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턱에 다다르니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던 벚나무는 잎을 열심히 키우다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 빨갛게 익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운 검보랏빛 버찌를 대롱대롱 달고 있다. 어째서인지 '주렁주렁'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크기가 작고 드문드문 달려 있어 알알이 이슬처럼 맺혔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 아파트 단지에 길바닥은 온통 터져버린 버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앞코에 스웨이드 처리가 되어있는 하얀 운동화를 자주 신는 터라 행여나 버찌 물이 튈까 봐 까치발로 걸었다. 도저히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버찌가 가득한 길을 만나면 단지 안에서는 차도로 나와 살살 걷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버찌 살인마에 가까웠다. 오히려 마구 밟아댔다. 연분홍색 에나멜 샌들을 주로 신고 다녔는데, 발가락이 있는 신발 바닥면으로 통통한 버찌를 지르밟으면 아주 미세한 소리와 함께 터졌다. 마치 횡단보도에서 흰색만 밟으며 건너는 것처럼, 일부러 쭈글쭈글하지 않고 완벽히 통통해 탐스러운 버찌만 골라서 밟아 뛰어다녔다. 간혹 운이 나쁘면 발끝으로 버찌를 눌러버려 팍! 하고 튀어 발가락에 보랏빛 물이 튀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신발 밑을 보면 가관이었다. 홈이 패인 바닥에는 버찌 안에 있던 씨가 콕콕 박혀있다거나, 짓이겨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껍질이 흙과 엉겨 붙어있었다.
나에게 장난감이 되어주던 버찌가 출근길엔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버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자연에서는 제 쓰임을 다하는 존재다. 바닥에는 단순히 버찌가 터진 흔적뿐만 아니라 블루베리 요거트처럼 생긴 새똥을 쉽게 볼 수 있다. 새들에게 버찌는 훌륭한 식사가 된다. 다 먹고 똥으로 배출된 씨가 흙에 떨어졌는데, 발아 조건까지 맞는다면? 새로운 벚나무 한 그루로 자랄 수 있다.
버찌가 익기 전에는 연두색이지만 무르익으면 새빨간 색이 된다. 나뭇잎과 비슷한 색을 띠어 "아직 아니야, 나 먹지 마~"라고 말했다면, 초록 나뭇잎 사이에서 가장 튀는 색으로 선명히 열매를 드러낸다면 새들에게 "이제 맛있을 때야! 물어 가~"라고 신호를 보낸 거다. 모든 식물의 색과 형태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배웠다. 붉은색인 데에도 이유가 있다. 빨간색, 자주색 계열은 초록색과 보색 관계다. 다시 말해 가장 대비되는 색으로 물들어 새의 눈에 잘 띄게 진화한 셈이다.
뿌리를 단단히 땅에 내린 나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 나비와 벌 같은 매개 곤충이, 씨를 퍼뜨릴 수 있게 바람이 도와주기도 한다. 나무마다 그 방법이 다르지만 이렇게 열매 색이 진하다는 건 새의 도움을 받는다는 얘기다. 특히나 가장 멀리 새로운 터전에서 새 나무가 자랄 수 있게 옮겨주는 존재가 새다. 배설하거나 열매(씨)를 물고 가다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내가 밟은 버찌는 벚나무 열매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새에게는 훌륭한 영양분이고, 나무는 스스로 먹이가 되길 자처해 열매로 자손을 번식시키는 방법을 지혜롭게 알고 있다. 자신의 쓰임이 곧 생존하는 방식이라니.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하나하나의 관계를 살펴보면 자연은 놀라우리 만치 똑똑하고 정교하다. 우리 주변에 난 풀 한 포기도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