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안산 둘레길을 아시나요

걸으면 보이는 것들



어제의 기록

바람도 선선하고 아이들도 나가고

둘만 남아서 무작정 모자만 챙겨 안산둘레길에

갔다.



안산 둘레길에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코스는

무악재에서 올라가서 독립문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3호선 무악재역 4번출구로 나가서 한양아파트

입구로 들어간다.

103동과 107동 옆길로 올라가면 기원정사라는

작은 절이 보이고 그곳이 둘레길 입구이다.

그때부터는 숲속무대, 독립문역(또는 영천시장)

이정표를 보고 따라간다.

이 길은 가을에도 좋지만 지금 가면 울창한

숲이  매력적이다.

신기한 새소리와 함께 느긋히 걸어도 2시간이

안걸려서 심신이 편안해진다.

둘레길은 나무 데크를 깔아서 유모차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걷다보면 메타세콰이어 숲, 전나무숲 , 아까시 숲

등 다양한 숲이 마법처럼 등장한다.


목이 말라 가져간 토마토를 먹으면서 걷다가

산아래를 바라보니 너무 아웅다웅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가지려고, 더 먹으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이따금 비우면서 괴롭기도 하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비운 것이 누군가를 채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그렇지 못함을 반성해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마저

든다.

계절마다 약속한듯 스스로  싹이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단단해지니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실한가.

무한대로 베풀고 있는 자연앞에서 숙연해진다.


군데 군데 음식 펼쳐놓고 막걸리 먹는 몇몇

산악회만 아니면 아주 기분 좋은 트래킹이었다.

( 지나다 보니 어느 산악회 회원들이 통째로 삶은문어를 펼쳐 두었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10명이 나눠 먹을건지 엄청 궁금했음)

곳곳에 사람들이 쉬어갈 정자들이 있는데

가는곳 마다 모임에서 온 사람들이 온갖 반찬을

펼쳐놓아서 냄새도 불쾌하고 시끄러워서

트래킹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었다.


거의 다 내려오면 이진아 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은 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딸을 위해 사재 50억으로 세운 도서관이다.

산에서 내려온 이들은 잠시 휴식하고 책도 볼 수

있고, 주민들에게도 아주 감사한 공간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떠나 보내고 남은 가족은 책을 좋아했던 딸을 기리며

도서관을 세우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서울시민에게 이렇게 감사한 공간을 남겨준

그녀가 하늘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한다.


서대문 독립공원도 잘 조성이 되어 있다.

갈때마다 조금씩 변해있는데 점점 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되어 가고 있다.

순국선열의 위패가 모셔진 독립관에서 묵념도

잊지 않는다.

방명록의 한 꼬마가 쓴 기록이 뭉클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이라면 분명히

훌륭한 어른이 되겠구나... 싶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정말 많은걸 배우게 된다.



독립공원을 빠져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영천시장이다.

서대문은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살았었다.

그때는 아파트라는게 없던 시절인데

금화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나는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가 분양받은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손 잡고 영천시장에 자주 갔었다.

영천시장 건너편에 교남동이란 곳에

* *집이라는 도가니탕 팔던 집이 있었는데

그 곳에도 자주 가서 애기때부터  도가니탕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동네가 재개발되어

빽빽히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가게는 행촌동으로 이사가고 별관이 영천시장에 생겼다.

70년이나 된 이 식당은 이제 점점 그 맛이

사라져 가는듯 하다.

진한 국물에 도가니가 들어 있던 그 탕이 아니다.

도가니대신 스지가 들어 있고 국물도 예전 맛이

아니다.

그냥 가격을 낮춘 설렁탕이거나 아님 가격을

좀 올려 제대로된 도가니탕이면 좋겠다.

이름표만 도가니탕인건 오히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고 내 어린시절 추억 속 그 음식이

아니어서 좀 서운했다.

달인꽈배기는 12시면 문 닫으니 어제 사지 못했고 대신 꽤  훌륭한 약과를  만났다. 우선 가게가

깔끔했고 많이 달지 않고 꾸덕하지 않고

가격도 맘에 든다.

시장 바로 앞에서 집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남편이랑 어릴때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무슨 애기가 도가니탕을 먹냐고 놀렸지만

난 그 덕분에 못먹는 음식이 없다.

2015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진 금화아파트에서의 추억은 아주 선명해서 밤새고 이야기 해도

부족하다.

그 이야기 보따리는 차차 풀어보리라.


걷다보면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바로 '시간'과 '의식'의 흐름이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위로받기 위해서.


꽤 괜찮은 하루였다.


https://youtu.be/7r-ls5c64Bg


 


매거진의 이전글 새댁이 끓일 수 있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