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서울도, 사울 레이터처럼

After the Book : 북토크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6

by 베리티

미술관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는 늘 맛있어요. 왜 일까요.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그리고 즐겨 찾는 남산 피크닉(책에는 -'남산 피크닉에서 사울 레이터' 꼭지 참고)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늘 그래요. 좋은 작품을 봐서 기분 탓인가 싶지만, 일본 독립서점의 대부 마쓰우라 야타로(저의 책 '헬스키친에서 아침'을 꼭지 참고)의 글을 읽고 아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그런 공간에는 자연스럽게 감각이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평일에 미술관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역시나 자신만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쓰우라 야타로,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Pull, 1960

생각할 것도 없이 간단한 일인데요. 좋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데, 커피맛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는 평일에 미술관을 간다고 하네요. 북적이고 떠밀려서 보는 것은 역시 지치는 일이겠죠. 전시를 찬찬히 보고 마시는 커피 맛은 어디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피크닉에서 사울레이터 전시를 본 것이 2022년 즈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와 사울 레이터, 프랑수아즈 알라르 사진전을 인상 깊게 봤는데 요즘엔 조금 다른 성격의 전시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사울 레이터는 1950~60년대의 눈 오는 날 뉴욕 거리를 담아낸 사진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난 그저 누군가의 창문을 찍는다. 그게 뭐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울 레이터



untitled, undated

흐릿한 창 너머의 풍경이 주특기라고 할까요.

자동차 창, 그리고 카페의 창이나 거리의 틈 사이로 카메라를 댄 사진들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거리의 쓰레기통, 구두 닦는 사람, 우산을 쓰고 걷는 행인들, 택시를 타는 사람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사진의 주인공이 됩니다.

얼핏 봐도 몰래 찍는 사진인데요, 전시에서 그에 대한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고 기록한 글도 봤습니다.

요즘처럼 초상권에 민감한 시대가 아니어서, 가능했던 사진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가 한창 사진을 찍던 1950년대는 '포토 저널리즘'으로 흑백 보도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고, 평론가들은 그의 흐릿한 사진들이 진실을 왜곡한다며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일상을 담는 사진에 몰두했습니다.

사울 레이터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일상에서도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다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보그 등 유명 잡지의 상업사진을 찍을 기회가 왔는데요. 전시에서 사울 레이터의 상업사진은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익숙하고 많이 본 듯한 사진들이었어요.

사진 찍는 것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면서 사울 레이터도 패션 사진을 그만두게 됩니다. 몇 십 년 동안 작업을 해오던 베테랑들도 때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기까지 꽤 방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보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거죠. 괴테가 괜히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누군가는 지금도 서울의 일상을 담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울 레이터가 뉴욕의 거리를 찾아다니듯.

혹은, 서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껏 보이지 않은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세운.JPG 세운상가 옥상, 2018.12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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