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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폴 오스터의 글을 읽으며

by 베리티

카프카를 생활인으로서 그려보면 행복한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낮에는 금융회사에 근무하고 밤에는 끊임없이 글을 쓰는 소시민적 일상. 관료적인 업무로 점철된 생활. 아버지에게 위축된 모습, 약혼의 실패.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그의 소설은 대개 암울하다. 가장 유명한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카프카의 페르소나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글에는 위트와 재기가 있다고 느껴왔다. 문장의 진행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는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독창성이 보인다. 기괴함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카프카의 모든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단편만 보아도 멋진 사람일 거라는 짐작이 드는 부분이 넘쳐난다. 결국 발상으로 문장을 이어가는 것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암울한 이미지가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폴 오스터의 신간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 카프카에 대한 글이 있다. '우리는 조금씩 카프카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라고 선언하듯 문장을 시작한다. 그의 일기, 명상과 잠언집, 편지들, 전기와 회고록을 살펴보면 카프카가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세련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카프카는 엄청난 모순을 내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친구와 친지들에게 그는 놀라운 재치와 매력을 가진 사람, 아주 관대한 사람, 멋지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 백절불굴의 정신을 지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쓴 글조차도 출판하지 말아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던 그였지만, 친구가 그 약속을 깨버림으로써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의 훌륭한 소설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에 그토록 헌신했음에도 출판을 꺼렸던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언제나 오래 생각하게 된다. 폴 오스터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자신에게 엄청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치열한 노력, 자신을 초월하려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그의 작품을 그토록 중요한 문학의 금자탑으로 만들었다.... 그의 예술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을 완벽하게 연소시킨다는 뜻이었다. 그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글쓰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글을 섰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글쓰기는 기도의 한 형태이다>."


'자신에게 엄청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해서 실패했다'는 말에 먹먹해진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글쓰기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삶.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쓴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인정받겠다는 욕구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은 아닌가. 우리는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배제하고 글쓰기에 매달리는 삶. 고통과 헌신에 용기를 더 해야 하는 일이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도 전쟁터처럼 피 흘리며 깃발을 꽂아야 하는 삶이었을지 모르겠다. 고통을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카프카는 마흔한 살에 죽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 후두 결핵을 앓았고 말하는 것 금지에 식사조차 고통스러워 굶어 죽다시피 했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그의 모든 글들 중에서 가장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폴 오스터가 소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단편소설의 교정을 보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저 물을 한 사발 크게 마실 수 있다면.... 작약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직접 보살펴주고 싶어,... 라일락은 양지로 옮겨놔 줘.... 문제는 말이야, 내가 물을 단 한 컵도 마시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저거 멋지지 않아? 저 라일락. 죽어가면서도 물을 마시고 계속 들이켜네.... 잠시 당신들 손을 내 이마에 앉아 나를 격려해줘.


마침내 의사가 그를 살펴보고 나갔다.


그래, 도우러 온 사람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시 가네."


물 한 모금마저 허락되지 못했던, 의사조차 해줄 것이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 물을 마시는 라일락을 보며 눈을 감는 장면을 떠올려보다가 책장을 덮었다. 더는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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