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배우며 생각한 것
첼로를 배운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60일을 꽉 채워 첼로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 주 1회 레슨을 꼬박꼬박 나가고 있고 한 번 정도 더 연습을 하니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취미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첼로를 배우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뻔한 대답이지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원래는 내 몸뚱이보다 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게 꿈이었지만, 연습용 악기만 100만 원이 넘고 가르치는 곳도 적기 때문에 취미로 배우기 어려웠다. 이보다는 크기가 작고 현실적으로 자주 다룰 수 있는 악기이면서 저음부를 맡는 첼로가 직감적으로 끌렸다.
첼로를 내 앉은 키에 맞추는 방법부터 배웠다. 꼿꼿하게 허리를 바로 세운다. 첼로 바닥에 뾰족한 막대기가 있는데, 마치 옛날 TV 안테나를 뽑듯 쑥 빼서 땅에 고정시킨다. 첼로 몸통을 왼쪽 가슴에 비스듬히 댄다. 첫 느낌은 어색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첼로가 내 품에 사뿐히 안기는 듯한 포근함과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다.
활을 잡고 왼쪽, 오른쪽 쓱쓱 긁을 땐 '끽끽' 듣기 안 좋은 소리가 났다. 피아노를 어렸을 때 배웠으니 어느 정도 쉽게 따라 할 거라 생각했지만 첼로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선생님 말을 빌리자면 굉장히 발달이 덜 된, 불편한 악기란다. 피아노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 소리 내면 되지만, 첼로는 왼쪽 손가락으로 현을 누르고 오른쪽으로는 네 줄의 현을 위, 아래, 옆 등으로 오가며 그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손을 다르게 움직이다 보니 체력 소모도 상당했다. 행여나 틀릴까 봐 잔뜩 긴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힘을 주니 예쁜 소리가 안 났다.
레슨 때마다 좌절할 때도 있지만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0분 레슨이 끝나면 혼자 연습실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첼로와의 사투를 벌였다.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진도를 팍팍 나가게 되었고 선생님의 칭찬에 가끔 우쭐해졌다. 노력하는 내 모습이 좋았고, 나아지는 게 느껴지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무언가에 빠져서 깊게 몰입해 본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확실히 내가 첼로를 연주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군가를 이길 필요도 없고, 돋보여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첼로를 하는 자체로 뿌듯했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몸소 실감하니 확실히 내가 첼로 연주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제보다 소리가 조금 더 잘 나오고 악보대로 활을 그을 줄 알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현을 계속 누르니 손가락 끝은 맨질맨질해졌다. 그 끝을 만지작거리니 짜릿했다. 잘 안되던 음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마치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울 때, 10개의 동그라미로 포도송이를 그려놓고, 한 번 연습할 때마다 색연필로 알을 하나씩 채운 때처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안되던 구간이 잘 넘어갔을 때의 쾌감이란! 얼른 다음 레슨이 돌아와서 선생님께 들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그 자체로 만족했다. 첼로를 연주하면 전혀 쓰지 않던 손근육을 쓰고, 내가 낸 음에 귀 기울이니 청각에도 흥미로운 자극을 준다. 단단한 나무통의 묵직함을 온몸으로 받고, 코일 같은 현과 가지런한 말총의 합인 활이 만나는 그 미묘한 부드러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하루 반나절 이상 모니터만 바라보며 키보드를 치거나, 핸드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바라보며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시야를 비롯한 내 몸의 감각은 납작해질 수밖에 없고, 운동이나 다른 것들로 감각을 깨우지 않는 이상은 몹시 평면적인 감각에 가까우니 첼로와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입체적이고 좀 더 감각에 충실한 동물(?)이 되는 듯도 하다.
흔히 예술이라 부르는 분야를 통해 전혀 다른 감각을 쓰는 것은 연주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 제법 큰 활력을 준다. 매일 같은 장소로 출근해 비슷한 일을 하면서 무언가 진척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루틴화되어 몸에 익은 업무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순 있으나 지루해지기 쉽고, 재미를 느꼈던 것도 오래 하다 보면 그 재미가 덜해진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따라오고, 성취감이 반감되기도 한다.
그럴 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좋은 기분을 일터로까지 가져갈 수 있다. 생기가 돌고 '지루해'가 아니라 '어떻게 현 상황을 좋게 바꿀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된다. 분야는 달라도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 다른 곳에서의 나도 끌어올려준달까.
동시에 일종의 예술을 하면서 내 안에 숨어 있던 예술가적 기질이나 어떤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예술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의 에너지는 자유롭게 발산된다. 어떤 성과를 내는 게 아닌 그 시간에만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 그 자체를 느껴볼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꼭 연주해보고 싶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OST 첼로곡을 두 소절 정도 도전했다. 불완전하지만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혼자 찍어서 듣고 또 들었다. 이게 내가 낸 소리라니! 한껏 집중해 눈썹을 찡그려 미간에 주름이 졌다. 입을 앙다문 영상 속 내 얼굴이 괜히 기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