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이제 일터가 된 지 오래지만, 학생 시절 몇 번의 기억이 있다.
친구 하나가 FM 라디오 DJ를 좋아했다. 지금도 저녁 6시면 팝음악을 트는 프로그램의 그분. 사실 난 큰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다가와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응? 뭐라구.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그때 청취자가 스튜디오에 나와서 음반을 트는 코너가 있었다. 친구가 그렇게도 좋다는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우리는 같이 한 시간 분량으로 선곡을 해서 담당 PD의 이름을 써넣고 엽서를 부쳤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지냈다.
작업 앞치마를 걸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떴다. 낯선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던 그 순간이 생생해서 어느 길목이었는지 화석처럼 기억된다. 설마, 진짜로 온 거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CD를 한 더미 들고 여의도 한복판의 스튜디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음악 녹음실이나 스튜디오는 늘 좋다. 고향에 온 기분이 이런 것인가. 소리가 잘 울리도록 나무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크지 않아서 아늑한 느낌을 주는 데다가, 마이크와 음향 장비들, 게다가 악기까지 있으니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바닥은 포근한 카펫이 깔려있어서 발이 사뿐해진다. 구름 위를 걷는 것인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호기심이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난다.
천정이 나지막한 부스 한가운데에 DJ가 앉아있었고, 그곳의 공기엔 DJ의 압도적 존재감이 전해졌다. 작은 공간에서 목소리의 울림도 그렇지만, 스태프 도움 없이 혼자서 레코드판을 일일이 만지면서 진행을 하고, 또 수많은 스타들을 만나온 사람들 특유의 자신감때문이었을 것이다.
DJ는 당시 학생이던 우리를 반기며 복도로 데려가서 손수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학교 생활에 대해 묻고는 내한공연 티켓도 선물로 주셨다. 그때부터 이미 친구는 하늘에 도착해 있었다. 눈 속에 별들이 반짝거렸다.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이 현실같지가 않았다.
방송이 시작되자, DJ님의 환영은 극에 달했는데 멘트에 머리가 띵 해졌다. 무려, 스튜디오에 미인들이 나오셨다는 오프닝 드립을 시전해 주셨다. (이것이 라디오의 진정한 매력이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ㅋ )이렇게 판이 깔리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우리는 미인 연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 애청자였던 친구는 DJ와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었다. 길고 긴 DJ님의 리드가 이어지다가,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친구의 마무리 멘트가 있다.
"네, 순간이동을 해서라도 들어야죠"
순간 이동? 나는 SF영화를 상상했다.
이미 FM 라디오 스튜디오 부스는 시공을 초월해서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결국엔 우리들의 기억 어느 한 편에 안착했을 것이다.
음악이 나가는 사이, DJ 아저씨는 우리에게 좀 어려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학생이었지만 우리에게도 나름 선곡의 원칙은 있었다. 라디오에서 잘 소개되지 않는 곡들. 그러니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이런 리스트의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음악들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가 홍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듣게 된 음악들 위주로 곡을 뽑았는데,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생소했을 것이다. 또, 너무 뻔한 것을 싫어하는 우리의 취향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곡들이 많은데 라디오에서는 매일 똑같은 노래만 나온다는 것이 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DJ 아저씨에게 이제는 이렇게 잘 모르는 곡들도 종종 소개가 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그 이후에 '라디오에서 이런 곡이?' 할 정도의 노래들이 종종 들렸다. 꼭 우리가 그 얘기를 전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원했으니 반영된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시절 음감회를 하면서 부러웠던 것은 미국에는 수많은 대학 라디오 방송에 있어서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College Rock이라는 장르까지 있다. 당시 우리는 공중파 채널이 아니면, 대부분은 해적판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링크 하나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레코드가게에 가서 일일이 녹음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외국 방송 채널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rec. 버튼을 눌러야 했다. 돌아보면 어지간한 노동이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적판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훌륭한 방송 DJ는 뮤지션 발굴의 역할을 한다. 채널이 다양할수록 더 좋은, 그리고 실험적인 음악가들의 길을 열어줄 기회가 커진다. 공중파 음악방송의 파워가 절대적인 시기에, 학생 두 명이 꾸던 꿈이었다.
사실 나는 FM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를 해보고 싶었다. 그 후, 출연했던 DJ아저씨의 담당 PD에게 작가 자리가 비면 연락을 달라고 따로 편지를 쓰기도 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TV 작가가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은 한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당시에는 오지 않는 연락이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TV작가가 된 것이 좋다. FM 프로그램 작가가 되었어도 좋았겠지만, 지금 시야가 더 커졌다는 느낌이 든다. 렌즈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또 카메라 워킹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우리의 작당모의는 그렇게 세월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일이 꼭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또, 좀 실없는 작당모의도 좀 해보고 그래야 한다. 그래야 더 잘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상업방송이 틀지 않는 낯설고 이상한 방송
College Radio에서 탄생한 최고의 자부심, REM.
조지아주의 에덴스라는 작은 대학도시에서 시작된 노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명한 곡은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으로.
REM - Be Mine
*이상함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CEo4UcLvzVo
(1:40부터 귀를 바짝)
I never thought of this as funny
It speaks another world to me
......
I want to hear the caged bird sing
난 이게 재밌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건 내게 또 다른 세상을 말해주지.
새장에 갇힌 새의 노래를 듣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