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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by 베리티

사진가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친구라고 해서 꼭 일하기 좋은 것도 아니더라고요."


평소에 이런저런 얘기가 잘 통하는 친구라 해도 막상 함께 일해보면 또 다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도 같다. 일하는 것과 친교는 분명 다르다. 친구에 대한 생각도, 작업에 대한 의견도, 돈문제도 사람 하나하나가 다른 것처럼 다 차이가 있다. 일 할 때 다시 생각나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일생의 드문 사건이자, 행운이다. 훌륭한 작품이나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좋은 팀을 이루고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호흡이 좋은 동료, 작업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난다'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을 만나 궁금한 것들, 어려운 고민들을 풀어가려고 했다. 요즘엔 그렇지 않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만남을 갖는 일은 줄었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 얻거나 발견할 때가 많아진다. 일이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일이 마쳐지면 다시 안 볼 수도 있다. 물론 잘 되면 다시 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은 주어진 일을 같이 해결하려 하다 보면, 일종의 유대감이 깃든다. 일의 기간이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태도나 가치관을 경험하게 된다. 삶 속에서 아주 일부의 순간일 수 있지만, 뛰어난 면모를 겪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배운다. 그의 가치관이 나의 일부가 된다.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이라 해도 같이 일이 잘 될 때가 있고, 같은 분야에서 오래 했다는 사람인데도 답답해질 때가 있다. 오랜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허탈할 때도 있다. 얘기는 오래 했는데, 겉돌기만 하고 핵심에 이르지 못한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번번이 엇나간다. 어떤 날은 잘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먼저 꺼내어 놀란다.

사람의 관계가 함께 해온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

친구도 세월과 함께 가치관이 변해간다. 어떤 시절에 공감이 있어서 관계가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이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 취업, 결혼, 출산, 승진. 삶의 어떤 기점에서 대개 변화를 겪고 어긋나기도 하지만, 이런 이유들 자체가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본질은 아니다.


"일상 속에 그걸 안고 사는 사람하고 무관심함 사람을 같이 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며칠 전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끄적인 글을 다시 보았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TV에서 한 말이었는데, 알 것 같다. 그 차이를.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문제를 알고 있다. 목표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예전에는 그것을 바로 해결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 그 문제를 안고 계속 나아간다. 일속에서 그걸 마주할 때마다 생각하고 바꿔보려고도 하고 때로 실패한다. 실망하고 낙심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저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 문제를 안고 있는 나를 인정한다. 그리고 문제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을 잊지 않고, 눌리지도 않고, 다만 함께 간다.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분야가 다르다 해도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알아본다. 순간의 만남이지만 그 사람이 겪고 있는 나름의 전투를 엿본다. 유홍준 교수가 말하는 것은 그런 연대가 아닐까.

매일매일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중요하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것만으로 되는 시대는 아니다. 명령만 따르다 보면 내 삶은 표류하게 된다. 전체의 미미한 일부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소멸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나, 세상이 좋다고 떠드는 것들. 그와 조금 떨어져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연대감을 느낀다. 그런 것들이 베스트 프렌드니 오랜 친구니 하는 수사보다 가치 있게 다가온다. 비록 한 순간의 관계 속에 머문다 해도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정이 주는 행복감에 영원한 진실은 없다는 것을.

생떽쥐베리가 소설 <인간의 대지>에 남긴 구절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富)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라는 '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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