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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un 26. 2020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

정기 후원을 신청하며 든 생각

지하철 출구를 드나들며 피하고 싶은 상황 두 가지가 있다.
아주머니가 전단지를 팔락거리며 건내주실 때,

NGO에서 10초만 시간을 내달라 할 때.

오늘 나는 두번째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열댓명의 사람들이 지하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한 명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후원활동가들이 포위망을 좁혀 보지만 쌩 하고 도망가거나 미안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자기 갈 길을 간다. 나는 잡힐 걸 뻔히 알면서도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왠지 ‘그래 잡아가라.’ 하는 심정에 가까웠다. 피하느라 속도를 내서 걷고 싶지 않을 만큼 조금 지쳐 있었고, 이 꿉꿉한 날씨에 몇 시간동안 고생하는 활동가분들에게 유독 미안했다. 스티커를 한 번 붙여 달라 하길래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는 칸에 붙였다. 활동가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간이 텐트 앞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웃고 있는 난민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 시민님의 후원으로
스물네명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어요. "


얼떨결에 후원을 신청했다. ‘이런 정도는 너그럽게 할 수 있지’하며 신청서에 개인 정보를 적었다.

최소 후원 금액이었던 3만원에도 시원하게 체크하지 못하고 기타 항목에 ‘2만원’을 기입했다. 유엔난민기구여서 신뢰가 가지만서도 ‘이 돈이 제대로 정말 잘 쓰일까?’ 반신반의 상태였다. ‘왜 내 돈인데 생판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해 쓰지?’ 하는 조금은 스크루지 같은 마음도 들긴해서 금액을 줄였다. 커피 5,6잔만 참으면 가능한 금액인데, 남한테 선물은 잘 주면서 인색한 구석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후원 활동가들은 천사인가?

그냥 후원 신청만 하고 쌩 가버리는 것도 정이 없어 보여서 왜 이 일을 하는지 갑자기 물어보고 싶었다.


“하루에 몇 명이나 후원을 신청하세요?”


“저희가 보통 400명 정도 시민분들을 만나요. 후원 해주시는 분들은 그 중에 2,3명 되세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동참해주시는 분들이 적긴 해도, 그래도 난민들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사명감도 있고.”


누군가를 위한 이타적인 마음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 일을 얼만큼 오래 끝까지 잘 할 수 있을까?

남을 돕기 위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내가 중학생 정도 되었을 때는 한창 한비야씨,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책이 굉장히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의 책을 읽고 그 길로 아프리카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UN’이란 두 글자가 너무 상징적이고 거대해보여서 오를 수 없는 나무 같이 느껴진 탓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름이 길고 조금은 작아보인다는 느낌만으로 ‘UN고등난민판무관사무소’를 목표 삼아 열심히 수능을 준비했더랬다. 대학 전공도 국제기구의 공용어인 ‘불어’를 선택해서 갈 정도였으니까. (사실은 영문과에 가고 싶었으나 성적이 조금 모자랐다.)


대학생이 된 봄에 인생 첫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시작하면서 몇 푼 안돼는 돈을 수중에 넣은 기쁨에 월드비전 해외 아동 정기 후원을 덜컥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과외 학생이 가출을 해서 과외가 끊기는 동시에 수입이 확 줄자 한 달만에 후원을 끊어버리긴 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안고 있다가 그 해 겨울 NGO에서 방학 인턴을 시작했는데, 후원 중단의 죄책감도 덜어주고, 꿈꾸던 일에 가까워지는 경험 같아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개인 후원실의 인턴이라 연말 ‘기부금 영수증’ 발행을 위해 1만명의 후원자 데이터를 체크하고 일일이 콜센터처럼 전화 응대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매일 눈이 빠지게 엑셀을 확인하고, 콜센터처럼 내가 한 잘못이 아니어도 후원자님께 죄송하다고 멘트를 뱉어내야 했다. 내가 생각하던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돕는 일도 있다면, 도움을 위해 백엔드의 일도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게 마땅한데,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일들만 봐왔으니 이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거다.


.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내가 후원금을 내도,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는데는 정말 한계가 있다고,  어려운 사람들을 매번 만나러 갈 수도 없는거라고. 나의 티끌 같은 노력이 그들에게 가닿기 전에,  차라리 돈을 많이 벌어서 재단을 하나 세우는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을 돕는 일은 돈을 벌어서 나중에 하겠다고 미뤄두고 다른 길을 택했다.


다른 길을 택한 지금은 영리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영리적인 마음이 아예 없어진건 아니다.

언젠가는 내가 브랜드를 만든다면 꼭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이자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맘 속에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타인을 향한 일이라 하더라도 ,결국 나에게 보람이든 성취감이든 무언가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남을 위한게 곧 나를 위한 것이 되버리고 만다.


우리는 서로 날을 세우고 벽을 세우며 경계한다. 아니 그냥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오직 나를 위해,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동료 정도의 사람들만 신경쓰는 요즘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 반경 너머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마음이 열려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남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걸수도 있다.


생각보다 내 안에 열려있는 마음을 확인할 방법은 간단하다.  이와 비슷한 최악의 상황,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 일생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는 상황이 나에게 온다면?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고 조금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아주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새롭게 하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티끌만큼의 노력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테니. 내가 얻는게 더 많을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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