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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Sep 18. 2020

당연한 것들

중요한 것만 남길 수 있는 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날 즈음이었나.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백상예술대상에서 슬생에 나온 '우주 어린이'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나와 부른 이적의 노래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당연한 것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이적, 당연한 것들


끝날 줄 알았는데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떠날 줄 몰랐다.

주말에도 집에 있지 않고 밖에 나가길 좋아하는 나는

코로나 때문에 타의적으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괜한 불안감

마스크가 떨어지지 않게 약국에 2주에 한 번은 들러사두거나 주변에서 기침하는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을 쓱 쳐다보며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등 코로나 시대의 나는 반사적으로 호흡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디 조금만 몸에 이상한 반응, 예를 들어 괜히 미열이 나는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하거나목이 칼칼하거나 근육통으로 어깨가 뻐근할 때면,


내 컨디션이나 업무량, 바르지 못한 자세를 먼저 떠올리는게 아니라 '증상+코로나'를 붙여 인터넷에 검색부터 한다.


불안하고 답답하기도한 현실이지만 무조건 나쁜 시간을 통과하는것이라고만 볼 순 없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껍데기는 가라

사람들과의 거리는 멀리하고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면서

정말 소중한게 무엇인지, 잊고 지냈던 것들 중

내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다시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저절로 주어진 샘이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될 물건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주변을 둘러싼 곁가지들을

 알맹이만 남기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자발적인 자가격리로 주말마다 내려가던 본가를 2주 연속 가지 않고 서울 자취집에 있었는데,

그 시간이 꽤 다르게 느껴진 어느 날이었다.


주말의 내 방 풍경이 조금 달라보였다. 혼자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며 그저 밀린 빨래나 머리카락을 치우기에 그치지 않고, 방치하던 창틀 식물이나, 책장, 책상 위를 쓸고 닦고 널부러진 사물들의 자리를 되찾아주었다.


내가 몸을 뉘이거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작은 내 방 한 켠을 너무 소홀히 했구나,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습관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묻어나는 중요하고 소중한 공간인데

외면하고 있었구나.'이왕이면 신경써서 정성들여 살면 좋겠다' 싶었다.



당신은 내게 중요한 사람

그 다음주에 있었던 결혼식 풍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50명 남짓 초대받은 자리의 결혼식은 처음이었는데, 친한 전 직장 동료 언니의 결혼식이었고,

소수의 하객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초대를 받았으니 뭐랄까 좀 더 옷차림과 화장을 신경 쓰게 되었고, 예식 하나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온 맘 다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많은 사람을 초대할 수 없던 상황인만큼 신부는 유튜브로 링크를 보내 결혼식을 생중계했다.

신부 대기실에서는 종종 댓글로 축하의 메시지를 읽거나 이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메시지를 손을 흔들며 전하기도 했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더랬다.


만약 코로나가 끝나지 않고 비슷한 시국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상상해봤다.

누굴 초대할지 정말 오랫 동안 고민할 것 같다. 결혼식에 꼭 와야할 사람,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

초대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얼굴보면서 인사를 나누고 싶은 사람 등.


사람 뿐만 아닐거다. 보여주기 위한게 아니라 좀 더 진실되고 기념할 수 있는,귀한 손님들만을 모셨으니 더 값지고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기 위해 조금 색다른 이벤트,하객들도 단순히 하객이 아니라 함께 즐기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겠다 싶었다.


초등학교 때 빼빼로데이 2주 전부터

300원, 500원, 천원짜리 빼빼로로 표를 나누고

이름을 써내려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


아마 코로나가 잠잠해지더라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무엇이든 넘쳐나고 연결된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진짜 나에게 중요한, 내가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소중한 감정들과 경험을 발라내고, 가려내는 일은 계속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우린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깨닫게 되었으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바이러스가 아닌 또다른 것들이 우릴 괴롭힐지라도 그 안에서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나를 돌보고 나를 지켜낼 가치를 계속해서 생각에서 놓지 않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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