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에서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신촌의 '백스테이지 2'를 기억하며

by 베리티

K는 예쁜 사과를 베어 물었다.


카프카의 <소송>을 읽다가, 페이지를 멈춘다. 영문도 모르는 소송을 당하고 혼란을 겪는 와중에도 그는 전날 남겨진 식탁의 사과를 집어든다. 카프카의 문장에서 '예쁜'이라는 형용사를 본 적이 있었나.

너무 낯설어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청춘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덫에 걸렸건만, 세상이 뒤집어졌건만 테이블에 남겨진 사과 하나에 손을 내밀어 씹어먹는 것. 나를 둘러싼 시스템이 깜깜하게 무너져 내렸다 해도 굴러다니던 사과 하나를 예쁘게 바라볼 수 있다!


청춘은 빛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빛은 주위의 어둠과 충돌할 때만 드러난다.


카프카는 스무 살 넘게 차이나는 친구 야누흐에게 이렇게 전한다. 비밀일기장이라도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언제나 중절모를 쓰고 시곗바늘처럼 퇴근과 글쓰기를 오가던 직장인 카프카였는데, 완벽한 오해였다. 그 역시도 젊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세심하고 예민한 기질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에게 청춘은 나이 어린 상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자신만의 순수한 관계를 지키려는 의지'였다. 나만의 순수한 사과를 고수하려는 저항이었다. 어떤 불가항력이든 간에 나만의 사과 하나는 가질 수 있다는 믿음.


청춘이 빛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늘 찬란하다는 수사는 어쩐지 남의 일 같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파리 무성한 나무 아래 멈추고, 땡볕에 그늘을 찾아다녔다. 성이 차지 않아 때로 지하로 난 계단을 따라 깊이 내려갔다. 보이지 않는 심해처럼 그곳의 소파는 낡았지만 푹 잠길 수 있었고, 어둠 속에서는 얼굴이 묻혔다. 어스름한 빛을 내뿜는 유일한 스크린 아래 모두 그렇게 앉아있었다. 극장 창구 같기도 디제이박스 같기도 한 코너에서는 신청곡을 받았다. 볼펜이 스스슥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메모지가 넘어간다. 이 세계로 입장권이 도착한다.


유튜브로 무엇이든 볼 수 있는 요즘 시대엔 박물관같이 보이는 장소. MTV나 채널 V로 주파수를 맞추던 시절, 우리가 궁금한 음악을 들어보는 방식은 그랬다.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기타 소리가 심해를 가득 채우고, 희미하게 별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깊은 바닷속에서 그렇게 밴드의 별자리를 이어가고 있었고, 윙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지는 사운드가 나를 대신해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어둠과 충돌한 그 빛은 별똥별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어둠 속으로 꼬리를 길게 남겼다.


누군가는 하얗게 불태우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지만, 어쩐지 속임수 같았다. 소멸하는 것을 숭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 타버린 재를 한 줌 만지며 유령처럼 사라져 간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 또 누구는 틈만 나면 그렇게 외쳤다. 아름답고 내 것으로 삼고 싶은 단어지만, 이 세계에서 자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의심한다. 영원! 예부터 지금, 아니 미래까지도 내다보는 그 숨을 들이마시고 싶지만, 다들 알고 있다. 우리는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을 늘 갈망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단으로 이어진 심해로 내려가 어둠에 그 머리를 박으며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는 별자리들을 헤아리다가 노이즈 속에 잠겨 가짜 포도향이 나는 웰치스를 한 모금 들이마시는 일이었다.


아마도, K가 집어 들었던 예쁜 사과는 진짜였겠지.



*사진은 2024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선, 앤디 벨(Andy Bell, The Ride 의 보컬, 기타)입니다.


Ride - Vapour Trail

https://www.youtube.com/watch?v=pVhNi5cU8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