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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Feb 12. 2020

좋은 음식은 좋은 기억에서부터

30일의 글쓰기, 네번째 (띄엄띄엄)

한번쯤 완독을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책이다. 총7권의 장대한 책이기도하고 한문장이 끊기지 않고 다음쪽으로 넘어가기까지하는 특이한 부분들이 있어서다.

어려워도 읽어보면서 그만의 비유와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대학 학부생 시절 프랑스어와 프랑스문화를 배우는 전공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프랑스나 혹은 그쪽 언어,문화를 많이좋아하던것도, 잘하는것도 아니지만 특유의 예술적 표현이나 그것들이 주는 새로운 '느낌'에 감탄하기를 좋아해서일까. 가장 유명한 대목은 인물이 홍차에 마들렌을 살짝 적셔 입에 베어 물었을 때, 갑자기 온갖 기억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생생하게 많은 감정들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문득 오늘 가족 채팅방에 엄마가 올려주신 사진 한장을 보며 '나에게 좋은 음식'이란 어쩌면 마들렌처럼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 기억으로 오래도록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몸건강하고 보기 좋은 그런 음식들도 당연히 좋은 음식이긴 하지만.

와, 옥돔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구이다. 

대학생 시절 제주도에 올레길을 걸으러 갔을 때 들렸던 소박한 백반집이 있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반나절을 걷고 난 끝에 먹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간간하지만 하얀 쌀밥에 얹어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이후로 제주도에 가면 꼭 옥돔구이를 먹곤 하는데, 아빠가 이렇게 날 생각해서 사다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을 만나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수소문하여 맛집을 검색하고, 사진을 남기고 맛있게 먹긴하지만 그렇게 좋은 기억이 오래가는 음식점과 음식을 꼽자면 사실 바로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진짜 좋은 기억들과 함께한 수고로움 끝에 먹었던 음식이나, 정성이 느껴지거나 평소에는 겪을 수 없는 상황 끝에 먹은 음식들은 오래도록 내게 '좋은 음식'으로 남아있다.


1. 감태김에 싸먹은 버섯밥 (놋그릇, 그리고 장금자 선생님의 정성)

하나하나 찢어붙여 만들어진 감태김에 싸먹는 정갈한 버섯밥을 잊을 수 없다. '건강클럽'이란 모임을 통해 내 몸의 건강과 건강한 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서 먹었다. '건강'을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그런 식사를 했다는 느낌 자체도 좋았고, 내 몸을 아껴준단 느낌이 한 숟가락씩 입에 넣을 때마다 들고, 손수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일만큼 따뜻한 일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본 미역국 (나의 소중한 언니 K)

"생일인데 뭐해? 혼자있어? 우리집으로와" 

본가에는 못가고 휴가를 내서 자취집에 멀뚱멀뚱 혼자 있던날,

나를 불러내어 소소한 반찬과 함께 맑고 고소한 그녀의 미역국을 먹으며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고 아껴줌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임은 분명하다.


3. 야근을 마치고 챙겨 먹는 집 앞 푸드트럭의 타코야끼 오리지널맛 

1년동안 한 열댓번은 타꼬야끼를 사먹었다. 9-10시쯤 집 근처 역에 내려 집 방향으로 걷고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타코야끼 트럭 한대가 있다. 두 분이 번갈아가며 오시는데 A아저씨가 훨씬 소스도 적절히 뿌려주시고 가쓰오부시도 많이 주셔서 그분의 타코야끼를 개인적으로 더 선호한다. 야근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마음으로 아주 작게나마 맥주 한캔과 함께 보상을 하는거다. 배달음식은 오래걸리기도 하고 양이 많아 처치 곤란이었지만,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야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루는 밤12시가 다 되어가는 즈음에 장사 마무리를 하고 계시는 A아저씨가 있었다. 사먹으려고 계좌이체를 하려는데 그냥 가져가시라며, 다음번에 또 찾아달라며 타꼬야끼를 공짜로 주셨다. 


그밖의 제주도에서 몰래 숨죽이며 먹은 별빛족발, 여행 중에 매일 찾아가 먹었던 펍의 맥주스프와 돈까스, 할머니가 고3 내내 싸주셔서 물리지만 다시 또 먹고 싶은 유부초밥, 쿠알라룸푸르 허름한 구멍가게의 진한 국수 등등등 생각해보면 나에게 좋은 음식으로 기억되는 메뉴는 참 많은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기억들이 내게 좋은 경험을 가져다 주었듯이,

나 역시 좋은 음식으로 기억 될 수 있는 소중한 추억들을 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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