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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22. 2024

한 밤중에도 고양이는 달린다


Yo La Teng -  let’s save Tony Orlando’s house

https://www.youtube.com/watch?v=kBZPaYUGP6o


약속을 하기에 적당한 시간은 아니었다.


새벽 2시. 거의 모두가 잠든 시간. 불 꺼진 건물 앞에 서 있다. 낮은 4층 건물의 1층 카페 옆에는 작은 계단이 이어져있었는데 그 위 4층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여전히 깜깜한 창. 카페 앞에 놓여있는 빈 테이블 앞에 앉았다.

3월 초이긴 하지만 밤바람이 제법 차갑다. 뭔가 콘크리트 바닥에 사뿐하게 스치는 소리가 난다. 한 낮이라면 듣지 못했을 리듬. 동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슬금슬금 걷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쌩 내달렸다. 차바퀴밑으로 잽싸게 사라진다. 고양이가 나를 피하다니 갑자기 다리가 저려오는 것 같다. 아니다. 핑계를 대고 싶다. 실은 오늘 하루종일 걸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멀어지기 위해 다가오는 걸음이었다. 스니커즈에 청바지가 멈추어선다. 구름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습관처럼 말하던 수지는 오늘 출국한다. 공항까지 함께 가주기로 약속했다. 수지는 휴학 신청을 하고 마지막날까지 아르바이트로 꽉 채웠다. 이번 구름이 가리키는 곳은 헝가리였다.

새벽의 택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조각배 같다. 창 너머 불빛들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택시 안에는 심야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지막한 DJ의 목소리가 포근하게 울린다.


"시간이 아까운 적 있어? 요즘 들어서?"     

언제나처럼 별 것 아닌 것을 물었다.


"시간... 나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생각해." 수지의 눈동자가 도시의 빛을 담아 반짝거린다.

"음... 그런 건 팔십 살쯤 되어서 뭔가 여생을 돌아볼 때나..."

동굴 같은 터널에 진입하니 어둠이 짙어져 표정이 가려진다.

"... 내가 아직도 스물두 살로 보이니? 뱀파이어인 거 몰랐어?"

"그러고 보니 밤에만 움직이는 것 같기도."

수지는 가볍게 웃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처럼 청량한 소리가 공간에 가득 퍼진다.


"... 후회되는 거라도 있어?" 아직 답을 듣지 않았으니 다시 물었다.  

"후회라기보다는 그 시간이 가져온 흔적에 대한 거야. 그 일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된 건가 하는..."

"정체성이 되어버린 시간 같은 거?"

"뭐 말하자면. 근데, 나는 정체성이니 성격이니 그런 것들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쌓여가는 건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다가 어느 임계점에서 확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뭔가 있었던 거군. 사건이! "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차창에 비친 수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일 때문에 구름을 쫓는 방향성이 생긴 거고 그래서 헝가리까지 날아가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좀 멋진 사람 같네. 사실 범죄자에 가까운데." 수지는 머쓱하게 답했다.


백미러로 힐끗 우리를 쳐다보는 운전사의 눈빛과 마주쳤다. 언제나 수지와의 얘기는 이런 식이다. 그래서 친구가 된 건지도 모른다. 그날 수지의 집 가까이에서 본 블랙수트 고양이가 떠올랐다. 도시가 잠든 시간에도 골목을 내딛던 사뿐한 발걸음과 맹렬한 질주. 그렇게 밤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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