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토모 나라의 <작은 별 통신>
눈을 곱게 뜨지 않는 뾰족한 아이.
언제부터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을 좋아했을까. 아마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서 언뜻 그 그림을 봤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다.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눈빛의 못돼 보이는 소녀들이 여기저기 출몰했다. 전형적인 소녀 이미지와 달랐던 그 애들을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다,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다가 그 책을 발견했다. 얼마 전 도서관에 가는 것은 책들 사이를 거닐다가 나를 이끄는 책을 만나게 되는 이유 때문이라는 문장을 읽었는데, 그때 이 책을 떠올렸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 수많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숨죽이고 있다가, 책이 자신을 드러낼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인연을 맺은 책은 그즈음 읽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제목이 귀여웠다. 작은별통신.
대학에서는 나보다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아, 난 재능이 없나 봐. 흐흐흑' 하고 생각했는데,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테크닉과는 무관하지만 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요컨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를 나름의 수법으로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요시토모 나라, <작은별통신>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또 대화하듯 쓰여있어서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요시토모 나라의 독특한 유머에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되었다. 언젠가 자신이 창고 같은 집에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날 꼬마애가 벌컥 문을 열더니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어, 사람이 사네."
비행기에서 기내식 줄 때 스튜어디스가 "치킨 오어 비프?" 이렇게 물으면, 그의 대답은 이랬다.
"양쪽 다"
그래서 두 가지를 다 먹었다는 에피소드였다.
책에 자신이 살던 공간의 평면도를 그려놓은 것도 재미있었다. 꼭 집 같은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찾아서 만들고 그 안에서 일을 한다. (지나가던 꼬마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그린다. (미술가들이 그래서 부럽다. 음악을 크게 틀고도 작업이 가능하다니.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글 쓸 때는 틀지 못한다. 그러면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그러다가, 플레이 리스트에서 놀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보인다. 요시토모 나라와 비슷한 음악을 듣고 있을 줄이야, 책을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끌리는 그림체에서 이렇게 음악 취향으로 연결되는구나. 나는 그래서 뾰족한 그 애들을 지나칠 수 없었구나.
학교에 다니면서 아티스트를 꿈꾸는 학생들과 달리 그들의 대화에는 현실감이 넘쳤고,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두 발을 들여놓은 예술 세계의 현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것과는 아주 달랐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되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 있었다.
-요시토모 나라, 작은별통신
일의 영역은 좀 달라도, 처음 일하면서 내가 느낀 것도 그랬다. 살아남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곳에 내가 발을 딛었구나. 이미, 나보다 뛰어난 인물들은 얼마든지 많다. 일에 뛰어들기 전 머릿 속으로 그리던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문장에 공감한다.
"나도 모르게 되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 있었다."
요시토모 나라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본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언젠가는 같은 객석에서 열광할지도.
Yo La Tengo - Stockholm Syndrome
https://www.youtube.com/watch?v=ZlTkEnS1B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