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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r 07. 2024

낭만적 거짓과 연애의 진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1.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12세기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세기의 스캔들이 있다. 철학자 아벨라르는 성당회원의 조카딸 엘로이즈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나이 차가 제법 나는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아이가 태어나고 비밀결혼식까지 올리는 사태에 이르자, 가문의 모욕으로 여긴 숙부는 사람을 시켜 아벨라르를 거세한다. 결국 둘은 헤어져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되고 엘로이즈는 다른 사랑은 없다는 선언을 하듯 수녀가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보지 못하고 죽은 이후에야 합장하게 되었지만 떨어져 있을 때에 같이 있을 때보다 더 솔직하게 상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고백이 편지로 남아 로맨스의 고전이 된다. 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가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서 다시 살아난다.


죄 없는 수녀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 잊고, 세상에서 잊혀진
흠결 하나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모든 기도는 응답되고 모든 소망은 체념한
(How happy is blam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e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207~210행> 중에서


엘로이즈는 '흠결 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한 햇살'을 '잊혀진' 것에서 찾았다.

혹시 기억이 깨끗이 잊혀진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잊혀져서 기억이 '없음'이 되면 흠결 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한 햇살의 상태가 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게 되기를 위한 바람.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던지는 질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w5yDpSxfXc


2. 알 수 없는 끌림에 대하여


어떤 날은 회사를 땡땡이치고 싶다. 밸런타인데이라서일까. 왜인지 모르지만 그곳에 가고 싶다. 이성적으로 헤아리기 전에 이미 출발하고 있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끌리는데 이유는 모른다. 인생 자체가 좀 심심하다는 조엘과 마음이 수시로 변한다는 클레멘타인은 그렇게 만난다. 한밤중에 꽝꽝 얼은 찰스강에 누워 별자리를 찾는 밤의 피크닉이과 같은 반짝거리는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눈물이 난다. 이번에는 왜 우는지를 모르겠다. 눈물범벅이 되어 밤길을 달려 겨우 집에 도착한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조엘도 그중 한 명이다. 과거의 연인과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싶다.

이상형으로 만난 커플 사이에는 아픔이 없을까. 서로에게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난다면 매 순간이 행복으로 채워져 있을까. 누구와 커플이 되든 헤어짐의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좋아하게 되었다고 믿는 그 이유가 헤어짐에도 통한다.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지워버리는 선택을 한다. 기억을 지워서 서로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고통도 사라질 테니까.


3. 기억에 있는 척해보자.


분명히 기억을 지운다고 결심했는데, 왜 망설이게 될까.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하던 기억까지 쫓아서 샅샅이 지우겠다는데 자꾸 머뭇거린다. 한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나쁜 기억뿐 아니라 좋은 추억까지도 포함하는 일이었다. 기억 속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자신들의 죽음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스스로의 의지로 원해서 시작한 일인데 발버둥까지 쳐야 할 줄은 몰랐다.


기억 속의 긴 여정 끝에 추억 속의 집에 도착한 조엘과 클레멘타인. 언제나처럼 클레멘타인은 신나게 즐길 궁리를 하고 조엘은 주저하다가 떠나려고 한다.

약속된 시간이 오고 기억의 집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바닷가의 파도가 가까이 밀려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그곳에서 헤어진다. 더 있으라고 머물라고 하는 클레멘타인과 가야 한다고 떠나는 조엘.

마지막이라는 위기감일까, 기억 속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최후의 몸부림일까.

바깥으로 보이는 '의지'의 시간이 지나가고 빙하 아래 '무의식'이 떠오른다.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의 시간이 온다. 조엘은 기차 시간 핑계를 댔지만 실은 머물고도 싶었다. 하지만 이미 집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제는 남은 기억이 없어.

진심은 다른 진심을 불러온다. 클레멘타인도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넨다.

"이번에는 그냥 있지 그래?"

그녀가 한걸음 더 다가선다.

남은 기억이 없다면, 기억에 있는 척이라도 해보자.

굿바이 조엘, 몬톡에서 만나.


4. 그럼에도, "오케이"할 수 있다면


기억으로 인한 고통은 한 사람만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레멘타인 역시 라쿠나를 찾았고 이제 모든 기억은 지워졌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공유되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래서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서 서로를 모르게 되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은 몬톡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또 끌리게 될까. 단지 상처가 낫길 바란 것뿐인데, 오히려 서로의 기억을 지웠다는 아픔까지 더 보태어 극심해진 상태가 되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무엇을 더 묻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클레멘타인은 더 참지 못해 뛰쳐나가고 이번에는 조엘이 따라간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난 완벽하지 않은 여자이고 곧 거슬리게 될 거예요."


이제 새로운 문제에 도달한다. 연애의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뻔히 보인다. 누구보다 두 사람이 더 잘 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 침묵을 깨고 조엘이 말한다.

"오케이."


조엘이 그날 몬톡의 기차역으로 달려간 것은 우연이 아니라, 무의식의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불완전한 연애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그 가능성을 내다본다.

'흠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은 잊혀지고 체념하여 고통이 없는 상태보다는, 완벽하지 않은 그대로의 서로를 끌어안는 쪽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 of The Spotless Mind, 2004>는 넷플릭스, 왓차,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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