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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Apr 17. 2020

도대체 브랜드가 뭘까

<비마이비>  '당신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전시 참가 후기

이렇게 쉽게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게 어딨어?

평소 구독하고 있던 비마이비 인스타그램 계정의 한 글을 보자마자, 이건 내가 해야된다라는 생각이 직감했다.


비마이비의 공간이 생기면서 그 시작을 채워주는 첫 전시!



<당신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브랜드이며,

그 자체가 '나'라는 브랜드를 소개해줄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비마이비의 전시다.


'브랜드 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브랜드가 여전히 뭔지 모르겠을 때가 많았다.

클라이언트가 세상에 새롭게 무언가를 선보이고 싶긴한데, 아무것도 없는 것에 있어보이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주고 멋짐을 더해주는 정도라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스스로 '브랜드'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재해석하고 마음가짐을 달리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의 브랜드를 사진으로 담고, 각 브랜드에 담긴 이야기를 매니저님께 카톡으로 전달한 다음, 택배로 보내거나 직접 방문을 하면 되었다. '어떤 브랜드를 보내면 좋을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굳이 저 밑에 있는 수납장에서 꺼낼 필요도 없었고, 내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책상 앞에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동안 전시하면서 내 물건들을 못쓴다는 생각에, 마치 아들 군대 보내는 엄마처럼, 집을 떠나 먼길로 나의 브랜드들을 떠나보낸다는 느낌은 참 묘하고 시원섭섭했다. 다른 곳에 기증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올텐데, 매일 같이 쓰던 것들을 못쓴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물건이, 아니 '나의 브랜드'가 결국 이런식으로 내 일상속에 자리 잡고 있었구나 깨닫게 해주는 첫번째 순간이었다.  하나뿐인 연필깎이를 보내다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칼로 연필을 깎는 새로운 루틴을 가지게 되었다.


브랜드들을 꾸리면서 한편으로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향수, 화장품 같이 매일 쓰는 것도 사람들이 내면 한달동안 못쓰게 되니까 선별해서 전시에 내지 않을까?

그러면 이게 진짜 일상 속 브랜드를 모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한동안 없어도 되는 수준의 물품들만을 내지 않을까? 약간은 반신반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애지중지. 내 새끼 잘 도착했나~ 매니저님이 어떻게 디스플레이가 되었는지 사진도 직접 찍어주셨고,

때마침 나는 아주 작은 편지를 써서 드렸는데, 이렇게 인스타계정에 잘 도착했다며 자연스럽게 인증도 되었다:)



물품을 보내고 이주일 정도 지나,  전시를 직접 보러갔다.

참가자 서른 여섯명의 브랜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마이비의 오프라인 공간 '데어바타테'



전시된 브랜드들. (왼쪽 하단) 다른 전시참가자분의 전시에 감명 받으셔서 쪽지를 남기고 가셨다, 훈훈하다


카카오 라이언 덕후에서 출발해 팬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시게 된 분,

성수동 카페를 좋아해 매일매일 찾아가고,

일회용 컵 하나 디자인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버릴 수 없다며 컵을 모으신 분,

향수를 살 때 남과 '다름'이란 가치에 주안을 두고 골랐으나, 이제는 '나다운' 향을 찾다가 딥디크로 정착하신분까지.


다양한 분들의 라디오 사연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빵을 담는 스토리지 관련한 이야기였다.

퇴사 후, 가장 슬펐던 건 나만의 공간, 나의 책상을 잃었다는 상실감이었어요. 여기에 좋아하는 시집, 읽고 싶은 책, 일기장 등을 담아 주방에 둬요. 책을 좋아하는 나,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 글쓰는 사람이길 원하는 박00이 그 속에 살아있어요.


글을 읽기전에는

아 빵을 엄청 좋아하시는 분인가? 싶었는데,  

스토리지 안에는 빵이 아닌 글이, 글을 넘어 꿈꾸는

자신이 들어 있었다.



이솝, 조말론, 이케아, 아이폰 등 겹치는 브랜드는 있어도, 겹치는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누구나 각자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브랜드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냥 보면 물건이지만 정말 그 안에는 사람의 일상이, 진심이 담겨있으니까.



부끄럽지만 내가 낸 브랜드들은 소박하다.


 스누피: 보기만해도 자연스럽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해주는 것은 언제나 옳다.


