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의 슈바빙처럼
오랜만에 부암동에 들렀다. 부암동에 갈 때마다 '동네'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미 서울의 관광 명소가 된지 오래지만, 어쩐지 그렇다. 획일적이지 않은 골목길이 있고, 어디서 끝날 지 모르는 담벼락이 있다. 헤어샵이 아닌 미장원이 있고, 마트가 아니라 미닫이문을 열어놓은 동네슈퍼가 있다. 마을버스가 다닌다. 지하철 타면 바로 닿는, 교통이 편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멀다고 할 수도 없다. 따져보면 종로, 서울 한 복판이다.
어쩌다 한번 오는 외지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 살아보지 않아서 이 동네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나같은 뜨내기는 잘 모르는 주민들만 잘 가는 가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알고 싶은 한 편, 그렇게 쉽게 알아도 되나 하는 의문도 든다. 문득, 생각나는 글이 있다.
"내가 살았던 집 가까이에 제에로오제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이 집은 수백년래의 전통을 완강하게 지키는 주인 물라 아저씨의 힘으로, 슈바빙을 점점 균등화시키고 있는 기계문명과 미국 양식의 침투에서 완전히 보호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전혜린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동네가 있다. 전혜린이 그리워했던 독일의 슈바빙. 그는 이곳을 '뮌헨의 몽마르트'라고 했다. 고향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지만, 늘 가슴 속에 남아있던 동네. 1950년대 그 시절 독일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고, 그들이 한국이란 나라 이름조차 알리 만무했다. 그래도 그가 슈바빙을 그토록 그리워한 데에는 기꺼이 추억할 수 있는 오래된 가게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언제 어디를 가도 마주칠 수 있는 훈한 가게들이 아니라 꼭 그곳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슈바빙은 예부터 릴케, 칸딘스키, 토마스 만 등 예술가들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했지만, 한국인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지금도 전혜린을 기억하며 슈바빙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전혜린이 가던 그 가게의 주인은 전혜린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곳을 찾는 한국인들마다 그 이름을 물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혜린이 세상을 뜬 이후에 그의 작품과 사연을 발견하고 그를 추모하는 독일인들의 모임도 열렸다고 한다. 그런 에피소드도 신비롭지만, 그 가게가 지금까지도 남아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진짜 '동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쩌면 읽기 전부터 그리워했던 이야기인 것 같다. 나와 연결되는 사람들과 단골 가게가 있는 곳. 말을 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어떤 것들이 있다. 동네 산책을 즐겨하는 이유도, 그런 가게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항상 어떤 장소에는 자력이 있어서 그 부근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면 사람을 그곳으로 끌어당긴다고 믿었다."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중에서, 파트릭 모디아노
언젠가 합정 역 근처, 자전거가 세워져있던 작은 카페에 들른 기억이 있다. 한쪽벽은 완전히 책장으로 뒤덮였고, 맞은 편에는 긴 바가 자리하고 있었다. 원고지 위에 손글씨로 쓰여진 메뉴판, 그리고 바 위의 쟁반에는 '80년대풍의 빈티지 유리컵들이 포개어져있었다. 메뉴는 커피와 차 말고도 나폴리탄 파스타가 있었다. 좁은 공간을 따라 길게 난 바 자리에 맞게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각자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카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책장을 보니 딴 세상이었다. 그 카페의 책장은 흔한 서점카페의 문고시리즈나 적당히 취향알 보여주는 적당한 책들을 골라 넣은 것이 아니었다. 주인의 취향이 들어있되, 얕지 않고 젠 체하지도 않는 책들이었다. 긴 벽을 따라서 맞춘 책장을 지나 구석의 짧은 벽에는 CD들이 앨범 커버가 보이게 채워져있었다. 음악도 클래식과 팝, 다양한 장르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책장을 구경하다가 코엔형제의 인터뷰집을 뽑아들었다. 커피 한 잔에 우연히 집어든 책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한참을 읽고 있으니, 누군가 옆 자리의 의자에 앉는다. 주인이 커피를 내주자, 어제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의 대화는 아니다. 단골손님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가 편안하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득, 이런 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장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좀 더 있어보니, 이런 식으로 이 카페의 단골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인과 둘이 얘기하다가, 또 옆사람과도 말을 섞게 되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 책들, 그런 음악, 그런 대화, 약간의 음식 그리고 적당히 무심한 편안함. 카페 주인이 만든 작은 세계였다. 세상의 카페는 널렸지만, 누군가에겐 딱 하나의 장소말이다. 해질녘 카페를 나오면서 저녁에 친구와 함께 와서 밤늦도록 얘기해야지 정해두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다. 늘 그렇지만 '다음에'를 외친다면 오지 않는다. 무언가 끌렸을 때는 당장 해야 하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2년인가 지나서 다시 찾았을 때는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서양미술사>라는 카페였다. 자전거가 세워져있던 가게 문앞을 서성여도 이미 늦었다. 어떤 이유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래가는 가게가 있었으면 바라게 된다. 눈 뜨면 새로 생기는 것이 카페지만, 나의 동네에 오래도록 이야기거리가 되는 가게들 말이다. 동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이어진다. 전혜린의 동네 슈바빙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과 연결된 장소들.
추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동네를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