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당구공이 아니라 사과와 오렌지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결코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간단한 수학적 사실을 모르는 데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당구공 같은 존재가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한 사과와 오렌지 같은 관계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 그러나 단단한 근거가 주어진다면 훨씬 기억에 잘 남고 실제 근거가 있단 생각에 더더욱 조언에 힘이 실릴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위로 대신, 왜 당신이 하는 비교가 수학적으로 완벽히 틀린 행위인지 그 서늘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이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인간이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십만 년 동안 집단 내 서열을 확인하며 생존하도록 설계된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뒤처지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했던 원시 시대의 공포가 현대인의 비교 심리로 전이된 것이다.
그러니 배고픈 사람에게 배고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은 무용하다. 본능은 의지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이제부터 비교라는 행위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증명하는 두 가지 수학적 장치를 살펴보자.
통계학에는 '등분산성(Homosced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두 집단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데이터들이 퍼져 있는 성질이나 체급이 같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복싱 경기에서 플라이급과 헤비급을 같은 링 위에 올리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사과에게 '왜 오렌지처럼 노랗지 않냐', 오렌지에게 '왜 사과처럼 빨갛지 않냐'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 가정환경, 성장 배경이라는 완전히 다른 '체급'을 가진 타인과 나를 억지로 같은 링 위에 세운다. 체급이 다른 데이터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행위다. 우리는 원시적 본능에 눈이 멀어 이 명백한 통계적 오류를 매일 범하고 있다.
복잡계 과학의 카오스 이론에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 흔히 말하는 나비효과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아주 미세한 초기 조건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인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태어난 시점의 환경, 어린 시절 무심코 들었던 말 한마디, 우연히 겪은 작은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로켓의 발사 각도가 단 1도만 어긋나도 도착지는 수천 킬로미터 달라지듯, 인간의 삶 또한 다른 사람과 애초에 같은 궤적을 그릴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해 보면 지금 내 옆의 동료나 친구는 단지 서로 매우 다른 길들이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교차점'에 가깝다. 아무리 서로 비슷해 보이더라도 이는 매우 긴 길의 작은 교차점에 불과하다.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인생이 천차만별인 걸 생각해 보면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보자. 사실 우리는 사과나 오렌지조차 아니다. 스스로를 사과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누가 더 크고 붉은 사과인가'를 측정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렇다. 우리는 모두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의 과일이다. 새로운 종이기에 비교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의 성공은 그저 그 종의 수확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종은 여름의 뙤약볕에 익어가지만, 어떤 종은 겨울의 서리를 맞아야 비로소 극한의 달콤함을 완성한다. 당신은 후자일지도 모른다.
SNS를 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며,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이 말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 차가운 수학적 사실이다.
뻔한 위로에 기대지 마라. 대신 이 논리적인 진실을 무기 삼아 열등감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당신은 비교를 거부할 당당한 수학적 권리를 가졌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유일한 종으로서, 오직 당신만이 낼 수 있는 그 독특한 달콤함을 세상에 증명하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