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 역 1번 출구에서 합정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 카페가 있었다.
대로변의 플라타너스 앞. 그곳엔 늘 자전거나 스쿠터가 서 있었다. 문을 열면 작은 공간에 꽉 차 있던 소리가 훅 다가왔다. 작은 카페의 입구에 있는 긴 바와 구석의 나무테이블 두 어개. 한쪽 벽엔 헌책들을 가득 꽂아 놓은 책장이 있어서, 틈틈이 꺼내보기 좋았다. 헌 책 한 권을 가져가면 커피 한 잔을 주는 물물교환이 있던 카페였다. 마음에 들면 사가도록 가격 스티커도 붙어있었다. 책의 가짓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볼만한 헌책들이었고 사장님의 음악 취향이 확고해서 유행가들은 들리지 않았다. 지나다가 커피를 주문해 놓고 책을 뽑아 보기 좋아서 자주 가게 되었다. 책장 선반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책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카페 안쪽에는 작은 나무사다리가 있어서 반층 정도의 다락같은 공간이 있었다. 주인아저씨만 들락거릴 정도의 작은 2층이었고 거기에 옛날 LP들과 오래 묵은 책들이 쌓여있었다. 실제로 올라가면 어떨지 궁금했지만, 아무나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작은 카페에 그런 층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전구로 책과 LP 와인병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층 아래에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천정 낮은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 즐겨 앉곤 했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나무토막을 툭 오크통 위에 얹어둔 테이블이었는데, 그 옆엔 와인박스에 수북하게 볶은 원두콩을 부었고 와인병을 툭 꽂아두었다. 책을 읽다가 심심하면 원두콩을 한 줌 쥐어보기도 했다. 겨울엔 난로가 가까이 있어서 더 좋았다. 거친 벽면엔 에곤 쉴레의 그림이나 손글씨 스케치 메모가 곳곳마다 붙어있었다.
얼핏 들기로 주인아저씨는 미술 전공하신 분이었고, 직접 로스팅한 커피들을 착한 가격에 내놓으셨다. 결코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름의 고집에는 이유가 있었다. 커피값은 밥값의 반값이어야 한다는 것이 주인아저씨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주변 카페들과 비교도 안 되는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도 다 맛있었고,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아몬드초코가 적당히 달아서 좋아했다. 민트초코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 집 메뉴판에 있었다. 인디밴드 멤버일 듯한 학생들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커피를 내려주곤 했다.
카페문은 밀어젖히는 유리문이었는데, 카페 구석 안쪽에서 이따금씩 고개를 돌리면 행인들이 잘 보였다. 하나의 프레임처럼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카페에 앉아있길 좋아했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벚꽃도 날리고, 잎이 무성해지고, 눈발도 날리는 풍경이 다채로웠다. 홍대 주변에 여러 길이 있지만, 그 길은 특히 로컬 분위기가 났다. 학생들이나 동네 주민들, 그리고 놀러 오는 독특한 패션피플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점점 상업화되어서 관광객들이 몰려올 때에도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있던 그 길은 동네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언젠가는 바에 늘 같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단순히 우리처럼 가볍게 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아르바이트생이 커피를 내리는 자리에 늘 앉는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누구나 알았다. 그 남자를 응원해 주기는 어려웠다. 너무 뻔히 목적이 보였고, 또 누가 봐도 그 아르바이트생이 관심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수염 기른 주인아저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방패가 돼주려 했던 걸까. 그 손님도 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과는 말 한마디 못 나눴을 것 같은데, 가끔 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긴 머리 알바생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머리를 휘날리며 기타 가방을 둘러메고 휘리릭 나가곤 했다. 몇 안 되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책을 펼치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다. 손님들도 어쩌면 주인아저씨와 공모하는 마음이었을까. 쿵-하고 문이 닫히면 이 에피소드도 끝. 카페는 다시 말소리가 사라졌다. 음악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햇살이 강렬하던 어느 여름날 카페문을 열었는데 테이블이 텅 비었다. 긴 머리 아르바이트생과 나. 이렇게 두 사람만 있었다. "진한 걸로 드려요? 아님, 연하게?"
이 카페를 오래 다녔어도, 이런 질문은 처음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주문하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한참만에 커피가 나왔다. 포르투갈 블루가 연상되는 폴란드식 찻잔에 맑게 담긴 아메리카노.
그런데, 맛을 보니 드립커피였다. 그렇다. 아메리카노는 보통 투박한 흰 머그잔에 나온다. 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드립커피가 나왔을까.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도 이쪽을 본다. 맛이 있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하는 눈치다. 드립커피도 아메리카노니까 아주 틀린 건 아니다. 맛이 괜찮으니 그냥 마시기로 한다.
여름 땡볕이 한창일 때나, 가을 낙엽들이 후두둑 떨어질 때, 겨울 시린 바람이 불 때면 그 길을 걷다가 피난처처럼 들르곤 했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제는 카페가 사라졌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어도 소소한 표정이 있던 그 카페가 이따금씩, 지금도 상수의 길을 지날 때면 떠오르곤 한다.
Tom Waits -Ruby's Arms
https://www.youtube.com/watch?v=MmM7B-M3L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