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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우 Dec 21. 2017

영화 <로보캅> 리뷰

예수 모티브로 해석해 본 영화 로보캅

※ 이 글은 watcha 리뷰를 참고했습니다.

※ 이 글은 영화 <Robocop>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Robocop, 미국, 1987, 폴 버호벤, 피터 웰러


 군수용품 개발 기업 OCP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된 주인공 머피(피터 웰러). 그는 개조되면서 기억이 지워져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product로서 작동한다. 로봇이 인간의 도구로 탄생하는 지금의 모습을 잘 예측한 셈이다.


 머피는 두 번의 진화를 겪는다. 영화 초반 악당들에게 총으로 난사당해 인간에서 사이보그(인간→사이보그)가 되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사이보그가 된 후 경찰들에게 다시 한번 난사당해 또 다른 존재(사이보그→무엇)가 되는 것이 두 번째다. 두 번째 진화는 분명 인간으로의 회귀는 아니며, 시스템 프로토콜에서 생체프로토콜로의 복귀도 아니며, 머피라는 한 명의 사람이었던 기억을 가진, 로봇 그 이상의 존재로 나아가는 정신적 자각에 의한 진화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은 인간의 기억, 즉 오로지 인간만 가지는 생체 호흡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인간도 아니고 사이보그도 아닌 제3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제 3자적 정의는 제강소에서 본인의 몸을 수리하는 장면(부활을 상징)에서 그가 내뱉은 대사 “나는 그들(머피의 유가족)을 느낄 수 있어. 그러나 기억할 수는 없어.”를 통해 자전적으로 이루어진다.


 진화를 겪은 주인공의 심정은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이보그 이후의 머피는 기계적 대사만 내뱉을 뿐이다. 우리는 그의 복잡한 심정(사이보그가 심정을 가지는가? 그것을 “심정”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은가? 잘 모르겠다.)을 그가 나아가는 행보를 통해서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정체성은 불안하다. "인간"이라는 그의 첫 번째 정체성은 죽음으로 인해 부정된다. 그다음, "로봇"이라는 시스템적 존재로서의 두 번째 정체성은 그를 제거하려는 창조주 OCP의 총질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머피는 자신을 제 3자적 존재로서 완성시키로 결심한다. 더 이상 인간으로서도 그리고 로봇으로서도 살아갈 수 없는 그는 악당 무리를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딕 존스(OCP의 수장)를 죽이기 위해 OCP 본사로 향한다.


 만약 그가 본사로 향하기 전 자신을 돕다 부상당한 동료 루이스 경사의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면, 만약 그가, 기억나진 않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유가족을 찾기 위해 차를 타고 멀리 떠났다면, 그는 인간으로 성립하고 싶은 사이보그에 그쳤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정신을 가졌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런 사이보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 폴 버호벤은 머피의 발걸음을 OCP 본사로 돌려놓으면서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사이보그 미래에 도래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에는 예수 모티브가 쓰였음에 확신한다. 그가 자신의 몸을 수리한 후(부활을 상징), 악당 클라렌스를 죽이기 위해 물 위를 걸어가는 장면은 마치 그가 예수인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의미적으로도, 감독은 그가 삶의 궁극적 목표(예수=인간 속죄, 머피=정체성 완성)만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 시대의 예수적 존재임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감독의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OCP 회장의 도움으로 딕 존스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머피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자네 이름이 뭔가?”라고 묻는 회장의 질문에 쿨하게 “Murphy.”라고 답하는 그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질문밖에 던질 수 없었던 사이보그로서의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그가 인간인가 사이보그인가를 선택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감독의 상상력에 의해 이미 논지를 벗어났다.

 그리고, 제 3자적 존재에 도달한 주인공의 정체성은 유유히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영화 전반에 묘사되었던 디트로이트의 경관들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적 파시즘"이 겹쳐지면서 마침내 100% 완성된다. 그것은, 조금 웅장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이면에 살고 있는 생명권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블루 칼라(경찰복의 깃은 놀랍게도 파란색이다!)들을 구원하러 온 예수적 존재의 정체성에 가까울 것이다(나는 어깨가 매우 넓게 디자인된 로보캅의 모습이 영 불편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짊어진 망가진 사회의 모습을 보며 과연 어깨가 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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