은 감당이 안되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물이 많이 고이면 썩는다는 것.


그 이후로 정말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린시절 교만함과 눈속임을 잠시 하려 했던 내가 정신차린건 다 오동나무 빗자루 덕분이다. 그 후로 한 번 더 오동나무 빗자루로 맞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는 결국 그 빗자루 손잡이가 두 동강이 났고 난 개과천선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빗자루가 부러져야만 했던 그 사건은 다음에 풀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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