 연필: 카란다쉬 스위스우드 & 블랙윙 : 필기감이 내 맘에 쏙드는 연필
카란다쉬 연필은 스위스 제네바의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졌고, 나무향이 나서 쓰다가 가끔 킁킁거리는게 참좋다. 블랙윙은 역사적 사건이나 이야기가 있는 인물을 모티프로 차용하여 에디션을 내놓는데,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일 아침 그날의 기분에 따라 출근 전 연필을 고르고, 퇴근 후 자기전 일기와 가계부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제주 올레 간세인형 : 같은 여행지여도 매번 여행때마다 다르게 느끼듯,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한마리씩 제주도에서 인형을 데려온다. 무엇하나 같은게 없어서 더 애정이 간다.

전회사 동료분들께 선물한 양말

스누지: 아이헤이트몬데이 양말은 어느정도 유명한데, 스누지를 모르는 분들은 많으실거다. 왼쪽 오른쪽 자수 다르게 박혀있고, 자수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신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회사를 퇴사할때 동료분들의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각자 다르게 선물해드렸는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를 주제로한 글 엮음: 나라는 브랜드를 두고 할머니를 빼서는 안될 것 같았다. 말투, 식성, 습관 등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종종 할머니 같다는 소리도 듣긴한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한달동안 꼬박 작성한 할머니와 나에 관한 이야기다. 먼훗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면, 할머님들을 도울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내 이름의 이니셜 나무조각: 5년전 가구점에서 샀다. 어렸을 때는 내 이름 '안명온'이 흔하지도 않고 부르기도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은 '온'이라는 말이 참 좋다. 주변으로부터 에너지를 준다는 칭찬도 듣고, 스스로도 분위기를 밝게 할 수 있는게 내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사람은 이름을 닮아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런 장점들이 나라는 브랜드의 core value라 생각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참 안명온스럽다. 엄청나게 비싼, 누구나 알만한 명품 브랜드도 아니지만,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값어치를 숫자로 매길 수 없고,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브랜드는 없는것 같다.


이렇게 전시를 보고나서, 비마이비의 '데어바타테' 공간도 둘러봤다.

직접 매니저님이 구석구석 소개해주셨는데, 공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 공간을 꾸리기까지 보이지 않지만 엄청 고생하셨을 것 같았다. 나눠주신 자색고구마칩을 먹으며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질문. 왜 근데 고구마죠?

데어바타테 : 독일어로 고구마.B로 시작하는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Batate 고구마.

지하1층에 위치해있으니, 땅 속에서 자라는 뿌리식물이란 공통점이 있고,

얼기설기 얽혀있으니, 브랜드와 관련된 어떠한 컨텐츠도 무한하게 연결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왼쪽 B;Setter Zone /  오른쪽 B;Player Zone

B; Setter Zone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 멤버십 회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 이곳에서 비마이비 강연, 컨퍼런스가 열릴 것이며, 멤버십 회원이라면 누구나 이용가능하고, 브랜드를 위한 대관도 가능하다고 한다. 브랜드, 자기다움과 관련해 추천 도서도 있어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B;Player Zone은 특별 전시나 플리마켓등을 열수 있는 공간으로, 곧 여행과 관련해서 전시가 있다고 하니, 빈 공간이 어떻게 채워질지 궁금해진다.


한켠에 엽서와 마카가 있어 좋아하는 브랜드를 직접 그리고 꾸밀 수 있다.

비마이비에서 만나고 싶은 브랜드를 적어도 좋고, 그냥 좋아하는 브랜드를 그려내도 좋다.

이렇게 찍어놓고 보니 의자가 기둥이고 붙여놓은 카드들이 잎사귀같아 하나의 나무처럼 보이는군.


'브랜드적 삶'이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면,  누군가는 그냥 브랜드가 브랜드지 참 유난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너무나 살아있는 삶이고 재미있는 삶이라고 해석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원래부터 브랜드적인 삶을 살아왔을 수도 있다. 너무 당연해서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조금 달리하다보면, 작은것들도 훨씬 의미있고 재미있는것이 될 수 있다. 00이라는 브랜드에 누가 언제 사준거, 그래서 내가 어떻게 쓰고 있는 것, 그런데 쓰다보니 계속 사게 된다거나, 친구들에게 이거 좋다며 써보라며 알려준다거나. 정말 작지만 일상적인 것들이 브랜드의 힘이고, 계속 회자되는 이야기의 힘이다. 별거 없다. 그냥 이런게 브랜드적 삶인것 같다.


일상을 그냥 그렇게 흘러보내도 좋지만, 가끔은 일상 속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며 살아가도 참 좋을 것 같다.





#비마이비

전시는 네이버 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338828


장소는 성수역 근처 카페 자그마치 건물의 지하1층


공간 & 전시 안내:

 https://brunch.co.kr/@thewatermelon/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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