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원단시장, 어설픈 바느질, 초코바나나산도 파우치
꼼지락대는 게 좋다. 어릴 적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클레이로 케이크와 빵을 만들었다. 미니어처에 푹 빠져 모든 용돈을 점토 사는 데에 탕진했다. 폭신폭신한 질감의 천X점토는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해 자주 사용했다. 플라스틱 점토는 굳으면 단단하고 반투명해지는 성질을 갖고 있었는데, 웹사이트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큰 마음먹고 엄마에게 대리결제를 요청한 기억이 있다. 지퍼백 밀봉도 철저히 하고, 찔끔(?)씩 아껴 썼던 것 같다.
언젠가 동대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대문에 액세서리 부자재를 파는 가게가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비즈 팔찌, 키링이 유행할 때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웠다. 아마 귀찮음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일 년 이년, 시간이 흘렀고.
올해는 패치워크가 대세인 것 같다. 내가 느끼기로는? 올봄에 중고마켓에서 핸드메이드 가방을 얻은 뒤, 자수와 패치워크에 흥미가 생겼다. 중고마켓도 모자라서 유튜브에 버려진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영상에 판매하시냐고 댓글도 달았다. (원래 유튜브 댓글을 절대 달지 않는 편인데, 가방이 정말 갖고 싶었다.)
초여름에 들어서자 의류 쇼핑몰에서는 패치워크 로고나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SNS 알고리즘 덕분에 한동안은 똑같은 티셔츠를 계-속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서핑하다 도착한 곳은 취미 계정들이었다. 자신이 손수 제작한 것들을 아카이빙하는 공간, 그러니까 작업실이다. 자수나 도자기, 인형 등 종류도 다양했다. 다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살고 있었다니!
결국 충동적으로 동대문 탐방 계획을 세웠다. 뭐라도 하나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천으로 된 작은 파우치를 하나 만들고 싶었고,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찬찬히 생각했다.
겉감용 그리고 안감용 원단이 필요하다. 실과 바늘은 집에 엄마가 쓰던 것들이 많고, 미싱은 중고로 찾아봤는데 몇십만 원 이상 넘어가 포기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 안 되니까! 중학생 때 마지막으로 배운, 어설픈 손바느질로 우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어서, 파우치에 달 지퍼도 필요했고, 지퍼 대신 단추를 다는 것도 좋아 보였다.
도매가 아닌 소매 판매를 하는 업장을 찾아봤다. 특히 학생/초보 환영 문구 플랜카드가 붙어있다는 가게들은 별 표시를 세 개나 남겼다. A동, B동, C동... N동은 또 뭐야? (동대문 시장 신관을 N동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동대문 탐방 코스를 완성했다.
다행히 그날 아침은 설렘이 귀찮음을 이겼다. 편한 옷과 모양이 잡히지 않는 나일론 가방을 챙겨나갔다. 원단을 얼마나 살지 몰라서, 천을 쑤셔 넣어도 되는 그런 가방을 챙겼다. 이수역에서 4호선을 타고 쭈욱 달려 동대문 시장에 도착했다.
동대문 종합시장의 첫인상은 ‘많다’이다.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빽빽이 줄 지어있는 가게들과 비좁은 통로, 그 사이서 크고 작은 봉투를 짊어지거나 끌고 분주히 다니는 사람들. 이게 동대문, 과연 패션 메카의 거리구나.
그중에서도 ‘사람’이 인상 깊었다. 원단 가게 사장님과 쇼핑몰 사장님은 “내가 사장님 스타일을 아니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건데~”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또 쇼핑몰 사장님이나 배달 기사님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나 같은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사장님과 손님의 나이대가 다양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청년 여럿이 1층 단추가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5층에는 내 아버지-할아버지 뻘 사장님이 원단을 팔고 계셨다. 나이라는 숫자가 무색해지는 공간이었다.
미리 알아본 가게에 찾아가 이리저리 자투리 원단을 찾아보고 있으면, 사장님이 다가와 말을 거셨다. 어떤 거 찾으세요? 뭐 만드시려고요? 인형? 이거 연습하기 좋은 천인데~ 나도 덩달아 신나서 이것저것 여쭈어보았다. 작은 파우치 하나 만드려는데요, 어느 천 써야 할까요? 보통 어떤 걸 많이 사가요? 이것도 한 마로 판매하시나요? 조금 더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
천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다. 재질이나 질감의 차이도 잘 모르고, 두께도 모르고, 뭐가 어디에 쓰이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알아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집었다. 색깔이 마음에 쏙 들어서, 스트라이프 패턴이 왠지 귀여워 보여서, 데님은 원래 좋아하고... 내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아 그리고, 자투리 원단 볼 때는 양손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좋다. 가져온 가방은 바닥에 잠시 내려두고, 아주 열정적으로 천을 찾아야 한다. (이건 사장님께서 주신 팁이다!ㅋㅋ)
상가 안 푸드코트에서 가볍게 배를 채우고, 부자재를 사러 걸음을 옮겼다. 지도 어플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이다. 가는 골목길에는 오래된 헌책방이 듬성듬성 보였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구경 가고 싶다.
