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정해놨다면 과정은 즐기시면 됩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마. 과정을 즐겨야지."
살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전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참 듣기 좋은 소리 하네.'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땐 조약돌 하나만큼의 무게도 되지 않는 공허한 위로처럼 느껴졌으니까.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과정을 즐기라는 건지, 그 구체적인 논리를 누구도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책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알고리즘'의 어떤 속성들이 내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어라, 이거 인생에 그대로 대입해 봐도 되겠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발견한 '과학적인 위로'를 나눠보려 한다. 어쩌면 막연한 희망보다 차가운 논리가 당신을 더 뜨겁게 안아줄지도 모르니까.
내가 주목한 건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말한 알고리즘의 세 가지 특성이다. 재료중립성, 지성 불필요성, 그리고 결과 보장성. 용어는 딱딱하지만, 이걸 삶의 언어로 번역하면 꽤 근사한 위로가 된다.
첫째, '재료중립성(substrate neutrality)'. 재료가 무엇이든 절차적 논리만 맞으면 결과는 나온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타고난 배경이나 인맥 같은 '재료'가 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난 흙수저라 안 돼", "난 머리가 나빠서 안 돼." 하지만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그저 '중립적인 입력값'일뿐이다. 중요한 건 내 재료의 질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가동하고 있는 시스템(절차)이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둘째, '지성 불필요성(underlying mindlessness)'. 각 단계는 의미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단순하다는 것. 나는 여기서 무릎을 쳤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치는 작은 실패나 성공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보면 그건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단순 연산일 뿐이다. 지금 겪는 괴로움이 내 인생의 결말이 아니라, 최종 출력값을 향해 가는 수많은 단계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결과 보장성(guaranteed result)'. 절차가 오류 없이 수행된다면, 결과는 반드시 나온다. 물론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완벽한 알고리즘을 짤 순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디버깅하며 방식을 고쳐나가는 수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제대로 된 방식을 찾아 멈추지 않고 가동한다면, 성공은 물리적으로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그 논리적인 확신을.
통계학에는 'MCMC(Marcov Chain Monte Carlo)'라는 알고리즘이 있다. 정답을 모를 때 무작위로 이곳저곳 샘플을 채취하며 지도를 그려나가는 방식인데,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건 초기의 '번인(Burn-in) 구간'이다.
이 알고리즘은 무작위 값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을 헤맨다. 이때 수집된 데이터는 결괏값에 포함하지 않고 가차 없이 버린다. 이걸 '번인 구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버려지는 과정이 없으면 알고리즘은 절대 정답 근처에 도달할 수 없다.
나도 20대 때 참 많이 헤맸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다 '뻘짓'은 아닐까 불안해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통계학의 눈으로 보니 그 시간은 인생을 망친 게 아니었다. 나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필연적인 '번인 구간'이었던 것이다.
물리학의 '에르고딕성(Ergodicity)'이라는 개념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쉽게 말해 '충분히 오랜 시간 시도하면, 결국 평균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원리다. 나는 이 개념을 보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온다.'는 사필귀정의 의미, 예전엔 이게 그저 도덕적인 믿음인 줄 알았는데, 물리학적으로 보니 '통계적 수렴'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운이 없어 보이고 뒤처지는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의 지평'을 길게 늘리면 결국 우리 인생은 우리가 설계한 '성공'이라는 평균값으로 수렴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판을 떠나지 않고 버티는 지속성, 속된 말로 '존버' 정신이다.
개그맨 김국진 씨가 대학생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다. 안전바가 확인되지 않으면 출발조차 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떨어지는 순간을 겁내지 말고 즐겨라."
내가 공부한 언어로 바꾸자면, 그 '안전바'가 바로 우리가 설계한 시스템이고 알고리즘이다. 우리가 올바른 궤도 위에만 있다면, 삶의 하강 곡선은 추락이 아니라 다음 상승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일 뿐이다.
인생을 알고리즘이나 물리학에 비유하는 게 너무 건조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다 잘될 거야"라는 뜨뜻미지근한 희망 고문보다, "네가 멈추지 않는다면 결과는 필연적이다"라는 차가운 과학적 논리에서 더 큰 든든함을 느꼈다.
만약 당신이 '성공'이라는 최종 출력값을 인생의 목표로 확실히 입력해 두었다면, 과정에서 펼쳐지는 중간 결괏값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최종 결과는 이미 당신이 설계한 알고리즘 안에 예약되어 있을 테니까.
결과를 정해놨다면, 과정은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