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만 자본일까?
나이 서른 둘. 직업은 편의점 알바생.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사실상 백수다. 보통 이 나이에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은 묻는다. 불안하지 않냐고, 미래가 두렵지 않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불안하지 않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서 인생에 문제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돈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돈은 자본의 극히 일부이자, 가장 흔한 자본이다. 내가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대신 방구석에서 책을 파고드는 건 나름의 전략적 계산의 결과다. 그 이유를 ‘자본의 계급론’으로 설명해보려 한다.
내가 정의하는 자본은 크게 네 가지다. 돈, 사람, 지식, 그리고 시간.
이 네 가지 요소는 평등하지 않다. 명확한 위계가 존재한다. 내 기준에서 가장 하위 계급은 ‘돈’이다. 그 다음이 ‘사람’, 그 위가 ‘지식’이며, 최상위 포식자는 ‘시간’이다.
이 계급을 나눈 기준은 단순하다.
첫째, 남에게 빌릴 수 있는가?
둘째, 쓰면 사라지는가?
셋째, 그것으로 상위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가?
가장 밑바닥인 ‘돈’부터 보자. 돈은 편리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혈액과도 같다. 하지만 돈은 ‘가장 빌리기 쉬운’ 자본이다. 은행에 가면 남의 돈을 대출받아 내 것처럼 쓸 수 있다. 그만큼 소유권의 이전이 쉽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 주머니의 돈도 언제든 쉽게 '남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돈은 쓰면 사라진다. 게다가 돈으로 사람의 환심을 살 순 있어도 진심을 살 순 없고, 돈을 쳐바른다고 멍청한 머리가 갑자기 똑똑해지지도 않는다. 즉, 돈으로는 상위 자본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꼴찌다.
3위는 ‘사람’이다. 인맥은 돈보다 빌리기 어렵다. “내가 누구를 좀 아는데”라고 떠들 순 있겠지만, 그 사람의 영향력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돈보다 뺏어가기 어렵다. 또한 사람을 많이 모으면 돈을 벌기도 쉬워진다. 조직을 만들어서 사업을 하거나 사람을 모아서 이들에게 광고만 보여줘도 돈이 벌리니까. 그러나 사람이라는 자본도 한계가 명확하다.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감가상각’이 일어나기 때문. 즉, 관계는 신경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게다가 무엇보다,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내 지능이 높아지거나 수명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3위다.
2등은 ‘지식’이다. 여기서부턴 차원이 달라진다. 지식은 대출이 불가능하다. 워런 버핏의 지혜를 돈 주고 살 수 있는가? 책을 산다고 그 저자의 통찰이 바로 내 것이 되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내가 ‘시간’을 갈아 넣어야만 내 것이 된다.
그렇게 체화된 지식과 지혜는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 돈과 인간관계는 있다가도 사라지지만, 내 머릿속의 지식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영원히 내 것이다. 게다가 지식의 가장 큰 장점은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과 시간은 쓰면 줄어들지만, 지식은 쓰면 쓸수록 더 예리해진다. 오히려 지식에 지식이 붙으면서 복리로 늘어난다. 워런 버핏이나 찰리 멍거 같은 대가들이 독서광인 이유는 이 복리의 마법을 알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지식이 쌓이면 굳이 목청 높여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 모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즉, 상위 자본이 하위 자본을 끌어당기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대망의 1위는 ‘시간’이다. 시간은 앞서 말한 모든 자본의 원재료다. 대출도, 저축도, 생산도 불가능하고 오직 소모만 가능한 가장 비싼 자원이다. 돈을 벌든, 인맥을 쌓든, 공부를 하든 결국 시간을 태워야만 얻을 수 있다. 진짜 똑똑한 부자들은 돈을 아끼려고 시간을 쓰는 게 아니라, 돈을 써서 시간을 확보한다. 그게 남는 장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우선순위에 대한 확신은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님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서 비롯되었다. 그 분은 인생을 살며 사람들이 모으는 것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돈을 모으는 사람, 사람을 모으는 사람, 그리고 지식을 모으는 사람. 대다수는 돈이나 인맥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지식을 제대로 모으는 사람은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서 나는 확신을 얻었다. 돈을 쫓을 게 아니라 지식부터 쌓아야 한다고. 나만의 독특한 ‘지적 자본’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것이 사람을 부르고 결국 돈도 부를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당장 취업해서 푼돈을 버는 것보다, 강력한 지적 자본을 구축하고 사회에 나가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을 끝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읽어 치운 300권의 책,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그 증거다. 나는 단순히 노는 게 아니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을, 가장 안전한 금고에 쌓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가? 만약 ‘돈’만이 1순위라면, 당신은 언제든 남에게 뺏길 수 있고 쓰면 사라지는 것에 인생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런 기반은 허약하다. 그러나 지식과 시간 확보에 먼저 투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화폐로 친다면 세계 어느 나라 돈으로든 바꿀 수 있는 달러나 금을 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돈은 잘 구축된 시스템의 ‘결과값’이지 ‘목표값’이 아니다.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고 정진한다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