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에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많이 아프다. 어느 때는 국자도 쥐기 힘들 정도로 손가락이 아프다. 병원에 가도 딱히 이상이 없다 하는데 아마도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 하지 못해서인가 싶다.
21년 전. 갑자기 부모님이 넉 달 간격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큰 아이 6살 , 막내는 태어난 지 한 달 하고 보름밖에 되지 않았었다. 출산 후 뼈가 제자리를 찾아가기도 전에 나는 부모님을 떠나보내느라 울다가 실신하다가 다시 울고 그러다가 막내 우유 먹이고, 큰아이 유치원 보내고. 또다시 울다가...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집안은 쑥대밭이고 큰아이는 남편이 어설프게 묶어준 머리로 유치원엘 가고 막내는 청소도 안된 집안을 기어 다녀서 내복이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게 울었다.
아! 정신 차려야겠구나. 내가 보살펴야 할 남편, 아이들이 있었구나.
미친 듯이 청소를 하고 구석구석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말끔히 정리된 집안을 보는 일은 잠시 부모님을 떠나보낸 아픔을 잊게 해 주었다.
맛있게 음식을 해서 식구들에게 먹이면서 엄마와의 추억에 웃을 수도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엄마는 맏딸인 나에게 스치듯 음식 하는 법을 참 많이 알려 주셨다.
그 기억들을 또박또박 기억해 내어 엄마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메모를 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는데, 아욱이란 것이 나왔다. 아욱이 아이들 건강에 좋다는 방송을 보고 아욱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찬가게에 가서 아욱을 달라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새댁이 아욱국을 끓일 줄 알겠어? 잘못 끓이면 풀내가 나서 맛이 이상해져.” 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까짓 그걸 못할까. 아욱은 깨끗이 씻어 박박 힘차게 문질러서 끓여야 맛있다는 걸 배웠다. 그날 성공적으로 아욱국을 끓여 막내의 이유식을 맛있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큰아이를 유치원 셔틀버스 태우고 나면 막내를 포대기로 둘러업고 반찬가게 가서 바쁜 아주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국과 반찬 만드는 걸 배웠다.
가끔 손님이 오면 채소들을 팔아주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부모님 잃은 슬픔에 대하여 넋두리하는 나의 이야기를 매일 들어주셨고 나는 차차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