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는 개츠비가 살지 않는다

타이베이 여행에서 만난 것들

by 베리티

젠체하지 않는 도시.

타이베이의 첫인상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첫인상은 공항에서 나와 마주치는 풍경으로 결정된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몇 시간 비행을 마친 후, 다른 세상에 도착했을 때의 흥분과 설렘이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과 뒤섞여서 그 도시의 인상으로 남는다.

큼지막한 캐리어를 양손에 하나씩 끌며 하이힐을 신고도 저벅저벅 앞장서 걷는 그녀, 소피아는 학생 시절 대만이 좋아서 바로 이곳에 와서 춤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다가 더 멀리 세비아까지 날아갔고, 지금은 이렇게 종종 대만과 스페인을 오가며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 이번에도 타이베이 한 대학에서 열리는 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일정이었고, 우리는 촬영을 위해 동행했다.

택시 기사가 내려서 다가오기도 전에 트렁크에 짐을 번쩍 들어 싣고 있는 그녀. 눈 깜빡할 사이 그렇게 우리는 작고 귀여운 노란 택시에 타고 있었다. 머리끝은 거의 천정에 닿을 듯했고 꽤 붙어 앉았는데도 공간은 더 없었다. 운전사가 전단지를 하나 넘겨주면서 쉴 새 없이 떠든다. 근교 택시 투어 안내였는데, 중국어가 통하는 그녀에게 대화는 맡겨두기로 하고 나는 내내 창밖으로 타이베이의 표정을 관찰했다.


"겉으로는 이래도 여기 사람들 알부자들이 많아요!"

창가에 바짝 붙어있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오래되어 옛 사진을 연상시키는 건물들. 그 안에 빼곡히 정렬된 창가 사이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숨을 쉰다. 같아 보여도 조금씩 다른 모양의 창살들, 고개를 내민 화분들, 또 한쪽의 에어컨 실외기들. 재개발 열풍으로 허물고 다시 짓기가 일상이 된 한국과 좀 다른 풍경이다. 헌 건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만 여행을 그리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 편리함과 새로움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낡고 오래된 것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타이베이가 약간 톤다운 된 아날로그 버전의 도시처럼 다가왔다.

알고 보니 낡은 건물을 그대로 두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진이 많은 곳이라, 새로 짓기보다는 지어진 대로 잘 유지, 보수하면서 사는 것이 대만 사람들에게는 더 효율적인 것이다. 서울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지는 않아도 그 도시만의 리듬을 타고 있다. 그녀는 그런 분위기를 힐링으로 여겼다. 서울의 속도감에 지쳤을 때 여기 오면 쉼을 느낀다고 했다. 아직도 현금 거래를 하는 가게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밤늦도록 술을 즐기는 대신 퇴근시간이면 집으로 향한다.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처럼 튀는 패션의 젊은이들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장개석이 대만까지 도착하던 시절 따라온 중국 본토 출신 부유층들도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허세나 치장이 덜한 것이 습관화되었고 그런 생활 패턴들이 도시의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도 같다.


'그러니까, 타이베이에는 개츠비가 살지 않는 거군.'

좀 엉뚱하게도 핏츠제랄드 소설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렸다. 성 같은 저택을 사서 밤낮으로 파티를 즐기며 현란한 불빛 아래 술을 들이붓던 그 개츠비말이다. 개츠비의 경우 사치는 허세라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데이지를 향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타이베이에는 개츠비 같은 호화로운 갑부는 어울리지 않을 성싶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 역시 집값이 많이 비싸서 청년층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야망이 있는 젊은이들은 더 큰 나라를 가고 싶어 한다. 인구가 작은 나라이니 더 큰 욕망을 쫓아 멀리 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도로 시스템이었다. 어느 중학교 앞을 지나다가 건널목을 마주쳤는데, 다섯 걸음이면 끝나는 거리를 70초의 파란 신호등 카운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신호등 속 파란 사람이었는데, 계속 걸어가는 동작을 한다. 이런 작은 디자인들이 활기를 주는 것 같다. 눈에 띄는 건, 도로의 스쿠터 행렬이었다. 큰 대로변의 사거리 같은 곳에서 앞 대열은 늘 스쿠터 무리들의 차지였다. 그렇게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차들 사이 여기저기 오토바이가 끼어있기보다 차들 앞쪽으로 자연스레 정렬하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더운 나라이니만큼 스쿠터가 대중적이었는데, 한국에서 많이 눈에 띄는 혼다나 베스파 같은 브랜드들도 거의 잘 안 보이고 대만 자체 제작한 것들이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대만 남부에는 아직 1% 남짓 비율로 원주민이 살고 있다. 정부의 지원 아래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타이베이 같은 도심에서는 흔히 원주민들을 볼 수 없지만(도시 생활은 그들에게 가혹한 것일 테니), 댄스페스티벌인 만큼 그들의 민속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남부는 북부인 타이베이와 전혀 다른 시골 살이 위주의 생활이라 더 여유로운 분위기라고 하는데, 원주민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런 토속적인 관습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 특유의 원색적인 복장으로 선보이는 원주민의 동작에는 뭔가 다른 부분이 있었다. 따로 원주민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자연친화적인 분위기, 좀 더 단련된 체격이나 도시의 때가 덜 묻은 눈빛 같은 것들 말이다. 원주민들의 역동적인 민속춤, 또 현대무용이 가미된 퓨전댄스들, 요란한 벨리댄스들이 지나갔고 소피아는 스모키 화장과 긴 머리에 블랙 드레스를 휘날리며 플라멩코를 선보였다. 언뜻 마녀 같은 느낌이었는데 강렬한 동작으로 박수를 받았다. 마무리는 중국 본토 스타일의 전통 무용이었는데, 한국의 살풀이춤과도 비슷한 동작으로 경극에서 보는 화장을 한 댄서들이 장식했다.


땀과 열정이 가득한 무대가 끝나고 늦은 시각 우리는 댄서들의 뒤풀이에 초대되었다. 작은 바에는 댄서들의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내 옆자리에는 이라크 종군기자 출신의 연주자도 있었다. 언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한국, 대만의 비슷한 말들로 주제가 흘러갔다. 한자를 바탕으로 한 언어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도 꽤 많다는 얘기였다. '감사'라는 말도 비슷한 발음이었고, '만족'도 그렇다. 그 종군기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어도 그래요, '만족'은 '만조구!' 그의 아내는 일본인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바깥으로 나오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모두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고 우리는 호텔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 후 하루를 자유시간으로 보낸 다음, 오후 늦게 우리는 소피아를 만나 카페에서 가볍게 브런치를 즐겼다. 소피아는 지난밤 다른 댄스 팀을 만났는데 위스키를 잔뜩 마셨다고 했다. 위스키요? 다시 물었다.

지난밤 만난 댄서 중 한 명에게 미국인 지인이 있는데, 그의 집 안에 위스키 바와 저장고들이 있다고 했다. "음, 그 미국인에게 세컨드하우스 같은 곳?" 되물었다. 그는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는데 종종 그렇게 들러서 파티를 연다고 했다. 끝까지 노는 분위기라서 위스키를 모처럼 많이 마시게 되었다며 숙취를 호소했다.


다시 개츠비가 떠올랐다. 타이베이에는 개츠비가 살지 않는다는 상상은 틀린 것인가. 개츠비는 타이베이에 놀러 온다. 개츠비는 타이베이의 숨겨둔 집에서 종종 파티를 즐긴다. 괜히 슬쩍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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