마침내 부자재 좌판대를 발견했다. 노란 고무줄에 꽁꽁 묶인 지퍼들을 뒤적이다 사장님께 여쭈었다. 사장님! 혹시 지퍼 10개 색깔 골라서 가져가도 돼요? 그러자 사장님은 아주 인자한 말투로 열댓 개 가져가라고 답해주셨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사장님께 건네고는 다시 쪼르르 구석에 앉아 지퍼를 뒤적였다. 흰색은 여기저기 잘 어울리니 다섯 개, 무난 검은색 하나, 필요한 베이지색과 갈색 지퍼도 하나, 나중에 필요할 것 같은 분홍색과 빨간색 지퍼도 한 개씩 챙겼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기다려졌다. 얼른 버스 자리에 앉아 산 것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자투리 원단은 총 8가지를 구매했다. 과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쓰임을 생각하면서.
[초코바나나산도 파우치]
1. 연노랑색 천. 바나나용
2. 베이지-흰색 스트라이프 천. 초코크림용
3. 흰색 천. 약간 속치마/속바지 질감. 안감용
[딸기생크림케이크 파우치]
4. 빨간색 잔땡땡이 천. 두꺼운 현수막 질감. 이건 잘못 샀으나 어떻게든 회생시키기!
5. 빨간색 무지 천. 포인트 주기 좋아 보임.
6. 흰색 패턴 천. 보드랍다!
[데님체크 키치 파우치]
7. 진청색 데님. 희미하게 스트라이프 무늬 있음. 쿨한 느낌!
8. 검정-흰색 체크무늬 천. 데님에 패치워크로 올리면 귀여울 것 같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된다. 가장 먼저 연노랑색 천을 집어 들고, 가위로 쓱쓱 오려 동그란 형태로 잘라냈다. 가운데에 갈색 실로 자수를 박아 단면이 잘린 바나나 세 조각을 완성했다. ‘산도’라 하면 폭신한 식빵이 빠질 수 없지! 이번엔 천을 네모나게 자른 뒤 스트라이프 무늬 원단 위에 덧대었다. 바늘을 위로 꽂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아래에 꽂고,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로 꽂기를 반복했다. 톡톡 끊겨보이는 실이 내 눈에는 귀엽다. 그렇게 홈질인지 시침질인지 알 수 없는 바느질을 계속 이어갔다.
겉감과 안감을 연결할 때는 보다 단단하게 박음질을 했다. 앞으로 한 칸을 가면, 또 한 칸을 가는 것이 아닌 뒤로 반 칸 돌아오는 형식이었다. 전에 만들었던 실구멍에 바늘을 꿰고 다시 한 칸을 갔다.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막힘없이 전진하면 빠르게 나아갈 수 있지만, 뒤를 돌아보며 가면 천천히 단단하게 갈 수 있다. 어쩌면 바느질은 인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뒷면 디자인은 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원래는 앞면과 똑같이 위아래로 식빵을 붙여줄 계획이었는데, 언니는 그냥 스트라이프 천 하나로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 언니 말에 설득당했고, 바나나에 새긴 미니 별 자수만 그대로 가져와 뒷면을 마무리했다. 꽤 마음에 든다.
앞면과 뒷면을 지퍼에 연결했다. 처음에 뒤집어서 꿴 줄 알고 매듭을 다 풀었는데, 똑바로 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괜한 불신과 의심 때문에 헛수고했다. 지퍼 끝에 라벨도 붙였으나, 마지막에 옆면 바느질을 할 때 거리 계산을 잘못해 라벨이 안감 속으로 숨어버렸다. 꺼낼 수도 없고 그저 나만 아는 옥에 티가 되었다. 이게 핸드메이드의 묘미겠지!
모든 면을 꿰고 난 뒤, 안감을 뒤집어 겉감을 밖으로 꺼냈다. 어라 내가 생각한 모양은 이게 아닌데! 앞면이 온전히 보여야 하는데, 파우치는 너무 납작하고 눈에 띄는 건 지퍼뿐이었다. 모서리를 네모나게 잘라내고, 사선으로 실을 박아 벽을 세웠다.
재단을 눈대중으로 하니 잘린 천의 길이가 제각각이라 애를 먹었다. 처음에는 파우치가 너무 클까 봐 걱정했는데 만들다 보니 작아지고 작아져서 뭘 넣고 다녀야 할지 고민이다. 원단 자체도 힘이 없어서 흐물거린다. 다음에는 안감에 접착솜 같은 걸 붙여야겠다. 부족한 점이 왕창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남아있는 천도 왕창이고, 시간도 왕창이다.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3일 만에 완성했다. 시간 날 때 틈틈이 작업해서 그런지 예상보다 빠르게 만들었다. 한번 손에 잡히면 4-5시간 붙잡은 것 같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꽤 오랜만이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막연하게 꿈꾸던 ‘동대문에서 재료 사서 뭐라도 만들어보기’를 드디어 실천하다니! 빨리 다음 파우치를 만들고 싶다. 딸기가 콕콕 올라간 생크림케이크 디자인 파우치!
[ 더 나은 바느질을 위한 깨달음 ]
1. 원단 자를 땐 꼭 자로 수치를 재볼 것. 가위는 원단용 가위를 사용할 것.
2. 실밥 정리를 할 것.
3. 크기는 넉넉하게 시작할 것. 박음질하다 보면 작아진다.
4. 박음질 종류를 알아볼 것. 목적에 맞는 박음질을 할 것.
5. 공그르기 기법 연습하기.
6. 낮이어도 방에 불은 켜고 작업하자.
7. 접착솜 붙이기!
[ 바느질하며 느낀 점. 마음에 들었던 것 ]
1.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다.
2. 잘 알고 잘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3. 천천히 가는 길이 단단하고 오래가는 길이다.
4. 실을 잘못 꿰었을 땐 매듭을 풀고 새로 지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